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언니랑 사이가 안 좋았나?
중학교부터였던 것 같다. 언니는 나에게 완전 친구 ‘급’이었다. 기본적인 존중이나 예의, 그런 건 전~혀 없다. 언니가 뭐라고 하든 말든 ‘너’라고 불렀다. 언니로 대우해준 게 하나도 없었다. 과자가 있으면 “내가 다 먹을 거야!” “아니야, 내가 더 많이 먹을 거야” 싸우고, 어쩌다 툭 밀었다간 “왜 때려?!” 하면서 또 때리고 “왜 더 세게 때려?!” 하면서 더 때리고 더 맞고, 그러다가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초, 중, 고,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집에서도 같은 공부방, 같은 침실을 쓰니,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등하교를 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없을 수가 없었다. 몰래 책상 어지럽히고, 베개에 침 뱉고… 언니는 아직까지 모르는 복수들도 많이 했다. (언니 미안… ㅠ.ㅠ)
싸울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넘 유치한 거 아닌가?
원래 자매 사이가 그렇다.ㅎㅎ 보통 옷 때문에 제일 많이 싸운다. 내일 입을 옷은 그 전날 코디를 해놓는데 그게 겹치는 경우 비극이 시작된다. “나 내일 이거 입을 거야!” “싫어, 내가 산 거니까, 입지 마!” “먼저 얘기했으니까 니가 딴 거 입어!” 그러다가 머리끄덩이 붙잡고 하이킥 날리고 옷걸이 집어던지고 손톱으로 막 할퀴고 꼬집고…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다.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은 심하게 싸웠다. 어쩌다가 언니가 내 얼굴을 치게 되면 나는 안경이 날아가고 눈에 보이는 게 없다. 흥분하고 막 욕하면서 “미친… 죽여버린다~~!!” 다시 하이킥! 딱 한 번만 참아도 안 싸웠을 텐데 서로 손톱만큼도 양보가 안 되니까 사태가 점점 심해졌다.
언니가 그렇게 미웠나?
사실 언니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고 묘한 질투가 있었다. 언니는 첫째라고 할머니께 세뱃돈도 많이 받고 엄마도 언니를 더 많이 챙겼다. 예쁜 옷도 더 사주고 학원도 더 보내고 어릴 때부터 언니가 머리가 좋다~ 아이큐도 높게 나왔다~ 등 언니 칭찬을 많이 하셨다. 초등학교 때는 집에 오시는 미술 선생님이 계셨는데 언니가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나랑 같이 그림을 그려도 언니 그림만 다들 칭찬을 했다. 그런 언니가 얄미웠다. 워낙 자주 다투다 보니까 언니를 그냥 보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짜증이 끓어올랐다. 나한테 잘해주면 ‘아, 웬일이지? 뭘 시키려고 그러지?’ 선의가 선의로 안 느껴지고 전부다 삐뚤게만 생각했다. 언니가 엄마한테 용돈을 받아가도 ‘아, 진짜 왜 이렇게 돈을 막 써? 자기가 돈 벌어? 엄마도 힘든데.’ 어쩔 때는 “왜 태어났냐? 언니 다 필요 없다. 동생 있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한 적도 있다.
지켜보는 부모님도 답답하셨겠다.
그러셨을 거다.ㅎㅎ 벌도 세우고, 혼도 내고, 매질도 하셨는데 사이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언니와 나에게 마음수련을 권하셨다. 짧으나마 나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잘해주셨던 엄마한테도 내 맘에 안 들면 짜증 내고 심지어 때리고, 남 생각은 안 하고 살았다. 언니한테도 그동안 욕하고 모질게 대했던 게 정말 많았다. 나는 진짜 철딱서니 없고 동생 같지도 않은 동생, 까불고 대들기만 하는 동생이었다. 언니에 대해 짜증이나 미운 감정을 계속 갖고 있으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불편해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는 마치 거울처럼 내 마음을 보여준다. 왜 굳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힘들어야 했을까 싶었다.
제일 많이 버린 게 뭔가?
고집이 좀 셌다. 내가 해야겠다고 하면 무조건 해야 했다. 양보 절대 안 하고 배려 안 하고 먹기 싫은 건 죽어도 안 먹었다. 내가 별로 안 입고 싶었던 옷도 언니가 막상 입겠다고 하면 “싫어! 내가 입을 거야!” 하는 그런 똥고집?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 새로운 것도 시도해보고 수용한다. 사람들을 어려워하고 낯가리는 것도 없어졌다. 생각 자체가 긍정적으로 바뀌어서 뭐든 하면 되겠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도전하게 된다.
요즘에는 옷 때문에 안 싸우나?
싸울 일이 없다. 만약에 같은 옷을 입고 싶으면 “나는 이 신발 신고 갈게, 언니가 이 옷 입어” 하면서 조율하거나 양보한다. 언니는 내가 늦게 들어오면 걱정도 해주고, 주말에는 같이 맛집 탐방도 다니고 쇼핑도 다닌다. 내가 무언가를 사거나 선택할 때마다 언니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된다. 오빠나 동생이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 같은 소소한 기쁨이다.
언니가 이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나?
언니를 보면서 맏이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많이 느낀다. 월급 받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들까지 일일이 챙기는 언니. 손재주가 좋아서 직접 액세서리도 만들어 엄마랑 이모한테 선물을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이 배운다. 언니의 착한 행동들을 삐딱하게 보지 않고 인정하게 된다. 언니가 남자 친구랑 사진을 찍어 와도 예전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세트로 꼴불견’이었지만 지금은 ‘와 예쁘다~ 잘 나왔다~프사(프로필 사진)감이다~’ 얘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마지막으로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줬던 것 같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우리 둘 다 어엿한 성인이니까 각자 위치에서 항상 배려해주고 그런 착한 언니, 동생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 여자 형제는 나이가 들면서 더 친해지고 끈끈하다고 한다. 앞으로도 쭉~ 영원히 지금처럼 평생 붙어 다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언니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좋고 감사하다. 언니 그동안 미안했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