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46). 그는 불안 많은 부모들에게 따듯한 위로와 해법을 건네는 우리 시대 육아 전문가이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집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트위터에 올리기 시작한 육아 조언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화제가 되었고, 최근 출간한 책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도 큰 인기를 끌었다. 늘 거울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비춰주며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끌어주려고 노력하는 의사.
그가 오랫동안 상담을 하다 보니 저절로 갖게 됐다는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근조근 요즘 사람들의 마음 이야기를 전했다.
<마음 읽는 시간>이란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실제 그런 시간의 필요를 많이 느끼시나요?
그럼요.(웃음) 우리가 보통 마음먹기 나름이다,라고 하잖아요. 외부의 여러 가지 상황들도 결국 내 마음을 통해 소화가 돼서 해석을 하게 되고요. 내 마음에 바람이 부냐, 파도가 치냐, 구름이 껴 있냐에 따라서 외부 상황이 전혀 다르게 비치죠. 흔들리는 내 마음에 따라서 봐놓고 정확히 본 거다 착각하는 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 같습니다. 지금 내 마음의 상태를 알아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도 있잖아요. 타인을 볼 때도 마찬가지고요. 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내 마음을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내 인생도 조금은 잘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요?
가령 어제 있었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구나 살펴보고, 이럴 때는 내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네 하며 자기반성적인 사고를 가지는 거죠. 그런데 경험이 없으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와 철학이 담긴 글을 읽으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돼요. 사실 우리가 나한테 벌어진 일들과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자기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잖아요. 내 마음이 어땠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바깥에서 벌어진 일들이 원인이라고만 여기면, 바깥이 변하지 않는 한 어떤 해결책도 나오지 않아요. 내가 주체로서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으려면 내가 그 상황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그 마음이 어땠는지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죠.
요즘의 부모들은 불안이 많다고 하셨듯이, 부모들부터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부모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렇게 느낄 때가 많아요. 내가 이대로 유지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애들도 잡는 거지요. 아이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 행동을 부모인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내가 불안한 정도가 나의 반응을 결정합니다. 아이를 보고 있지만 실제의 아이가 아닌, 자신의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왜곡된 아이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제대로 보려면 부모의 마음부터 걷어내야 합니다. 내가 불안해서 그랬구나를 알면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달라지더라고요.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불안한 것에 지지 않고 맞서려고 해보는 거예요. 실제로 나를 돌아보며 이 불안이 근거 있는 건가? 묻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자 마음먹으면서, 그것에 집중하는 거죠.
“저 역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제 부족함이 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제가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기보다 부족한 저를 원망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위해서 시간을 쓰지 않고 저를 탓하느라 시간을 다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안 다음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하나라도 더 제게 채워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이 될 것이니까요.”
서천석 박사가 부모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은 그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며 부모로서 성장해간 과정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그 울림은 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고 인생은 왜 사는가? 늘 고민해왔던 그는 의대에 진학하며 자연스레 정신과를 택하게 된다. 그 후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어른들이 앓는 마음의 병의 뿌리가 어린 시절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고, “그 상처를 어린 시절에 치료했더라면 지금은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 그는 자신의 아이가 태어날 무렵 소아정신과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 진료실에서 무수히 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만나고 상담하며, 그리고 두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느낀 이야기들을 트위터에 올리기 시작한다. 단순한 위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그의 글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기하게도 그의 트위터를 구독하는 이들의 반은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그는 자연스레 성인들이 겪는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도 글을 쓰게 된다. 많은 이들에게 따듯한 위로와 더불어 마음의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했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부모는 부모가 되어서야 성장한다고 했는데, 스스로도 부모가 되어 배운 게 있다면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진짜로 느끼는 거 같아요. 그전에는 누군가를 사랑해서 결혼했어도 그 사람을 소유하는 것, 나한테 잘 대해줬으면 좋겠는 거, 그 정도를 생각했다면 애한테는 내 중심적으로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기대하지 않고 주는 사랑을 하게 되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내가 노력했다고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그래도 주는 과정에서 만족을 얻고, 내가 노력한 것만으로도 나를 위안하고 만족할 수 있다는 거, 이런 거를 아이를 키우면서 배운 거 같아요. 그리고 좀 더 겸손한 자세도 배웠지요. 남의 애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된다거나, 미래에 대해서도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거나 하는 거요. 늘 쉽게 단정하고 쉽게 판단했는데, 그러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기다리는 이런 태도는, 아이를 키우지 않았으면 배우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OECD 23개국 중에 23위, 그것도 4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체감하시는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어떤가요?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어른들보다도 낮다는 건 객관적으로 분명한 거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압도적으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해요. 애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는데 부모가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까요. 사는 게 괴롭고 힘든 모습만 보다 보니 어른이 되기 싫은 거고, 그런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없죠.
결국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겠네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거 같습니다.
