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과 ‘취업 전략’이 난무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나는 2년 전부터, 그것도 대학 캠퍼스에서 친구 몇 명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름 하여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줄여서 ‘씨앗들’이다. 처음엔 ‘깨작깨작 호미질을 하고 싶다, 내가 키운 것을 맛보고 싶다, 학교 땅을 맘대로 쓰고 싶다.’ 뭐 이런 단순한 호기심과 무모한 당돌함에서 시작했던 이 소소한 일들이 결국 지금까지 왔다.
2010년 봄 시작된 우리의 첫 텃밭은 고려대 캠퍼스 한구석의 손바닥만 한, 한가운데 언제 잘렸는지 모를 나무 그루터기가 있는 버려진 땅이었다. 철사부터 화염병 조각들까지 한 무더기의 폐기물 골라내기를 수차례 거듭한 뒤에야 드디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한 삽 한 삽 땅을 파내 두둑과 고랑을 만들고, 씨감자를 나란히 심는 그 순간, 얼마나 신기하고 거룩했는지 너무나 신이 났다. 그다음 주에는 다시 모여 상추와 청경채, 당근 씨앗을 뿌렸다. ‘설마 진짜 여기서 감자, 당근이 생길까?’ 의심하면서 기다리다가 갑자기 올라온 싹을 보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은 시도는 생각보다 훨씬 큰 의미와 기쁨으로 다가왔고 이 텃밭의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처음으로 밭에 말라 있는 작물들 걱정에 비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처음으로 오이와 호박이 노랗게 익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처음으로 물 조리개를 들고 여러 시간 밭에다 물을 주었다. 처음으로 땅콩 잎이 그림처럼 예쁘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으로 퇴비가 더럽지 않다는 것을, 씨앗이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 처음, 처음. 모든 게 다 처음이었으니, 어느 하나 가치 있지 않고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창 재미를 붙여가는 와중에 힘들게 경작한 땅을 빼앗기는 일도 많았다. 대학은 빈 땅에 농사를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발각되어 땅을 빼앗겨 버리면 또 다른 땅을 개간하여 농토로 만들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하지만 이런 우왕좌왕한 시도 속에서도 젊은 패기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극을 받았나 보다. ‘이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동기가 밭에 심은 씨앗들처럼 무럭무럭 자라났다. 부족한 농사 자금은 우리 스스로 모았다. 아기자기한 공모전, 상자텃밭경진대회에 나가 상금도 타고 생방송 출연으로 출연료도 얻어냈다.
그리고 2010년 가을, 초보 농사꾼인 우리들은 ‘레알텃밭학교’라는 대학 텃밭 강좌를 만들기에 이른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쉬운 이유에서였다. 점점 다른 대학에서도 참여하기 시작했고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주로 대학생들이었지만 씩씩한 초등학생들, 겸손하신 선생님들, 바쁜 직장인들도 찾아왔다.
텃밭 일의 가장 큰 장점은 몸을 쓴다는 것이다. 조그만 밭에서 수백 차례 단순 노동을 반복하고 나면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머리를 썼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뿌듯함이 느껴진다. 항상 쥐고 있던 휴대폰 대신 낫과 호미를 휘두르다 보면 무념무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지만 마음을 수련하는 느낌도 든다. 우리는 직접 키운 잎채소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김장을 하기도 하고, 이웃들과 나누기도 하며, 고된 몸과는 반대로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 갔다.
텃밭은 숨기고 허풍 치기가 불가능한 장소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딱 맞다. 잡초를 뽑고 물을 성실히 준 텃밭은 보기도 좋고 수확량도 많은 반면, 그렇지 못한 땅은 일주일만 내버려둬도 금세 정글이 된다. 마트에 가면 손쉽게 살 수 있는 배추 한 포기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던지, 벌레도 일일이 손으로 다 잡아주고 농약 대신 오줌을 모아 천연 액비를 만들고 음식물 쓰레기와 낙엽으로 퇴비도 만드는데 이 퇴비를 만드는 데는 6개월이 걸린다. 정직하게 일한 만큼 얻을 수 있는 텃밭의 시간은, 우리를 수확에 대한 작은 욕심도 기대도 다 내려놓고 소중한 과정에 의미를 두게 한다.
그래서 ‘스펙’ 한 줄 늘려보려는 친구들보다 ‘아빠와 친해지고 싶어서’ ‘돈을 추구하지 않으니까’ ‘그냥 재밌어서’ 텃밭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된 친구들이 오래 남고 나 또한 순수하고 성실한 그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시장에서 야채를 사다 보면 너무 싼 농산물 가격에 화가 날 때가 있다. 식당에서 친구들이 으레 반찬을 남길 때도 그렇다. 가지 한 다발 오이 하나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농부의 피와 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농산물뿐 아니라 다른 어떤 물건도 내 손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니, 버려지는 모든 것이 아깝다. 그래서 뭐든 소중해진다. 텃밭학교를 운영하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남학생도 있고 채식을 하게 된 친구, 아예 도시농업 분야로 취업을 한 친구도 있다. 처음에는 수강생으로 참여했다가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잘 해내려 하기보다는, 즐겁고 재미있게 하고 있다.
며칠 사이에 가을이 왔다. 얼마 전 다섯 번째 ‘레알텃밭학교’도 문을 열어 배추랑 무랑 쑥갓이 옹기종기 싹이 올라왔다. 세 번째 짓는 가을 농사지만, 아직도 자신이 없어 책을 뒤적거린다. 많이 성장한 것 같지만, 여전히 처음과 같은 자리다. 아직도 ‘레알텃밭학교’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노련하게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아직도 밭일이 어렵고 낯선 상황들이 태반이다. 동시에 처음 겪는 소중한 순간도 태반이다. 작은 수확물에서 느끼는 감동도 여전하다. 이제 겨우 3년 차 하수 농부라, 열심히 가꾼 작물이 보잘것없이 망해버리기도 하고, 날아오는 곤충들에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뒤쫓아 오는 이, 보채는 이 하나 없어, 욕심내지 않아도 좋다. 형편없는 실력에도 포기 안 하고, 손가락만 하게 매달린 가지를 보고도 귀엽다며 웃는다. 10년 되고 20년 돼도 그럴듯한 농사를 지어낼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처음일 것이 많고, 기쁜 일이 많을 것이란 건 잘 알고 있다.
‘바람이 차네. 처서가 왔으니 이제 가을 농사를 준비하자’고 생각하게 된 내 모습이 뿌듯하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못난이 작물들처럼, 우리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매 학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배우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