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 초입이면 집집마다 담그는 김장. 그런데 우리에겐 당연하고 평범한 김장 담그기가 2013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김치’라는 음식이 아닌, 김장 담그기가 동절기에 대비한 한국인의 나눔과 공동체 삶의 방식으로 등재된 것. 그래서 등재 신청서 제목도 ‘김장: 김치 만들기와 나누기(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이다. 어떻게 등재될 수 있었을까. 지난 3년간 등재 준비에 참여하여 신청서 작성을 주도한,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위원 박상미 교수(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의 이야기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유네스코가 2003년 제정된 협약에 따라,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는 판소리, 강강술래, 아리랑… 김장 문화까지 총 16개가 등재돼 있다.
현대인 80%가 김장 담근다
현대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전통
‘서울의 풍속에 무, 배추, 마늘, 고추, 소금 등으로 김장을 하여 독에 담근다. 여름의 담그기와 겨울의 김치 담그기는 인가에서 일 년의 중요한 계획이다.’
19세기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통 발효 식품인 김치는 채소 재배가 안 되는 겨울철을 위해 채소를 염장했던 데서 생겨났다. 또한 김장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늦봄의 젓갈, 여름의 천일염, 늦가을의 담그기 등 사시사철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이며 김장독을 땅에 묻어 오랜 기간 발효시키는 지혜가 담긴 문화다. 또한 김장 문화는 현대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 2011년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95%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김치를 먹고 있고, 64%는 하루 세 번의 식사에서 모두 김치를 먹으며, 한국인의 80%는 직접 김장을 하거나 친인척이 하는 김장에 참여한다고 한다. 현대 한국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김치냉장고도 과거 발효를 위해 땅에 묻은 김장독의 환경을 재현한 것이다.
‘어려우면 김장독에서 가져가셔도 됩니다’
나눔의 문화
김장의 과정은 곧 나눔의 문화였다. 한꺼번에 몇 개월 먹을 김치를 담는 김장은 남녀노소,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함께 김치를 담그고, 음식도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것이다. 친척이나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하는 품앗이 풍습도 있어, 이웃 간의 화목을 다지기도 하는 중요한 연중 행사였다. 과거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김장독에서 가져가는 것을 눈감아주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요즘으로 이어져 시청 앞 광장에서 수천 명이 김장을 같이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행사가 열리게 됐으니, 한국인 특유의 김장 문화다.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어머니의 손맛
한국 여성의 정체성
김치의 맛은 집집마다 다 다르다. 그 맛은 여성들을 통해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데, 어머니의 ‘김장 김치’는 한국적인 ‘정’의 이어짐으로도 볼 수 있다. 2006년 당시 ‘김치의 흐름’이라는 제목으로 김치에 대한 첫 번째 논문을 쓰며, 김치의 흐름은 곧 ‘정’의 흐름이라 결론을 내었다. 여성들이 김치를 만들어서 가족, 친지,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과정은 정을 전달하고 가족과 친척들의 네트워크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인 것이다. 논문을 쓰면서 받게 된 한 학생의 에세이에는 ‘김장철이면 온 가족의 김장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김장철에 가족들이 겪는 혼란, 뿔뿔이 흩어져가는 모습’을 이야기했는데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김장 김치의 소중한 가치를 배우다
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며
등재 신청서는 작성에만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함께 공을 들였다. ‘문화유산이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사업협약 의 정신에 기반하여,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위의 내 용들을 토대로 전체 인류 사회에서 김장 문화가 갖는 의미, 문화적 창 의성과 다양성을 보여주도록 했다. 내 스스로도 김장 문화가 갖는 의 미와 가치를 다시금 재조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지금은 친 정 부모님께 김치를 갖다 먹고 있는데, 그러지 못할 상황이 되면 사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준비를 하면서 힘들더라도 김장 문화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장이라는 게 편리하냐 아니냐의 기준을 뛰어넘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걸 더욱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