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동춘
지난 4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사진가 이동춘씨의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안동, 봉화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전통문화 및 종가 문화를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해온 그가 전시회 기간 동안 불가리아에서 체험한 한류 열풍을 본지에 전해왔습니다. 사진가 이동춘씨의 불가리아 여행기를 2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서울에서 이스탄불까지 12시간, 이스탄불 공항에서 다시 이어지는 1시간의 비행. 하늘에서 내려다본 흰 눈이 덮인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비토샤산과 산 아래로 보이는 소피아 시내가 낯선 이국땅에 대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발칸반도에 자리한 불가리아는 남쪽은 그리스, 터키, 북쪽은 루마니아 등을 포함하는 삼각형 반도 지역에 위치해 있다. 지형적 특성상 대립과 갈등으로 지금까지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는 이곳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공산국가에서 다시 민주공화국으로 독립하기까지 많은 희생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다 우리나라와는 1989년 외교 관계를 맺게 된다.
그들은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민족과 문화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높다. 러시아 등 슬라브족이 사용하는 키릴문자가 자신들이 만든 문자란 사실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오랜 식민지 지배 기간 동안에도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와 종교를 지켜낸 데 대한 긍지 또한 대단하다.
이런 불가리아에서 한국대사관 초청으로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선비 정신과 예를 간직한 집 종가>란 주제로,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열리는 ‘살롱 데 자르 페스티발’ 기간에 맞춰 2주간 진행됐다. 전시장 NDK[National Palace of Culture]는 소피아 시내의 중심에 자리한 명소로, 많은 불가리아 사람들이 찾아와 한국 문화에 대단한 관심을 나타냈다.
“지구 반대편 멀리 있는 나라가 한류로 인해 지구를 뜨겁게 달구었다. 반면 한국의 전통 종가는 매우 고요하고 정적으로 보인다.” “한식을 먹어 보고 싶고 한옥 온돌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안동을 방문하고 싶다.”
전시회를 방문한 사람들 중엔 올해 서른 살인 장애인 여성 실비아가 있었다. 3년 전 교통사고로 뇌성마비 환자가 되었는데, 여행가를 꿈꾸던 그녀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사고였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갈 수 없는 나라의 문화를 엿보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며 내 손을 붙들고 손등 키스를 해주는데, 나 역시 울컥하여 한참을 껴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또한 한식을 잘 만드는 스물여섯 살의 아가씨 크리스와의 만남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녀는 참치, 햄, 혼합 김밥 등 세 가지 김밥과 배추겉절이, 파김치 등을 도시락에 싸서 방문해 주었다. 한식이 맛있고 건강식이어서 좋다는 그녀는 인터넷에 있는 한식 만드는 법을 보고 번역기를 돌려 불가리아 말로 된 레시피를 만든다고 했다. 막걸리가 맛있어서 직접 담가 먹기까지 하는 그녀는 앞으로 한국에서 한식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불가리아 학생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한국어과가 있는 국립 소피아 대학 학생들과 윌리엄 골드스톤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한 학생들까지…. 앞으론 초등학교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칠 예정이라고 하니, 우리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노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한류 문화를 사랑하는 K-Pop 팬들과의 만남이었다. 불가리아 전역에서 온 500여 명의 젊은이들이 NDK 앞 스베타 네델리아 광장에서 K-Pop을 외치고 태극기와 불가리아 국기를 흔들며 모여들었다. K-Pop 팬들의 저력을 보여주고, K-Pop 가수들의 불가리아 공연을 기원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2NE1, 샤이니, 티아라, 소녀시대, 미쓰에이,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와 춤을 펼쳐 보였다.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모습들을 보며,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