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코 자신의 작품에 사인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조각상
<피에타>를 제외하고는 사인이 없다고 합니다.
그 유래는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의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리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성당 출입을 막고
성당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습니다.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
몸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그는 이 일에 모든 열정을 바쳤습니다.
무려 4년 후, 그는 마지막으로 사인을 한 뒤 드디어 붓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그는 눈앞의 광경에 감탄하고 맙니다
눈부신 햇살과 푸른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새들,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나무….
그때 미켈란젤로의 마음에 한 자락 깨침이 일었습니다.
‘신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고도
어디에도 이것이 자신의 솜씨임을 알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데
나는 기껏 벽화 하나 그려 놓고 나를 자랑하려 서명하다니….’
그는 즉시 성당으로 돌아가 자신의 사인을 지워 버렸습니다.
이후 미켈란젤로는 그 어느 작품에도 사인을 남기지 않았다 합니다.
그거 내가 한 거야, 그게 내 생각이었다니까….
뭐 굳이 생색을 낸다고까지 할 건 없습니다만,
뭔가를 이뤄낸 후 ‘내가 했다 하는 그 마음’이 없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무렴 누가 좀 알아줬으면 싶어, 은근 ‘나, 나’ 하게 되지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정말로
저 이름 없는 들꽃처럼, 저 이름 없는 새처럼 살아간다면
진심으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런 흔적 없이 살아도,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그 행복이 진짜라고, 늘 변치 않는,
저 자연의 아름다움이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