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미술학도이자 스키 국가대표 양재림 선수

눈밭을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시각장애인 3급의 양재림(25) 선수는, 여자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유일한 장애인 스키 국가대표 선수다. 지난 2011년 1월, 국가대표가 된 이후로 놀랍게 성장한 그녀는 2012년 말,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열린 IPC 알파인스키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금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따는 성적을 거뒀다. 동양화 전공의 미술학도이기도 한 그녀는 스키와 그림이라는, 시각장애인으로서는 하기 힘든 두 가지 도전을 하며 ‘장애에 앞서 더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걸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스키를 탄다는 게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이제는 적응이 됐어요.(웃음) 근데 지형이 파이거나 울퉁불퉁한 데 가면 아직 좀 무서워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덜컹거림을 느끼니까요. 하지만 항상 평평한 바닥에서만 탈 수는 없으니까 꼭 극복해내야죠. 저는 스키가 그냥 좋거든요. 아무리 추운 날도, 이상하게 스키장만 나오면 하나도 안 추워요. 되게 힘들고 쉬고 싶다 하다가도, 뒤돌아서면 또 타고 싶고. 내가 타고 또 타도 이렇게 아쉬워할 만큼 하고 싶은 걸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참 행복해요.

어떻게 그 코스를 인지하고

스키를 타나요?

앞에서 이끌어주는 가이드랑 같이 타요. 가이드가 먼저 가면서 무선통신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그걸 따라가는 거죠. 경기 때는 선수와 가이드 사이에 간격이 멀어지면 실격이에요. 한쪽이 빨라도 한쪽이 느려도 안 돼요. 진짜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되게 어려웠어요. 제가 선수 생활할 때부터 거의 2년간 함께했던 가이드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못 믿겠더라고요. 그러다가 하도 많이 타니까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믿게 되더라고요.

스키 외에 대학에서

그림도 전공하고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릴까

궁금했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을 전공하게 됐어요. 제가 오른쪽 눈만 아주 약간 보이는데 사실 처음에는 멀리 있는 걸 그려야 하거나, 작은 걸 세밀하게 그려야 할 때는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리나? 싶었어요. 그런데 점점 생각을 바꿨어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리나. 내가 보이는 대로 그리자, 똑같이 못 그려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리면 뭔가 나오겠다 싶었어요. 저는 저만의 눈으로 보니까 좀 더 다른 표현이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았고요. 지금은 제가 볼 수 있는 정도 내에서만 그림을 그려요. 뿌옇게 보이면 뿌옇게, 제가 느끼는 대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제 그림의 주제가 스키, 눈 그런 거예요. 운동하면서 제가 느끼는 거를 그림에 표현하고 싶어요. 스키 타고 내려올 때의 속도감이라든가 그런 것도 표현하고 싶고, 제 그림을 보고 스키 타러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게요.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스키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요.

“보이지 않아도 마음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수줍게 말하는 양재림 선수. 아직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자신 없다는 그녀지만, 스키장 위에 선 그녀는, 붓을 잡은 그녀의 손길은, 그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사실 양재림 선수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냉정하리만치 모진 어머니의 교육이 있었다. 임신 7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난 재림이는 미숙아 망막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오른쪽은 눈앞의 사물만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처음에는 도저히 이 상황조차 받아들일 수 없어 힘들어했던 엄마 최미영씨는 곧 아이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재림이를 ‘장애인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서 홀로 설 수 있게’ 교육을 시켰다.

우선 한쪽 눈만 약하게 보이다 보니 높낮이 조절이 안 되어, 내리막길을 못 걷는 어린 재림이를 설악산에 데리고 갔다. 대청봉에서 오색약수터까지는 다 내리막길. 그 내리막길을 혼자서 내려오도록 했다. 하루 종일 기다시피 내려오는 아이의 손을 한 번도 잡아주지 않았다. 속으로는 무수히 눈물을 흘렸지만, 그래야 아이 스스로 설 수 있었기에 냉정하게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 혹독한 훈련이 끝나고 재림이는 계단을 막 뛰어다녔다.

“눈이 잘 안 보이는 건 인생의 장애가 아니다. 어떤 아이는 귀가 잘 안 들리고 어떤 아이는 키가 작듯이, 그건 하나의 특징일 뿐이지 그것 때문에 무엇을 못 하는 건 아니다.”

항상 재림이에게 그렇게 말하던 엄마는, 아이의 균형 감각과 재능을 키워주고자 이런저런 운동과 교육을 많이 시켰다. 기본적인 청소, 빨래, 요리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무엇이든 재림이 스스로 해보겠다고 하면, 엄마는 말했다.

“하고 싶으면 뭐든 해봐, 할 수 있어. 하지만 할 거면 너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해.” 그중 하나가 스키였고, 다른 하나가 그림이었다.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영향을 준 분이 있다면요.

엄마예요. 엄마는 되게 교육에 있어서는 냉철하셨어요. 장애 있어서 뭐? 그렇다고 못 할 게 뭐가 있는데?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뭐든 하겠다고 하면, 정말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대신 그 과정에서 게을러지는 모습을 보이면 화를 내셨어요. 이럴 거면 아예 하지 말라고. 저는 도저히 못 해서 그러는 건데, 그렇게 다그치는 엄마가 섭섭할 때도 있었죠.(웃음)

어머니께 가장 고마울 때는요?

