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전고 학생들의 ‘어르신 자서전 써드리기’
글 노가윤 동대전고등학교 3학년
2학년 학기 초였습니다. 국어 선생님께서 “우리 주위의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자서전을 써드리는 봉사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오라”고 하셨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운 작업’이라고 하셨지만 해보고 싶었습니다. 항상 어른들을 대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런 점도 개선해보고 싶었고, 또 글 쓰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지원자가 꽤 많았는데, 최종적으로 20명의 아이들로 꾸려졌습니다. 복지관에서 다섯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추천받았고 우리는 다섯 팀으로 나누어서 한 분씩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할머니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2010년 6월 12일. 인영순 할머니를 처음 뵌 날 너무나 떨렸습니다. 어색하게 첫 질문을 드리자 할머니는 웃으시며 살아오신 이야기를 쭈욱 해주셨습니다. 형제분들과 부모님 이야기를 여쭙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얘기해주셨고, 점점 할머니와 있는 시간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뵀습니다.
인영순 할머니는 음력 1938년 2월 3일에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나셨다 했습니다. 화장품 장사, 물비누 장사, 블라우스 공장….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하셨고, 한국 전쟁 때는 작은오빠가 전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 시절, 매일매일 울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셨을 때는 저희도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런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에 우리가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저희는 할머니 댁에 가는 날이 기다려졌습니다. 저희가 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꼬들꼬들한 쌀밥과 된장국, 부드러운 계란찜 등 맛있는 반찬을 준비해주셨어요. 할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꼭 친할머니 댁에 온 것처럼 편안했습니다. 오늘은 어떤 말씀을 듣게 될까 기대도 컸습니다. 할머니는 살아오신 이야기뿐 아니라, 저희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우리 때는 여자들은 공부를 할 수 없었어. 그저 시집을 가야 했지. 지금은 너무 좋은 시대니까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 “화내지 말고 상대방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 덕분에 좋은 사람도 만나고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구나 싶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인생이 저렇게 허망하구나’ 싶었지. 나는 어리석게 살아왔지만 너희들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어요. 사실 그즈음 친구랑 사이도 안 좋아지고 해서 의기소침했었는데, 할머니 말씀을 들으며 자꾸자꾸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너무 경솔하게 살았구나, 편하게만 살려고 했구나, 우리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데도 만날 불평만 했구나, 하는 반성도 되었고요.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을 잘 가꿔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수업에도 활발히 참여하게 되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성공한 인생도 아니고 그저 기구하게만 살아왔는데, 글로 남긴다는 것이 부끄럽다 하시고, 내가 좀 더 훌륭한 인물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훌륭한 분이셨어요. 어려운 와중에 자식들을 다 공부시키셨고, 돈을 많이 벌어 남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대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기도를 하신다는 할머니. 73세의 연세에도 노인복지회관에 다니면서 할머니보다 더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도우시며 “내가 아직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하다”는 할머니.
할머니를 만나면서 어느 위대한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할머니의 인생 또한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힘든 일을 많이 겪은 편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불행할까 하고 매사에 부정적인 아이가 되어갔어요. 하지만 할머니를 만나면서 많이 밝아지고 나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
10월 중순, 모든 인터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문장 다듬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녹음해 놓은 할머니 말씀을 각자 맡아 정리하고 그것을 서로 돌려가면서 읽었습니다. 11월 중순에는 선생님께서 가제본을 만들어주셔서 할머니께 보여드리고 확인을 받았습니다.
“아유, 뭐 말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내용이 뭐가 많네.” 할머니가 뿌듯해하시면서 당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다고 하실 땐 정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제목이랑 표지는 할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편집했고, 드디어 11월 말에 책이 나왔어요. 제목은 <그리스도와 함께>, ‘인영순, 글 김민정·김현지·곽진빈·노가윤’이라고 우리 이름도 나와 있었습니다.
12월 3일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출판기념회도 열었습니다. 할머니는 “뭐 대단한 거라고 출판기념회를 해”라고 하셨지만 막상 그날은 자녀분들도 다 데리고 오셨답니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자서전을 쓰는 데 보내는 것이 괜찮을까 걱정도 했지만,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송구스러울 만큼 너무 많은 것을 얻었거든요. 무엇보다 제가 정말 많이 밝아졌다는 겁니다.
지금 할머니의 소망은 후손들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평생 간직할 겁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주변의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라고요. 왜냐하면 어느 유명한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말씀을 듣게 될 거니까요. 바로 그분들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분들임을 알게 될 테니까요.
2010년 6개월간의 작업 끝에
<여호와 이레> <그리스도와 함께> <夢꿈> <엄마의 일기> <송암 회고록> 5권의 자서전이 탄생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우리를 변화시켰다
글 박초희 동대전고등학교 3학년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고지식할 것 같고, 우리가 하는 것을 억제하고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나이가 드셨다는 이유로 무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친구들 중에는 어른들 앞에 서면 투명인간이 된 듯 대화를 어려워하는 애들이 많았다 하지만 자서전을 쓰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우리 모두는 달라져갔다.
우리 조가 맡은 분은 이순금 할머니셨다. 1944년 생이셨는데,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아픈 기억, 즐거웠던 기억,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때론 할머니와 함께 한국 전쟁 피란길을 떠나야 했고, 때론 연탄가스가 방 안 가득 차는 위험한 고비도 맛봐야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께도 우리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고,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지금도 열정이 있으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면서 거리에서 할머니들을 볼 때의 마음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냥 할머니려니, 했는데 이제 어떻게 사시는 분일까 관심이 가고 뭐든 도와드리고 싶어진 것이다. 한번은 리어카를 끌고 힘겹게 가시는 할머니를 만나 도와드렸는데, 그러고 나니 뭔가 마음이 찡했다.
할머니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부모님의 마음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가 나를 낳았으니까 용돈을 줘야 하고 아빠는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너무나 자식들을 사랑하며 키운 이야기를 해주실 때, 우리도 그렇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께서 “아무리 자식이 밉게 해도 퍼주는 게 부모니, 너희들이 효도를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더욱 엄마,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한 친구는 엄마가 잔소리하면 예전에는 무시하고 지나치고 그랬는데 지금은 말도 잘 듣고, 엄마가 집안일 할 때면 할머니 말씀이 생각나서 자신도 놀랄 정도로 이것저것 돕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우리 모두를 변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