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학교에 부임한 날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배정받은 교실로 가는데, 교실 앞 골마루에 한 아이가 어슬렁거리더니 꾸벅 인사했다.
“선생님이 우리 반 선생님이세요?”
“그래, 너도 5학년 5반이냐?
아이와 나는 그렇게 첫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소문난 말썽쟁이였다.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넘나들다가, 교사가 방심하면 한순간에 수업 분위기를 제멋대로 만들어버리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하교할 때 녀석의 작별 인사말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안녕히계세요쿠르트라이앵글쎄올시다람쥐똥구멍!”
아이의 본색을 파악한 후 나도 까칠해졌다. 녀석은 기회만 생기면 노골적으로 일탈 행동을 하였고 나는 징벌했다. 어떤 때는 반 친구들을 웃겨주는 포상으로 방송부원으로 특채하였고, 또 어떤 날은 친구를 괴롭힌 죄로 일주일간 벌 청소를 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진짜로 딱 걸렸다. 일기장을 안 낸 사람 나오라고 했는데,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녀석을 불러 교탁 위에 있는 일기장 중에서 네 것을 찾아봐라 했다.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도 자기는 정말 일기장을 냈다고 마구 우겼다. 아까운 수업 시간이 자꾸 지나가니, 일단 자리로 돌아가 잘 찾아보라고 했다. 그렇게 1교시가 끝나고, 나는 아침 회의를 하러 연구실로 갔다. 그런데 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옆 반 개구쟁이 몇 명이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조금 전에 석이가 도서관에서 혼자 일기를 쓰고 있어서, 우리가 왜 거기서 일기 쓰냐고 하니까, 선생님한테 사기 치려고 그런다 하던데요. 킥킥~ 혼 좀 내주세요.”
사기? 교실로 돌아온 나는 험악한 인상으로 열두 살짜리 이탈자를 취조하였다. 녀석은 순순히 자백하였다.
“친구 일기장을 빌려 베껴 쓰려고 도서관에 갔어요. 일기를 베껴 쓰고 나서 친구한테 내 일기장을 주면, 그 친구가 선생님 책상 근처에 톡 떨어뜨려 놓기로 했어요….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주워서 내 일기장 찾았다고 하면 될 것 같아서….”
듣고 보니 사기가 맞았다. 나는 배신감에 분노하여 그야말로 방방 떴다. 협박성 훈계와 공갈성 생활지도로 녀석을 닦달했다. 점심시간에도 밥 한술 못 뜨고 찬물만 들이킬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남아서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 지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에게는 남들이 잘 모르는 착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에 수업 시작 전에 휴대폰을 수거하면, 비싼 고급 스마트폰이 한 바구니 가득하였다. 그 속에 낡은 구식 폴더폰 하나. 그것이 그 개구쟁이의 휴대폰이었다. 체육복이 작아서 축구할 때 사슴처럼 긴 발목이 훤히 드러나고, 배꼽이 다 보여도 주위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운동장을 누볐다. 그리고 연말 불우이웃돕기 모금을 할 때, 우리 반에서 처음으로 성금을 낸 아이도 그 아이였다. 동전이 고루 섞여 있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아이는 그 성금을 마치 잠시 맡아놓은 물건을 돌려주는 것처럼 슬그머니 교탁 위에 얹어놓고 갔다.
우리 반이 헤어지는 날, 아이들과 일일이 작별의 포옹을 하였다. 그 아이는 뒷전에서 어슬렁거리더니 맨 마지막 차례로 내게 왔다. 우리는 삼월의 개학 첫날 아침처럼 둘이 마주 보았다. 나는 느꺼워져서 힘껏 아이를 껴안아주었다. 그런데 녀석이 평소답지 않게 주뼛거리며 말했다.
“선생님한테 꼭 할 말이 있었는데…. 에이, 그냥 부끄러워서 말 안 할래요.”
그렇게 말하고 휑하니 교실을 나갔다. 나는 골마루까지 따라 나가서 아이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안녕히가세요귀여운녀석아주가끔은네가보고싶겠다람쥐.’
마음수련 독자님들께 작별 인사 드립니다. 그동안 유기훈 선생님 삽화와 제 글로 꾸민 이 지면을 보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는 인연이었지만, 독자님께서 흐뭇하게 지켜봐주시는 듯, 생활 일기를 쓰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이제 월간 마음수련 옆에서 소박한 독자로서 함께하려고 합니다. 늘 맑은 행복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