저를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주셨다고 느낄 때죠. 엄마는 항상 “장애가 있다고 하면 남들이 자꾸 도와주려고 하는데, 그 도움도 받으면 안 돼. 너 스스로 해”라고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꼭 필요한 도움은 받지만 웬만한 건 혼자 해요. 사실 외국 시합 나갈 때마다 그걸 느껴요. 스키 장비가 되게 많거든요. 근데 외국 선수들은 다리 한쪽이 없거나, 팔 한쪽이 없어도 다 자기가 챙겨요.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는 코치님들이 다 들어주거든요. 이번 세계 대회에 가서 놀랐던 거는, 한쪽 팔이 거의 없는데도 한 손으로 스키를 풀어서 조립을 하는 거예요. 진짜 저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하도록 교육을 받아서 그렇구나 싶고. 우리 엄마도 나를 그렇게 키워주었구나 싶어서 고마워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양재림씨는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있다. 그녀가 갖고 있는 가능성을 알아본 학교에서는,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으로 그녀를 합격시켰다. 재림씨가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색연필. 색연필의 느낌과 색감이 좋다고 한다.

겨울이면 늘 스키장에 갔던 양재림씨가 스키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 생각한 것은 2009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스키를 탈수록 좀 더 전문적으로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던 차에 대한장애인스키협회를 알게 되었고, 재림씨의 소질을 알아본 관계자는 선수가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보통 시각장애를 가진 선수는 균형 감각이 떨어지는데, 재림씨의 균형 감각은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좋았던 것이다.

매일같이 스키를 연습하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헬스장에 나가고. 사실 시각장애인으로서 부딪쳐야 했을 어려움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탓하기보다 늘 그랬듯,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갔다. 그리고 2011년 초, 그녀는 여자 시각장애인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키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가 된다.

드디어 2011년 2월 제8회 전국 장애인 동계체육대회, 스키 선수로서 치르게 된 첫 경기. 알파인스키 부문에서 여성 시각장애인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부 모든 장애등급, 남자 시각장애인을 통틀어도 가장 좋은 기록이었다. 이어서 그해 12월 미국에서 열린 북미컵대회(NorAm Cup)에서는 동메달을 획득, 선수 생활 1년 만에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보였다. 당시 정인섭 감독은, “세계선수권 대회에 1위 한 선수하고 기록 차이를 비교해 보았을 때, 충분히 세계 5위권 안까지는 진입해 있다. 앞으로 열심히 하면 더 도약할 수 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스키 선수가 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인가요?

아빠를 설득하는 거였어요. 선수가 되기까지 아빠가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셨거든요. 스키장의 자외선 같은 거 때문에 눈이 더 나빠질까 봐, 다칠까 봐 걱정이 되셨던 거예요. 하지만 저는 너무 하고 싶으니까 처음에는 무조건 떼쓰듯이 위험하지 않다고, 시켜달라고 제 주장만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무턱대고 싸우지만 말고, 하고 싶으면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아파도 운동하러 가고, 그림도 운동하는 그림만 그렸어요.(웃음) 그러다 보니까 아빠도 나중에는 포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눈이 더 나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말 눈이 안 보이게 되더라도 스키를 하고 싶었어요. 과연 나의 끝은 어디인가,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아요.

재림씨의 도전이

다른 장애인 친구들에게

희망이 될 거 같습니다.

진짜로 좋아하고 진짜로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다 되는 거 같아요.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세요. 베토벤은 귀가 안 들릴 때 어떻게 지휘를 하고 어떻게 심포니를 작곡했겠냐고. 본인이 하고 싶어 하니까 할 수 있었던 거고,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정말 하고 싶으니까 어떻게든 하려고 방법을 찾게 되고 그만큼 노력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장애인 친구들한테도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하다 보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앞으로 뭔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활동을 하는 시각장애인들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저도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현재 양재림 선수는 2014년 3월, 러시아 소치 동계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대회) 참가를 목표로 열심히 훈련 중이다. 그녀의 목표이자 꿈은 소치 올림픽 금메달. 가장 화려한 꿈을 꾸고 있는 지금, 하지만 양재림 선수에게 가장 위기의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여름부터 그나마 살짝 보이던 눈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 활동을 쉬었으면 하는 의사의 권유, 그리고 그동안 2년여를 함께했던 감독님과 가이드 모두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여건에도 그녀는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꼭 이루고 싶다고 한다.

“최근에 마음이 좀 힘들긴 했어요. 시력이 더 나빠지니까 실력도 조금씩 퇴보를 하는 것 같아 위축이 되었는데, 이번 유럽 대회에서 제가 타는 걸 보고 코치님이 가능성을 봤다고 말씀해주셔서 힘을 많이 받았어요. 언니도 이메일로 ‘네가 꼭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네가 좋아하는 그림과 스키, 둘 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줬는데, 그 말이 되게 힘이 됐어요. 상황을 탓하지 말고 어떻게든, 될 수 있게 앞만 보고 가야지요.”

양재림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김성택 감독은 “재림이의 최대의 장점은 본인의 의지”라고 말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을 통해 스키 선수가 되었고, 또 그림을 전공하는 학생이 되었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하나씩 하나씩 조용히 극복해온 스물다섯 살의 청년 양재림.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의 속도로 삶의 슬로프(slope)를 만들어갈 것이다. 때론 덜컹거리는 길도 만날 것이고 때론 평평한 길도 만나겠지만, 보이는 것 너머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씩씩하게 행복하게 계속 도전할 것이다.

최창원 & 사진 김혜진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