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골수성백혈병입니다.”
2000년 겨울, 배종건(62)씨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떨어졌다. 19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입사,
30년간 한길을 내달려왔던 그는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그해 초 지점장이 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글 김혜진 사진 홍성훈
“순간 인생이 확 돌아가는 느낌과 동시에 헛살았구나 싶었죠.”
설상가상 1년 만에 병은 만성에서 급성으로 급속도로 악화됐다. 백혈병 치료 방법은 골수이식뿐이었지만, 골수가 맞는 사람도 찾지 못했었다. 그 무렵 희소식이 들려왔다. 글리벡이라는 백혈병 신약이 처음 나온 것이다. 그러나 살아날 확률은 불과 8%. 그나마 약을 복용해도 내성이 생기면 소용없었다. ‘언제 죽나’ ‘언제 내성이 생길까’ 늘 불안해하며 지내던 날들….
죽음 앞에서 삶은 단지 물거품이란 사실에 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지….
백혈병으로 인해 지점장직도 그만두고 은행연수원에서 근무를 하던 때였다. 금융감독원이 주최한 연수 프로그램에서 마음수련 강의를 듣게 되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버려진다는 말이 와 닿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부터 내려놓고 싶었다. 그는 1주 휴가를 내서 논산에 있는 마음수련 교육원에 들어갔다. 모처럼의 휴가였다. 이렇게 자신과 마주하고 지난 삶을 돌아본 게 언제였던가.
‘세상엔 나쁜 놈도 많은데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리나…’ 하늘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가 너무 가여워 울분을 토했던 지난 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저놈 참 안됐다, 하는 그런 말도 듣기 싫었어요. 다 가식적으로 들렸으니까요.”
처음엔 세상에 대한 분노, 그동안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들을 탓하는 마음들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바탕 태풍이 지나가서였을까. 수련으로 혼잡한 마음들을 걷어내자 비로소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학교 다니기도 힘들었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한다’며 무수히 다짐했던 시간들. 은행에 취직해 받는 월급 족족 부모님께 드렸다. 사업하는 형제들도 도와주었다. 그건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스스로는 돈 한 푼 없이 지낼 때도 있었지만 그게 도리라 여겼다 한다.
“돈 벌어서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와줘도 못사는 형제들을 보면 답답했고, 경제적으로 손해를 끼친 형제들과의 관계도 갈수록 서먹해졌다. 돈을 못 받을까 전전긍긍했고, ‘도와줄 수 있는 한계가 있는데 다들 나한테만 기대하고 힘들게 하는구나…’ 불만이 커져갔다. 40대 후반이면 퇴직을 준비해야 한다, 그 이후 자식들 결혼과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런저런 생각이 40대 가장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하지만 가족은 그의 마음을 몰라주는 듯했다.
가족, 형제 등에 대한 마음들을 버려나갔다. 돌아보니 그가 가졌던 생각들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내가 집안의 중심이니까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준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으면 잘 못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각자 열심히 살고 있는 형제들의 모습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을 뿐이었다.
도와주었다는 마음은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열심히 사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가족을 무시한 건, 오히려 자신이었다.
“주위 형제 가족들에게 참 많이 미안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가족을 참으로 사랑한다는 게 뭔가 돌아봤지요.”
결국 마음을 잘못 먹고 살아온 대가가 병으로 나타난 거였다. 이제 버리면 되었다. 일주일 수련을 마치고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다녀온 그는 동네에 있는 지역 수련원에 다니며 계속 마음수련을 이어갔다.
수련을 하며 무엇보다 병에 대해서 잊고 산다는 게 좋았다. ‘내가 죽으면 가족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죽으면 끝이라는 두려움과 공포에서도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마음은 점차 가벼워졌고, 늘 피로감에 휩싸이던 몸도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온갖 미련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던 자신은 ‘진짜 나’가 아니라는 걸…. 그동안 돈, 명예, 출세를 위해 살았던 삶이 왜 그토록 허망한지도 알 수 있었다 한다.
“인생이 뭔지도 모른 채 살아왔는데, 병이 저를 돌아보게 한 겁니다. 사람이 아파봐야 세상 이치를 알고 겸손하게 살겠구나 싶을 정도로, 저는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다는 게 직장 다니고 돈 버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2009년 정년퇴직을 한 후 현재까지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는 그는 진실로 나를 돌아볼 수 있었기에 아픈 것조차 감사하다고 했다. 이제 욕심과 집착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며 마음 없이 도와줄 수 있게 되어 진정 행복하다고 했다.
그렇게 가볍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한 덕분일까. 약을 복용한 지 11년째이지만 흔히 나타나는 발진이나 근육통 등 부작용도 없고, 내성조차 없는 그를 보고 의사는 ‘기적’이라 했다.
“의사가 그래요. 선생님은 골수이식한 사람보다 경과가 더 좋은, 8%에 들어간 행운아라고. 하지만 전 그 8%의 힘은 바로 마음수련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죽음이란 어마어마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마음을 비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견뎠겠습니까. 이제야 정말 사는 것 같고, 요새는 뭘 해도 행복해요. 다른 분들은 저처럼 아프기 전에 인생의 참 의미를 알고,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알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