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미인

일개미 같은 어머니입니다. 동생을 보낸 뒤부터 당신의 노동은 텃밭으로 옮겨 갔습니다.

맑은 하늘 구름에 앉아 어머니 집을 내려다봅니다. 눈 아래 아득한 성냥갑 집에서 허리 굽은 점 하나가 나옵니다. 그 점을 따라 한참 동안 눈길을 긋습니다. 어머니 발자국이 남긴 실곡선이 텃밭과 마당에 가득합니다.

부엌강아지 같은 어머니입니다. 아직도 목이 늘어진 양말을 기워 신고 밭일을 나가십니다. 내 아들이 초등학교 때 입던 낡은 내복이 제일 따습다며 한겨울을 나십니다. 온종일 바람과 흙과 먼지에 절은 당신 모습은 천상 아궁이를 나온 부엌강아지 같습니다.

그 어머니가 일요일이 되면 꽃단장을 하십니다. 새벽부터 목간을 하시고 플라스틱 퍼머롤로 머리를 말아 올리고 장롱에 아껴둔 새 옷을 꺼내 이것저것 입어봅니다. 구두도 꺼내 반짝반짝 닦아 둡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멀리 떠나보내고부터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갑니다. 당신이 더 이상 품어 돌보아줄 수 없는 자식을, 하늘에 계신 그분에게 기원하기 위함이지요.

역시 옷이 날개입니다. 그렇게 차리고 나서니 원래 인물이 나옵니다. 하긴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마당 어물전에서도, 나는 인파 속에 있는 내 어머니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계절에 어울리는 예쁜 모자나 고운 머플러를 머리에 곱게 두른 이가 내 어머니입니다.

몇 해 전,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서울내기 친구들이 우리 집까지 놀러 온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 어머니에게 옷 선물을 보냈습니다. 꽃무늬가 있는 블라우스를 입고 미소 짓고 있는 어머니 모습을 사진에 담아, 친구들에게 답례로 보냈습니다. 누가 뭐래도 아직은 맑고 깨끗한 얼굴이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오 년 만에 그 친구들이 다시 왔습니다. 그때처럼 하룻밤을 묵고 서울로 돌아간 친구들이 또 어머니 옷을 사 보냈습니다. ‘순천 미인 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주세요’라고 쓴 편지도 동봉했고요. 그래서 새 옷 입은 어머니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아! 우리 어머니가 늙으셨습니다. 허리가 한쪽으로 많이 굽고 살이 빠져 수수깡처럼 야위었습니다. 고작 오 년밖에 안 지났는데 백발이 성성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지난 장날 함께 장을 보다가 당신이 문득 내게 물었습니다. “애비야, 내가 쩌그 가고 있는 저 할매만큼 허리가 굽었냐?” 나는 얼른 아니라며 가던 길을 재촉했지요. 그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늙으면 다 그런 거이다. 오그라지고 비틀어져 못쓰게 되는 거이다.”

일요일이 왔습니다. 순천 미인께서 오늘도 단아하게 차려입었습니다.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모자를 쓰고 서울에서 보내온 새 옷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순천 동천 긴 방죽길이 훤합니다. 역시 사진은 믿을 게 못 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실물이 최곱니다. 오늘 교회에 가면 예수님께서 활짝 웃으시며 이렇게 말하실 것 같습니다. “서여사님, 정말 예쁩니다. 데이트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최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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