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26명인 작은 산골 학교다. 가진 것은 많이 없지만 너무 순수한 아이들, 늘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었다.
지난해 말에는 ‘예민의 음악캠프’에 참여하였다. 전국의 분교를 다니며 ‘분교음악회’를 꾸준히 열었던 가수 예민씨는, 2년 전부터 창작 악기 만들기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 악기를 구상하고 만들어가면서 많은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음악캠프를 하기 위해 온 첫날, 화려한 인사말보다 “따듯한 차 한잔 줄게” 하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핫초코를 타주는 예민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아이들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예민씨는 우선 아이들과 악기 사이의 거리감부터 좁혀나갔다. 처음에는 동서양의 많은 악기 소리를 들려주고 직접 만져보고 소리를 내보라고 했다. 그다음에는 바이올린, 장구, 통기타 등의 악기들을 전부 분해했다. 결국 몇 가지 재료를 이리저리 조합해서 만든 것이 악기라는 게 드러났다.
‘아, 누구나 악기를 만들 수 있는 거구나’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감을 가졌다.
매 과정마다 꾸준히 대화를 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별로다 싶은 아이디어에도, “이 악기 괜찮다. 이건 어떻게 해서 소리를 내야 하지?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줄래?”라며 다가갔다. 아이가 신이 나서 이야기해주면, 좀 더 보충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 안의 가능성이 충분히 다 표출되도록 한 명 한 명 유도를 해주었다.
예민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는구나, 가슴으로 아이들을 가득 품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히 아이들도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수업을 했지만 한 명도 지루해하는 아이가 없었다.
‘바이러스와 공감하고 싶다’며 바이러스 모양을 만든 아이, ‘평상시 귀신을 무서워했는데, 귀신이 있는가 없는가 대화를 해보고 싶다’며 ‘귀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악기를 만들겠다는 아이 등등 어른들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순수하고 기발한 발상들이 나왔다.
그 아이디어들을 보고 다섯 개 지역의 학교에서 최종 10여 명을 뽑아, 8박 9일 동안의 2차 캠프가 진행되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준엽이, 어진이, 한비 세 명의 아이가 뽑혔다. 2차 캠프의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이 만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주 시간, 아이들의 눈빛에서 캠프의 과정이 얼마나 행복했는지가 전해졌다.
“저는 물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어진(12)이가 만든 악기는 ‘Don’t angry water’. 물로 음을 조절하는 타악기였다. 준엽이는 구슬로 쇠판을 치거나, 채로 동전 긁기, 채로 가죽 치기, 채로 방울 흔들기 등을 통해서 소리가 나게 하는 ‘도낙기(돈악기)’를 만들었고 한비(11)가 만든 것은 대나무 위의 철판을 채로 치기, 손으로 줄을 튕기기, 대나무와 대나무 사이에 채를 넣고 옆으로 흔들기 등으로 소리를 내는 ‘대화나무’라는 악기였다.
다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악기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견하고 대단했다. 우리 아이들 안에 저런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었구나,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표출될 수 있는 거구나, 새삼 다시 느껴졌다.
3년 전, 이곳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산골 아이들 특유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이 참 좋았다. 하지만 곧 가정 방문을 하며 아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았을 때는 가슴이 아팠다. 화목한 가정도 있었지만, 부모의 갈등으로 한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길러지는 아이들, 학교에서 주는 급식이 유일한 식사인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 사정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밝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시나 위축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던 아이들. 하지만 아이디어를 내고, 자르고, 뚫고, 색칠하고, 다듬고, 붙이고, 말리고 사포질하고…. 악기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감추어진 응어리들이 탁 터지면서 자신감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이다.
스스로도 “내가 이런 악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는 아이들은 캠프 후 참 많이 변한 듯했다. 작년 10월 서울에서 전학을 와 바로 캠프에 참석했던 준엽이는 공부도 더 잘하게 되고 더 활발해지고 아이들하고도 잘 어울린다. 어진이는 “원래 부끄러움을 엄청 타는데 그 이후로 조금은 더 당당해진 거 같다”고 했다. “악기를 만들고 난 성취감이 기억에 남고, 나도 뭐든지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한비 역시 한층 더 밝아졌다.
예민씨가 음악캠프를 진행하는 걸 보면서 20년 가까이 교사 생활을 한 내 모습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교직에 있으면서 제일 중요하게 여긴 것은 가슴속에 아이들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항상 마음과 현실은 달랐던 것 같다. 평가하기보다는 말없이 기다려주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끔 믿어주는 것. 예민씨는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몇 개월이 지났건만 지금도 아이들은 “예민 선생님 안 오세요?” 하며 물어본다.
그만큼 아이들의 마음에 그 사랑이 깊이 각인이 된 것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성취감과 그때 받은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가 되어, 오래도록 아이들의 가슴에 영롱한 소리를 내어주기 바란다.
글 노정우 유림초등학교 교사. 경남 함양군 유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