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킴의 요리는 따듯하면서도 정갈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렇기에 “기분 좋아지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라고 평가받는다. 2010년 미국스타셰프협회 선정 ‘아시아라이징스타셰프’, 2010년에 방송된 MBC 드라마 <파스타>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현재 바른 식문화 운동을 하며 요리사가 되고 싶은 소외 계층 아이들을 돕고 있다. ‘요리와 삶은 같이 가는 것’이라 말하는 셰프 샘 킴. 그의 파스타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이야기.
분주한 저녁 시간 이탤리언 레스토랑 ‘보나세라’의 주방. 총괄셰프 샘 킴이 요리 하나하나를 꼼꼼히 감수한다. 그가 15여 명의 주방 식구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조금은 늦더라도 스스로가 100% 만족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것.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정성까지 함께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에 무한한 가치를 올려놓자’라고 했는데, ‘요리의 가치’란 무엇인가요?
요리는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을 주는 언어도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요리 하나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아요. 한번은 제가 요리사가 꿈인 청소년들을 멘토링하러 갔다가 한 중학생 아이에게 들은 얘기인데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자기가 학원에서 배워간 애호박볶음 요리를 해드렸더니, 아빠가 감동해서 술을 끊으시더래요. 아빠도 딸이 고사리손으로 만든 요리를 받는 순간 마음이 부끄러웠겠죠.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되게 부끄러웠어요. 저는 제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고가의 음식을 만들지만, 과연 요리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어떤 게 더 가치가 있을까. 당연히 그 중학생 아이의 애호박 요리겠죠.
“그 애호박 요리처럼, 요리가 가진 무한한 힘을 보여주고 싶다”는 샘 킴. 그에게 요리가 가진 힘을 제일 처음 보여주었던 분은 어머니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며 무작정 하숙집을 시작했던 어머니. 김밥도 잘 못 쌀 정도로 요리 솜씨가 없던 어머니는 하나하나 부딪혀가며 요리를 배워가셨고, 언제나 정성껏 푸짐하게 하숙생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셨다. 비록 뛰어난 솜씨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진심 어린 요리에 감동하고 행복해하던 하숙생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그도 자연스레 요리사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1999년 8월, 그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요리사의 꿈을 찾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비행깃값 정도만 간신히 마련한 채 오른 유학길. 떡집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일식집 막내로 들어가 채소 다듬기, 생선 손질, 설거지와 청소 등 잔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다. 그 후 초밥 요리사로 3년. 하지만 정적인 일식 요리사보다는 움직임이 많은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주방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정이 커져갔다.
그는 다시 이탤리언 식당에서 채소 다듬기, 면 삶는 법부터 배웠다. 일이 끝나면 주방에 남아 수없이 요리 연습을 하고, 쉬는 날이면 대형 서점에 가서 하루 종일 요리책들을 보며 레시피를 연구했다. 그러면서 점점 이탤리언 요리사로서의 실력을 키워갔지만, ‘동양인 요리사에겐 파스타나 리소토 같은 불을 사용하는 이탤리언 음식을 맡길 수 없다’는 편견에 부딪친다. 하지만 그럴수록 실력으로 입증해 보였고, 결국 그는 유명 레스토랑의 수석셰프, NBC 방송국의 TV쇼와 드라마의 오픈과 엔딩 파티를 지휘하는 등 실력 있는 이탤리언 셰프로 당당히 인정받는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인종을 초월해 누구나 감탄하듯, 항상 눈을 반짝이며 즐겁게 배우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청년의 진심은 결국 통했던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이탤리언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좋은 레스토랑, 좋은 셰프들이 일하는 곳에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100장 넘게 이력서를 돌렸지만 한 군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꼭 일해보고 싶은 레스토랑이 있으면, 이력서가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것을 보고서도 몇 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다 보니 결국 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파스타나 리소토 같은 음식들에는 프라이팬을 안 주더라고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면, 당연히 한국인이 하는 걸 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탤리언 음식은 이탤리언이 하는 것을 먹고 싶어 할 거라는 이유였죠. 이해는 가지만 꼭 그 나라 사람만 잘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안 되겠다 싶어서, 한번은 주방이 아주 바쁜 시간에 무작정 프라이팬을 잡고 저도 파스타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어요. 그 후로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서게 된 거죠.(웃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은 어떤 역경도 이겨낸다는 걸 보여주셨네요.
제가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딱 그거예요. 환경에 나를 가두지 말라고요. 어떤 친구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고졸밖에 안 되는데 유학을 갈 수 있을까요, 훌륭한 셰프가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랬죠. “나는 고졸인데…”라고 말하는 자체가 이미 나를 과소평가하는 거다, 고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더 큰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리지 말라고요. 자기만의 꿈을 이루느냐 마느냐는 내 자신이 얼마나 긍정적이냐에 달려 있는 거 같아요.
샘 킴의 멘토는 누구셨을지 궁금합니다.
최초의 멘토는 어머니였고요,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는, 미국에서 처음 만난 일식 스승님이세요. 한국인 초밥 요리사로, 한국 셰프 중에서도 최고인 분이었는데, 성격이 되게 괴짜셨습니다. 밑에 셰프의 요리가 마음에 안 들면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 버리기도 하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완벽한 음식을 만들어 드리려는 모습이 좋더라고요. 그분 말씀이 “요리란 하얀 백지 위에 그린 그림이다. 만약 산을 그리고 나무와 강을 그린다면 요리사는 그 사물의 아름다움과 높이가 다 다름을 표현해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정말 인상적이어서, 그렇게 요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을 익히기 위해 수없이 노력을 했습니다.
