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1937~2007), 그는 평생을 가난한 이웃과 함께 가난하게 살았고 병마 속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도 책 읽기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통장에 인세가 쌓여갔으나 가난을 버리지 않고 8평 작은 집에서 살았다. 더러는 그런 그를 두고 성자(聖者)라 칭송하지만 그는 자신을 미화시키는 그런 말을 싫어했다. 그는 우리와 동시대를 치열하게 살았고 어린이를 위해 글을 썼다. 그의 동화는 슬펐지만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2007년 5월 세상을 떠난 권정생 선생을 추모하며 그의 생애를 돌아본다.
그림책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작가
<강아지똥>과 <몽실언니>, 이 두 작품을 쓴 사람이 권정생이다. <강아지똥>은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고 <몽실언니>는 1990년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이 있으니,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알게 모르게 그의 작품을 한 번쯤은 다 스쳤을 것 같다. 하지만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사람들에게 아직 낯설다. 그의 작품을 책으로 읽기보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몽실언니>는 6.25 전쟁 때문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전쟁 통에 태어난 이복동생 난남이에게 동냥젖을 물리며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어린 몽실이의 이야기다. 그러나 책으로 읽지 않으면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다”는 절절한 이 문장을 만날 수 없다. 권정생은 반공 동화가 판을 치던 때에 반공에 반대하며 ‘남과 북은 한민족’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몽실언니>를 썼다. 몽실이가 인민군 언니, 오빠의 도움을 받고 ‘사람’의 정을 느끼는 장면은 드라마에서는 모두 빠졌으니 드라마만 본 사람은 권정생이 이야기하고자 한 <몽실언니>를 온전히 만났다고 할 수 없겠다.
조금 배가 고프더라도 행복하게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태평양전쟁까지 줄곧 전쟁마당에서 자란 권정생은 전쟁이 끝나서야 비로소 고국 땅으로 돌아온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어릴 때부터 진절머리 나게 겪은 전쟁을 또 겪는다. 6.25 전쟁이었다. 전쟁 때문에 권정생은 중학교 진학의 꿈도 건강도, 모든 것을 잃는다. 열아홉 살에 결핵에 걸려 수도 없이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던 그는 집안 사정으로 3개월간 거지로 떠돌다 1968년 안동 조탑리 일직교회 문간방에 종지기로 정착한다. 3개월간의 거지 생활로 그는 온몸에 결핵균이 퍼져 콩팥 방광까지 다 들어내어 소변 주머니를 밖으로 달았고 남은 시간 2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서른 살 무렵이었다.
몸과 마음은 고통과 절망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었지만 그는 새벽마다 종을 쳤다. 종을 치다 보면 깨끗한 하늘에 수없이 빛나는 별들과 종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며 누구보다 가장 큰 고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아온 예수와 마음을 나누며 위로받았다. 그는 “언제나 감싸주고, 사랑을 가르치고, 날아가는 참새와 들꽃을 노래한 한 폭의 그림처럼” 산 예수를 사랑했다. 예수처럼 조금 배가 고프더라도 행복하게, 그렇게 살고 싶었다.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부당하다고 생각하신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우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갈 돈은 얼마면 될까요?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맞게 살아갈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한 것입니다. 내 몫의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니까요.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권정생은 겨울에는 춥게, 여름에는 덥게 살며 좋아하는 산나물 반찬을 먹으며 가난하게 살았다. 작은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 생각하였지만 병마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그는 ‘글쓰기 농사’를 지었다. 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키워온 그의 꿈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방편이기도 했다.
그의 산문을 모아 펴낸 책 <우리들의 하느님>(1996)을 보면 권정생은 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가치를 두는 세상을 거부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 “풍요로운 삶이란 새 한마리까지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책에 썼듯이, 글이나 말과 행동이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이 일관되었고 평생 글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똥이 꽃보다 아름답다
1968년 어느 봄날, 권정생은 강아지똥이 잘게 부서진 자리에 민들레꽃이 핀 것을 본다. 사람들은 민들레꽃에 눈길을 주었지만 권정생은 ‘거꾸로’ 제 몸을 잘게 부수고 있는 강아지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아지똥은 지렁이만도 못하고 똥강아지만도 못하고 그런데도 보니까 봄이 돼서 보니까 강아지똥 속에서 민들레꽃이 피는구나.” (어린이문학, 1999년 2월)
권정생은 버려진 강아지똥이 병들어 죽음 앞에 선 자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강아지똥처럼 거름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니 그의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며 위안을 주었다.
“<강아지똥>을 쓴 것이 이제부터 30년 전인 1968년 가을에서 1969년 봄까지였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꽃이나 해님이나 별같이 눈에 잘 보이는 것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잘 보이는 것보다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꾼 거지요. 그래서 버려지고 숨겨진 목숨을 찾아 그것들을 이야기로 썼던 것입니다.” <먹구렁이 기차>(우리교육, 1999)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웠다. 똥이 거름이 되었다.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거름이 되는 것, 똥의 존재와 가치가 달라지는 순간이다. 권정생이 민들레꽃을 조연으로 내리고 강아지똥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단순한 자리바꿈이 아니라 ‘버려지고 숨겨진 목숨’들의 가치를 되찾는 일이다. <강아지똥>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더럽고 쓸모없는 ‘강아지똥’이 동화의 주인공인 것에 놀랐고 ‘똥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작가 정신에 더욱 놀랐다.
이 동화가 세상에 나온 지 45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