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말, 벌써부터 동기 동창부터 비즈니스 관련 모임까지 다양한 송년회 모임 스케줄이 잡히고 있으신가요. 한 해를 잘 보냈는지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는가 하면, 왠지 어색하고 불편한 모임도 있을 겁니다.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모임에 참석하느라 지친 적이 있으시다면, 어느 순간 참석하기 부담스러워진 모임이 있었다면,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왜 이 모임에 나가는가, 왜 이 사람들과 만나는가. 나는 어떤 모임에 가고 싶은가. 지금 짚어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깊이 이해되고 체험되기를 원한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우리 자신을 치유하라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관계를 끊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인간은 저마다 신의 아들이므로 모든 인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의 친구도 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숫자, 150명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로빈 던바(옥스퍼드대 교수)는 1990년대 초, 침팬지, 원숭이 등 영장류 30여 종의 사교성을 연구하다가 대뇌의 신피질이 클수록 교류하는 ‘친구’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피질은 대뇌 반구(半球)의 표면을 덮고 있는 층으로 학습, 감정, 의지, 지각 등 고등한 정신 작용을 관리하는 영역이다. 인간의 경우 신피질 크기를 감안할 때 친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수는 약 150명이라는 것. 아주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온전한 친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는 150명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던바 교수는 이를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온라인상의 ‘친구 맺기’에 적용해 보았는데, 페이스북 등 사이트에서 관리하는 인맥이 수천 명에 이르는 ‘사교적인 사람’과 몇 백 명 정도인 ‘보통 사람’을 비교했을 때(친구의 기준은 1년에 한 번 이상 연락하거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삼았다.) 두 부류 간의 진정한 친구의 수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친구가 1,500명쯤 된다는 사람들이나 수만 명에 달한다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150여 명과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MIT의 사회학자 셰리 터클은 인터넷을 통한 가상 경험이 일반화되면서 나타나는 자아의 변화에 주목해왔다. 그는 수백 명의 젊은이들과 부모를 대상으로 새로운 매체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놀랍게도 이 연구에서 젊은이들이 부모와 친구들의 만성적인 주의력 분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까운 사람들과 집중해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이젠 애써 노력해야만 하는 일이 된 셈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한 사람과 온 마음을 다해 또는 주의 집중해서 만나지 않는다. 지금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지만 곧바로 다른 곳으로, 즉 다른 친구나 가족, 사무실 등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메일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대륙과도 연결되는 삶을 산다. 우리는 한 번에 네 사람이나 여덟 사람, 혹은 그 이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한다. 심지어 건성이라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하고만 주의를 집중해 만나는 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고, 타인에 대한 주의 집중도는 약해졌다.
인간관계도 넓게 보면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 같은 결단력을 통해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이를 먹다 보면 비즈니스 관계도 아니면서 진심을 공유하는 것도 아닌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문제는 그들이 단순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쪽으로 내 삶을 휘저으면서 삶을 복잡하게 만들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은 많이 알수록 좋은 거 아니겠어? 저 사람이 언제 어느 때 도움이 될지 어떻게 알아?”라는 생각에 계속 내버려둔다면 삶은 결코 단순해지지 않는다. 곁에 있는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그들이 생색내기가 아닌 진짜 도움을 줄 리가 없을 뿐더러, 혹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감내하며 받는 인생의 손실을 보전할 만큼 가치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이들이 주변에 있다면, 선 밖으로 정중하게 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연말 모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연말은 모임이 많은 시즌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작에 앞서 여러 인연과의 모임을 통해 한 해를 정리하고 안부를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모임들이 항상 반가운 건 아니다. 내겐 ‘동창 모임’이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5년 정도 되던 때, 우연히 친구로부터 동창 모임 연락을 받고 무척이나 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함께 자율학습을 땡땡이치던 친구부터 전교 1등 하던 녀석까지, 어떻게 변했고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으로 모임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동창들의 첫 모임이 열렸다. 너무나 오랜만에 본 친구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 모습에 신기해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얼싸안던 기억들. 사업 실패로 힘들었던 친구, 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한 친구들의 소식까지…. 하지만 그렇게 모임을 끝내고 다음 모임이 열린다고 연락이 왔을 때는 처음처럼 반갑지가 않았다.
한 해 두 해 모임을 할수록 부담으로 다가왔고, 서로 다르게 살아온 환경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공감이 어려웠다. 그 후 동창 모임은 반복된 옛날 얘기와 자기 자랑하는 모임이 되어갔다. 한둘씩 모임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도 늘어났고, 직업이나 경제력이 비슷한 친구들만의 작은 모임들이 활성화되었다. 심지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자랑을 하기에는 좀 부족한 ‘평범한’ 친구들은 동창 모임이 싫다고 할 정도였다.
그 무렵, 나는 동창들에게 제안을 했다. “아무 이해관계 없이 만난 친구라서 동창 모임이 좋고, 모두 편하고 기쁘자고 만나는 건데,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앞으론 술만 먹지 말고, 1시간 정도는 2~3명 동창들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하는 일 등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갖자”고. 특히 나오기를 꺼려하는 동창(평범해서 자랑거리가 많지 않은)들에게 ‘작은 강연’을 하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40대 중반이다 보니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우리는 점차 소통하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우정으로 발전하고 있다.
모임이 많은 연말,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모임을 계획해보면 어떨까? 어떤 모임이든 무엇인가를 얻고, 서로 공감의 끈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관심’ ‘공감’ ‘배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