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서울 한복판에 비밀의 화원이 있다. 창덕궁

“창덕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은 담장이다. 경계가 삼엄해야 할 왕궁의 담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낮다. 담장 밖 숲의 나무들은 왕의 집무실과 침소, 왕비의 거처가 있는 궁궐을 향해 서 있다. 담장 안과 밖의 경계를 보지 않고 숲을 품고 있는 왕의 정원. 동서양 어느 왕궁에서도 만날 수 없는 창덕궁의 특별함이다.”
사진, 글 배병우

주합루에서 내려다본 부용지 일원.
주합루(宙合樓)란 우주와 하나가 되는 집이란 뜻이다. 부용지는 사방이 네모난 연못인데, 못 중앙의 둥글게 생긴 작은 섬에는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천원지방(天員地方)의 세계관을 잘 나타낸다. 2003년

낙선재 후원의 만월문.2003년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지경에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조선 건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공헌한 정도전(鄭道傳)은 새 군주가 살 궁궐을 짓는 이들에게 이런 지침을 내렸다. 한마디로 ‘검소함을 숭상하라’다.

창덕궁은 조선의 제3대 임금인 태종이 1405년에 지었다.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건립된 궁궐이지만 왕들은 주로 창덕궁에 거처하며 정사를 보았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북쪽의 응봉에서 내려온 산자락의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세워진 창덕궁은 지형지세와 어울리는 건물 배치와 후원의 조경으로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궁궐로 평가받고 있다. 후원은 자연 그대로의 기복을 가진 수림 속에 지형에 따라 알맞게 방지를 꾸며 물가에 누각이나 정자를 앉혔기 때문에 자연미와 인공미가 서로 조화를 이룬 소정원이 곳곳에 산재한다.

승화루 일원의 담장과 능수벚나무. 2003년

연못 옆의 관람정과 언덕 위의 승재정. 2003년

낙선재 후원에서 상량정으로 연결되는 협문. 2003년
창덕궁 후원은 무질서하게 드러난 서울 시내의 도시 풍경 속에서 서울의 아름다운 자연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숨겨진 보배 같은 곳이기도 하다.
건축이 자연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소로(小路)가 언덕과 구릉을 따라 지나며 그 곁에 적절히 배치됐다. 그 속에는 시간과 공간이 자연과 함께하는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다. 너무나 소중한 서울의 심장 창덕궁. 이곳이 없다면 서울은 삭막한 도시일 뿐이다.

 

소나무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 배병우님은 195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홍익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연구 생활을 했습니다. <풍경을 넘어서>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열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자연과 조화하는 건축과 후원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창덕궁을 1970년부터 촬영해 왔으며, 2006년 동양의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미술관인 스페인의 티센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작가입니다. 사진집으로 <종묘> <소나무> <창덕궁> <Sacred Wood> <빛으로 그린 그림>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