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기는 내가 열 살 때 세 달간 남미를 여행하며 적은 거다. 나는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학교를 가는 것보다, 어른이 될 때까지 여행을 가는 것이 세상에 대해 배우는 게 훨씬 많은 것 같다.
– 오중빈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 중에서
페루의 와카치나라는 마을은 사막으로 둘러싸였는데 한가운데에 오아시스가 있다. 이 오아시스 때문에 와카치나가 유명해진 것이다. 우린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버기카를 탔다. 버기카는 어떤 큰 지프 같은 것이다. 그림을 보면 얼마나 무섭고 재밌었는지 알 것이다. 롤러코스터 같았다. 오늘을 까먹지 않을 것이다.
마추픽추는 생각한 것이랑 조금 달랐다. 집도 어디 좀 초가집 같고 벽도 엄마가 말한 것같이 옆의 돌의 모양과 맞추려고 돌을 자른 티가 전혀 안 났다. 그래도 궁금한 게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수백 미터 위에 있는 마추픽추에 엄청나게 무거운 돌과 물을 날랐을까? 답은, 아무도 모른다. 거기는 태양신의 신전, 해시계가 있었고 잉카 사람들은 퓨마를 존경해서 엄청 커다란 바위를 퓨마 모양으로 자른 것도 있었다.
볼리비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다. 버스 파업 때문에 라파스에 오래 있게 되면서 생각해 본 것이다. 여기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물가도 싸서 살기에 되게 좋은 것 같다. 여기서 하루 세 끼 먹는 게 2,400원쯤 된다. 그러니까 한국에 살다 여기에 오면 엄청 부자가 된다. 아주 평화로운 곳 같다. 이 나라를 여행해서 좋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세계에서 가장 큰 이구아수 폭포를 보러 떠났다. 오늘은 아르헨티나 쪽에서 폭포를 보기 때문에 먼저 아르헨티나로 간다. 중간에 나라를 건너간다고 도장도 찍었다. 작은 벽에 브라질 국기가 쭉 그려져 있었다. 계속 달리다 보니 브라질 국기가 아르헨티나 국기로 바꿔졌다. 우린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난 그 국기 벽을 올라가 한 발은 브라질, 한 발은 아르헨티나에 섰다. 기분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다.
에콰도르 오타발로는 남미에서 제일 큰 시장이 있기로 유명하다. 엄마가 축구공을 사줬다! 시장은 정말 컸다. 정말 구경할 것도 먹을 것도 많았다. 길에서 부모를 돕는 아이들을 보며 대단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난 학교를 여행하느라고 안 가는데 걔네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고…. 난 20분만 공부해도 머리가 아픈데 세 살짜리 애도 엄마를 돕고 있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나는 운이 좋아서 배울 수 있으니 잘 배워야겠다.
칠레에서 볼리비아로 국경을 넘고 4륜구동 지프로 갈아타서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라군(호수)에 잠깐 들렀는데 풍경이 아주 대단했다. 뒤에 산, 중간에 호수, 앞에 모래, 위에는 끝없는 새. 정말 대단했다. 아무리 달려도 질리지는 않고 놀라기만 했다. 산을 보면 내가 산이었던 것 같았고, 끝없는 새들을 보면 내가 나는 것 같았다. 인간이 볼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환상적인 것 같다. 잠을 자며 생각한 것은 이것뿐이다. 하지만 4,850미터!!!!를 올라가며 힘들었다. 그리고 4,200미터에서 자며 정말 힘들었다. 끝없는 악몽이 아주 괴로웠다. 다음 날 나는 아침을 못 먹고 힘들어했다. 엄마가 꾀병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상했다.
드디어 우유니에 도착했다. 그 고생을 하고 힘들었는데 그것의 보답이 됐으면 좋겠다. 보답 맞았다. 정말 이것보다 더 멋진 것은 못 본 것 같다. 저 멀리까지 펼쳐진 하얀 소금.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열 살이, 아니 어른,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최고다.
“새로운 느낌도 참 많았지만 다른 느낌도 많았다. 이런저런 느낌이 너무 많아서 다 표현할 수 없다. 금 7톤으로 코팅된 교회에 앉아 있을 때는 잠이 확 깨며 바로 옆에 번개가 친 것 같았다. 이구아수 폭포 옆에서는 전기가 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나한테 바이올린을 배우는 애들을 보며 자랑스러웠다. 나도 세상을 보고 기억으로 가져가지만 나도 세상에서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좋다.”
글&그림 오중빈 사진 오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