소아정신과 의사다 보니 아이가 해주는 부모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애들이 정말 정확히 부모를 보고 있구나 하면서 놀랄 때가 많아요. 한번은 어떤 아이가 그런 말을 해요. “엄마가 친구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저희 엄마는 친구가 없어요.” 부모들은 인식하지 못해도, 아이들은 다 보고 있거든요. “내 삶이 곧 내 메시지다.” 간디가 그런 말을 했는데,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부모가 먼저 자신이 말한 대로 된다면, 아이는 저절로 따라가요. 그 가르침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지죠. 매일 병원에서 부모들을 만나다 보면, 부모 자신이 만족하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지 않는 한 아이가 충분히 좋아지긴 어렵더라고요.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신부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으세요?
저는 낙관적, 늘 노력하는 자세, 포기하지 않고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해보려는 마음, 그런 걸 아이들에게 강조하거든요. 인생에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어려움들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피할 수 없다면 어려움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니까요. 그래서 말하기에 앞서 나는 정말 그런가? 나부터 그렇게 빨리 회복해서 벗어나고 있는가? 그런 걸 먼저 돌아보고 나 자신부터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죠.(웃음)
요즘 방송에도 ‘아빠 육아’가 트렌드잖아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자문의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육아를 어려워하는 아빠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처음에 <아빠 어디 가>를 보면서 제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빠들의 변화였어요. 초기에는 아이와 어떻게 교류해야 할지 모르던 아빠들이 어느새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려 하잖아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보면, 아빠들도 아이들도 변화가 굉장히 커요. 세 달 정도 녹화하면서, 8일 정도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블로씨 아이 ‘하루’의 경우 성격이 굉장히 바뀌었어요. 아빠하고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처음에는 말수도 없고 쿨 시크한 아이였는데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자기표현이 많은 아이로 변했거든요. 또 처음에 힘들어하고 벅차하던 아빠들도 가정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는 모습이 나와요. 그저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뿐인데, 이런 변화가 오는 겁니다.
‘아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다보다 어떻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해줘라’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무엇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주는 기쁨은 별로 없어요. 내가 사는 모습이 내 마음에 들어야 사람이 만족하게 되잖아요. 무엇이 되느냐만 생각하면, 안 될 때는 난 안 돼~ 하며 자꾸 좌절감에 빠지고 소위 말하는 잉여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돼요. 그런데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 잉여가 아니죠. 그러면 내가 나에게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렇고, 삶을 살아가면서도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결해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16년 전쯤 정신과 전공의 시절에 6개월이 넘도록 안 낫는 환자가 있었어요. 답답하고 괴롭고, 자기 회의도 빠지고. 도저히 안 돼서 지도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계속 물어보시는 게 한 가지였어요. 정말 그분을 고치고 싶은가? 그리고 말씀하시길 “자네가 진심으로 고치고 싶다면 고칠 수 있을 것이네.” 그런데 가만 보니 정말 고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봤나 생각해봤더니 그러지 않은 거예요. 내가 늘 해오던 방식만 하고서 변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 거죠. 그 후 새로운 방법을 더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도움이 됐죠.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아이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면 부모로서 얼마나 노력했냐 물어보면 별로 해본 게 없어요. 어떤 문제든 정말 진심으로 원하면 반드시 길은 있는 거 같아요.
좋은 사람, 행복한 부모가 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결과보다는 늘 과정에 집중하시라는 겁니다. 결과에 집착하는 순간 내 모습이 보이지 않거든요. 양궁 선수가 활을 쏠 때 과녁보다 자기에 집중한다고 해요. 과녁을 보면 오히려 맞히지 못한다고. 내 자세와 호흡, 내 몸의 근육과 내 마음이 내가 훈련하고 기억한 그대로인지에만 집중하는 거지요. 내 생활 내 태도를 봐야 오히려 그 결과에 다가갈 수 있는데 결과만 보며 조급해하면 다른 것들은 전혀 보지 못하죠. 아이를 키울 때도 아이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내 태도에 집중해 보세요. 분명 ‘행복한 아이를 둔 부모’라는 결과를 얻게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정신과 상담은 거울과 같은 것. 누군가의 마음을 바르게 비쳐주기 위해 스스로도 똑같은 입장에서 상담을 하는 등 자신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서천석 박사. 17년 정신과 의사 이전에 마음에 대해 늘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이기에, 그가 건네는 이야기들엔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는가 보다.
“오늘 비가 왔다고 내일 맑은 걸 느끼지 않을 필요가 없잖아요?”
혹 오늘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가, 혹 오늘 부족함을 느낀들 어떠한가. 서천석 박사는 그 한계를 인정하고 긍정적인 방향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언제나 우리는 화창한 내일을 준비하는 행복한 사람이지 않겠냐고 말한다.
“자신의 강점을 완벽함에 두지 마세요. 늘 성장하려 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장점으로 삼으십시오. 그래야 자신을 오래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가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