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현승 문화칼럼니스트
2008년 여름 한 카페에서 무심코 집어 들었던 책 <완득이>. 내용도 쉬웠지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어느 하나 매력이 없는 인물이 없었기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읽는 내내 혼자서 배우 김윤석과 유아인을 캐스팅하고 장면을 상상했는데, 주연 배우가 그렇게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가 커졌다. 그리고 동시에 책의 내용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영화화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도 생겼다.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뚜껑을 열어보니, 보글보글 잘 끓인 된장찌개처럼 구수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맛도 기가 막히다. 오랜만에 진하게 사람 냄새 나는 착한 영화를 만났다.
이한 감독 연출의 영화 ‘완득이’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온 질풍노도의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앞집에 사는 선생님이자 인생의 멘토 동주를 만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언제부턴가 교육계에서, 심지어 예능에서까지 ‘멘토’ 열풍이 불어온 것은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인생의 조언자를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무한 경쟁 시대의 불안한 청춘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래서 동주의 캐릭터가, 완득의 캐릭터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완득에게 동주는 스승이자 멘토였고, 친구였다.
김춘수의 시를 패러디한 영화 카피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처럼 동주는 완득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대고, 완득은 그럴 때마다 동주를 없애 달라 기도한다. 그렇지만 “얌마, 도완득!” 하는 그 부름은 사실 꼬여도 한참 꼬여 엉켜 있는 완득의 삶을 동주가 자신의 투박한 손으로 천천히 함께 풀어보겠다는 인간미 넘치는 구원의 손길인 셈이다.
꼽추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완득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스스로 외톨이가 되지만, 동주의 도움으로 세상에 한 걸음씩 발을 내딛고 소통을 시작한다. “햇반 하나 던져봐라” 할 때 같은 그 말투로 동주는 완득에게 필요한 조언들을 또 툭툭 던진다. 그러나 “가난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가난을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느끼게 될 거다.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세상에 더 넘쳐난다, 대학교가 대학이 아니라 세상이 대학이다” 하는 동주의 대사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교사가 폭력을 휘두르고, ‘야간자율학습’은 ‘야간강제학습’이 된 지 오래고, 한 번 문제아로 낙인 찍히면 영원히 문제아가 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뿌둥한 현실에 ‘완득이’는 어퍼컷을 날리고 희망을 외친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소외된 약자다. 필리핀에서 시집온 완득의 어머니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 꼽추 아버지, 카바레에서 꽃을 팔다가 가족이 된 민구 삼촌, 가난한 욕쟁이 화가 앞집 아저씨, 무협 작가 호정. 그리고 여기에 사업가 아버지의 배경조차 마다한 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회 교사 동주가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진심’이 있고 자신의 뜻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깡’도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춤’이다. 영화는 꼽추인 완득의 아버지가 카바레에서 탭댄스를 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바레가 없어지고 나서도 아버지와 민구 삼촌은 오일장을 돌며 춤을 추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젊은 시절 춤을 ‘예술’이라 생각했다던 완득 아버지에게 이제 춤은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완득을 위해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생계 수단이 되었다. 모든 갈등이 해소된 후, 완득이의 집에서 온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 서로를 응원하며 조촐한 잔치를 벌인다. 한잔 걸친 채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완득이’에서의 춤은 ‘희망’과 ‘화해’ 그리고 ‘가족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