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필기구의 혁명, 모나미 153 볼펜의 역사
안녕하세요. 모나미 153 볼펜입니다. 제 생일은 1963년 5월 1일이에요. 제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볼펜이라는 것은 생소한 필기구였어요. 당시 필기구라고는 연필이나 잉크를 묻혀 쓰던 철필과 만년필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런데 1962년 모나미의 창업자 송삼석 회장이 일본의 볼펜을 보고 매료되었고, 우리나라에도 볼펜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어요. 그리고 일본에서 기술 전수를 받은 후,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저를 만들게 돼요.
하지만 처음부터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래서 모나미 직원들은 ‘잉크병 없애기 운동’을 하게 됩니다. 가방마다 볼펜을 꽉꽉 채워 하루 종일 관공서, 은행, 기업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볼펜의 장점을 알려나가기 시작했어요. 별도로 잉크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펜을 사용할 수 있다, 사용법이 편리하다 등등. 그렇게 2년쯤 지나자 볼펜을 사용하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사무 능률 면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와요. 다른 문구 제조 회사에서도 잇따라 볼펜을 내놓게 되고요. 한마디로 필기 역사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고나 할까요. 하하.
기본 기능에 충실한 단순한 디자인
제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허례허식이 없고, 기본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얀 플라스틱 몸통에 까만색 부리가 제 모습의 다잖아요. 더도 덜도 없이 딱 필요한 것만 갖추었지요. 일찍이 디자인의 거장 디터 람스는 ‘적게 그러나 낫게(Less is more)’라는 디자인 철학을 이야기했는데요.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쑥스럽지만 그 철학에 근접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어요.
“어떻습니까? 값이 비쌉니까? 모양이 흉합니까? 쓰기에 불편합니까?” 1968년 모나미 광고 카피에 등장한 3가지 질문이에요 그에 대한 답은 지금도 전부 ‘아니요’잖아요. 그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한다는 것만으로 좋은 디자인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2008년에는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선정한 ‘코리아 디자인 2008’의 52개 제품 중 하나로 꼽혔어요. 그리고 2011년에는 <코리아 헤리티지> 전을 통해 뉴욕에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저렴한 가격과 튼튼한 내구성
처음 나올 당시 제 가격은 15원이었어요. 당시 신문 한 부 값,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15원이었는데 여기에 착안해 15원으로 했던 거지요. 당시로 따지면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지금은 3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덕분에 그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간해서는 망가지지 않아요. 참,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저를 사서 심이 다할 때까지 써보신 분 있으세요? 아마 많지 않을 거예요. 쓸 때는 실용적이면서 나도 모르게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은, 편안하고 부담 없는 존재. 어쩌면 그게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은 비결 같아요.
한국인의 삶과 함께하다
벌써 제 나이가 52살이 되었네요. 그 기간을 함께했던 분들은 저하고의 추억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연필만 쓸 수 있었던 초등학교 시절에 저를 쓰던 언니, 오빠들을 부러워했다거나, 수업 시간에 습관적으로 볼펜을 딸깍, 딸깍 하다가 혼났던 일, 제 몸통에 몽당연필을 끼워 사용했던 일 등등. 그 외에도 저는 생활 곳곳에 다용도로 활용되었지요.
이제는 저랑은 비교할 수도 없이 질 좋고 세련된 문구류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에 발맞춰 모나미에서도 2011년에는 48년 만에 신제품을 출시했지요. 기존 형태와 가격은 동일하되 몸통을 노란색으로 바꾸고, 두께를 1.0mm로 두껍게 했어요. 또 지난 5월 중순에는 저의 첫 프리미엄 라인업인 ‘153ID’가 나왔지요. 디자인 및 특징적 요소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급 볼펜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소재와 잉크를 사용한 제품이에요. 그러다 보니 가격은 좀 셉니다.
저도 앞으로 계속 변화 발전해가겠지요. 하지만 단 한 가지, 모나미(MonAmi), 불어로 ‘나의 친구’라는 뜻처럼, 언제나 사람들 곁에 편안하고 부담 없는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