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화익 29세. 취업준비생.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나와 엄마와의 숨바꼭질은 중1 때부터 고1때까지 계속됐다. 엄마는 공부에 별 뜻이 없는내 의지와 상관없이 영어, 수학 학원에 덜컥 등록하고는 했다. 나는 미꾸라지마냥 빠져나왔고, 어떤 학원도 한 달 이상 다닌 적이 없었다. 엄마는 당신이 이루지 못한 걸 자식에게 기대하고 압박하고 부담을 주셨는데, 특히 공부에 있어서는 아주 엄격했고 무서웠다.
가게 일로 바쁜 엄마는 하루에 한 번 볼 때도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니?” “학원 갔냐?”가 인사말의 전부였다. 그런 엄마가 점점 싫어졌다. 나중엔 엄마만 봐도 화가 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고2 때 엄마는 갑자기 마음수련을 하러 일주일간 논산에 있는 교육원에 가겠다고 했다. 아싸! 숨통이 트이는 듯한 이 해방감, 엄마의 빈자리가 정말 감사했다.
얼마 후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반신반의했다. 에이, 설마~!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엄마는 진짜 변해 있었다. 우선 엄마가 화를 내지 않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나를 이해해주는 엄마의 말들과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전엔 “학원 갔다 왔냐?” 하면서 오직 결과만 묻던 엄마가 “아픈 데는 없니?” “먹고 싶은 것은 없어?” 하면서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었다.
특히 아빠와 농담하는 게 놀라웠다. 아버지는 평소 유머러스했지만,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유머라 엄마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엄마를 보며 온 가족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전 엄마 아빠의 관계는 뭐랄까 사이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애정이 많다고는 볼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미안해요” “제가 할게요” 하는 엄마의 초긍정과 따스함 덕분에 우리 집은 어느새 화목해졌다.
어느 순간 궁금해졌다. ‘마음수련이 도대체 뭐기에 엄마가 저렇게 바뀐 거지?’ 그리고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나도 수련하면 지금의 내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나는 참 우유부단했다. 뭘 하나 배워도 끈기 있게 해나간 적이 없었다. 남들이 잘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수박 겉핥기로 이것저것 한다고 했지만 정작 제대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 덕분에 마음수련을 하게 되면서, 마음수련만은 꼭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뀌고 싶다고 말만 했을 뿐 늘 제자리였던 내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수련을 하며 세상 탓, 남 탓하며 사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었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나는 자격증 시험 실패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수련이야말로 나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행히 올해 나는 한결 좋아진 집중력으로 자격증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요즘은 친구들에게 엄마 자랑을 많이 한다. 내겐 엄마는 둘도 없는 친구다. 지금도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후회 없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만 하신다. 늘 지켜봐주시는 엄마의 사랑은 우리 가족 모두를 그리고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해피바이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