최고의 셰프를 꿈꾸며 미국 생활을 하던 그에게, 어느 날 ‘진정한 요리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유명한 셰프들을 따라 홈리스(노숙자)들에게 음식 봉사를 하러 가게 된 것이다. 몇 백 불짜리 코스 요리를 만들던 최고의 셰프들은 홈리스들을 위해서 1달러짜리 ‘타코’를 만들었다. 처음엔 그 모습이 의아했는데 단 1달러짜리의 음식에 행복해하는 홈리스들을 보면서, 기존의 생각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가치들이 되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마음을 감동시키는 요리를 하자, 음식이 가진 무한한 힘을 보여주는 요리사가 되자, 그때부터 또 다른 꿈이 생겼지요.”
그는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요리 교육을 시켜주어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기업을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 미국에서 셰프로서 쌓아온 명성을 모두 내려놓고, 2009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서는 전혀 인지도가 없었기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2010년 1월 드라마 파스타가 방영되면서 일약 스타 셰프로 떠오르며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도 날개를 달게 된다.
지금은 요리사를 꿈꾸는 친구들을 위한 멘토링 강의, 아이들을 돕는 방송 프로, 요리를 통한 나눔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아름다운재단의 ‘보육원 아이들에 대한 정부 식비 지원 늘리기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고른 영양분을 제공해줄 수 있는 식비 지원은, 곧 아이들의 평등한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시간이 샘 킴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탈북자나 고아들, 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친 적이 있어요. 처음엔 어두웠던 표정들이 요리를 하면서 웃음도 짓고 눈빛도 초롱초롱해지는 것을 보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얼마 전에 요리사가 꿈인 소아암에 걸린 7살 아이와 같이 요리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순간이라도 셰프가 됐다는 꿈이 이뤄지는 경험을 한 후 아이의 치료에 굉장히 도움이 됐대요. 그럴 때면 제 개인의 뿌듯함을 넘어, 요리의 무한한 가치를 되새기게 되니, 저에게는 참 소중하고도 고마운 시간들이지요.
성공한 셰프이지만 정말 이 길이 나의 길인가, 되짚어 보거나 후회한 적은 없으신지요?
성공이라는 말은 좀 이른 거 같아요. 사실 성공한 셰프, 스타 셰프라는 시선도 부담스럽습니다. 아직 제가 꿈꾸는 최종 목적지에는 가지도 못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요리라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어려움도 어려움으로 느끼지 않았고 후회 같은 것도 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중요한 거 같습니다. 지금도 제가 가장 잘해야 하는 분야는 오직 요리라고 늘 생각해요. “요리가 좀 그런데?”라는 말에 피가 끓는 걸 보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느끼는 거죠.(웃음)
샘 킴이 전하는 내 인생의 레시피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
나는 파스타를 정말 좋아한다. 미국에서 이탤리언 요리를 배우던 막내 시절 선배 셰프들이 후배들을 위해서 파스타를 만들어주면, 늘 마지막 뒷정리 후 식어버린 차가운 파스타를 먹었는데 그것조차 너무 맛있었다. 한국에서 총괄셰프가 된 후 나도 그때의 선배들처럼 후배들에게 파스타를 만들어주었다. 올리브오일을 넉넉하게 두른 후 다진 마늘과 때에 따라 남은 재료들을 넣어 면과 함께 볶아 만드는 ‘알리오 올리오!’ 간단히 허기를 면하는 용이었던 이 파스타는 드라마 <파스타> 덕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요즘 강연이나 SNS를 통해 바른 식문화 운동을 펼치고 계시지요?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을 나타낸다(What you eat is who you are)’라는 것을 많이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 몸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잖아요. 그래서 더 나은 먹을거리를 먹으면, 더 나은 삶을, 더 나은 미래를 가꿔갈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 요즘 어린아이들의 비만율이 20년 전에 비해 5배가 되었다고 해요. 아이들의 식단이 인스턴트 위주로 변해가면서 생기는 변화죠. 일단은 지금 무엇을 먹는지 점검해보는 습관이 중요한 거 같아요. 음식 주문 전에 잠깐이라도, 어제 뭘 먹었지? 생각해 보는 겁니다. 어제 고기를 먹었으면, 오늘은 채소를 먹자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한동안 안 먹은 음식도 적어보면, 거기서 오는 부족한 영양소도 알 수 있지요. 요리사는 사람의 병을 예방할 수 있게 하는 직업이니까, 그런 걸 꾸준히 알리려고요.(웃음)
좋은 요리를 만들 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죠.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좋은 요리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의 모토 중 하나가 ‘당신이 만든 요리가 바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낸다(What you cook is who you are!)’예요. 요리에는 나 자체가 그대로 담기거든요. 성격은 어떤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래서 요리사를 뽑을 때, 화려한 경력보다 우선은 좋은 사람인가부터 봅니다. 요리와 삶은 같이 가는 거니까요.
그렇다. ‘요리와 삶은 같이 가는 것’이기에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레시피 연구를 한다. 일상생활, 아이의 옷과 동화책의 색감들, 주위에 널려 있는 사물들에서도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요리로 표현해낸다.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기업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그 길에서 만나는 어떤 어려움도 기꺼이 반긴다. 그조차도 삶이라는 코스 요리를 멋지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재료들이라 믿기 때문이다.
“따듯함과 포근함, 밝고 경쾌한 생명력이 있어 좋다”는 이탤리언 요리처럼 그렇게 꼭 닮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 샘 킴. 앞으로 그가 베풀 만찬은 얼마나 푸짐하고 풍성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