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문진정 사진 홍성훈
아직도 크고 작은 총격전이 끊이지 않는 파키스탄의 라호르. 불안한 사회 분위기만큼이나 의료 시설도 열악한 이곳에서 병원에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안과 질환의 경우에는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유일한 길이지요. 한국이라면 단 한 번의 수술로 완치될 수 있는 백내장 질환도 가난 때문에 방치됐다가 실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곳 사람들에게도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일년에 두 번,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무료로 개안수술을 해주는 캠프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 캠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한국인 안과 의사 비전케어서비스의 김동해(48) 대표입니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시설 꽃동네에서 3년간 보건의로 생활하면서 ‘남을 위하는 일이 곧 자신을 위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김대표는 개인 병원을 운영하며 무료 수술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2001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9?11테러 그리고 계속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회의 충돌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종교 단체들이 서로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과연 나는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방법을 찾다가 파키스탄에 안과 의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대표는 곧바로 현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1억 5천만 원이 넘는 수술 장비와 약품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의사와 간호사, 봉사자들과 함께 파키스탄에서 처음으로 무료 개안수술 캠프를 열게 됩니다.
이후로 수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때마다 지역을 하나씩 늘려나갔고, 어느새 24개국에서 무료 수술 캠프를 진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저 진심으로, 꾸준히, 상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다 보니 저절로 길은 넓어지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김동해 대표. 그가 단체를 운영하는 데는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한 번 간 곳은 매년 방문하는, 책임지는 원조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한쪽 눈씩,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수술을 해주고 나머지 한쪽 눈은 6개월 후를 기약합니다.
각 나라를 생각하면 선하게 떠오르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2012년 새해에도 그의 해외 일정은 빼곡히 채워졌습니다. 캠프에 다녀올 때마다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는 김대표는 ‘해외 봉사 덕분에 다양한 수술 경험에다 실력까지 늘었으니 봉사 활동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20분 남짓한 짧은 수술만으로 십 년간 잊었던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할머니,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게 된 아버지,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아이들….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이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말은 안 통해도 표정만 봐도 느껴지죠. 아, 이 사람이 보이는구나! 빛을 찾았구나! 환한 웃음, 밝은 표정을 보는 그때가 가장 기분 좋죠.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한 곳에 쓰인다는 거, 그게 가장 큰 기쁨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