몇 해 전 겨울, 폭설이 내린 강원도에서 갇혀 버렸다.
주위는 하얀 눈으로 둘러싸였다.
사람이 없는 풍경 속에는 눈 내리는 작은 소리들만 가득했다.
그리고 바람 소리, 나무들이 춤추는 소리….
우리의 오랜 풍경들이 마치 살아 숨을 쉬는 듯하다.
펑펑 내리는 눈으로 인해 사람들이 만든 요란한 물체들은 제 기능을 못하게 되었다.
대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풀 한 포기, 쓰러진 나무 군락,
파헤쳐 놓은 땅, 채굴되어 사라질 섬, 굴러다니던 돌덩이가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후 눈이 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새벽같이 달려가 때를 기다리고 눈이 1m 이상 쌓이면 촬영을 시작했다.
때로 폭설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두려움보다는 하얀 구름 속을 헤엄치듯,
고요하고 경이로운 느낌에 오히려 마음은 평온해졌다.
하얀색은 백지처럼 무無의 상태를 연상시키지만,
빛이 모두 섞일 때 생기는 색, 즉 유有의 상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기에 더 가질 것도 없는,
아무것도 없기에 더 풍부해지는 하얀 세상.
새삼 자연의 숭고함과 아름다움, 존재의 가치를 생각한다.
‘WHITE’ 꾸미지 않은 순수함.
즉 ‘우리 땅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다.
어쩌면 눈이 내려야만 볼 수 있는 세상 ‘WHITE’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또한 순수하게 드러난다.
필요 없는 것들은 깨끗이 정화시킨다.
평온해진다. 이 평온한 마음이 새해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