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에 시작한 MBC ‘위대한 탄생’은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이 서바이벌 형식으로 노래 실력을 겨루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를 꿈꾸던 연변 청년 백청강(23). 탁월한 가창력의 소유자였지만 그가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외모, 눈을 가리는 앞머리와 왠지 위축된 듯한 모습….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신에게 지적된 단점을 고쳐나가던 그는, 7개월 후 최종 우승자가 된다. 아무도 예상 못 했던 반전, 그의 우승은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기도 했다. 가수로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백청강씨를 만나보았다.
글 최창원 사진 홍성훈
우승했을 때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행복했어요. 괜히 우쭐해하고 그러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오디션에서 우승했을 뿐이지 그야말로 진짜 신인이잖아요. 지금부터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수의 길이 열리느냐 끝이냐가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 진짜 큰 스타가 된다 해도 그땐 그게 또 시작이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그냥 항상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많은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결국 부활엔터테인먼트를 선택했지요.
이름을 밝히기는 그렇지만 큰 소속사에서는 다 연락이 왔었어요. 처음에는 고민을 조금 했어요. 제가 댄스를 좋아하잖아요. 부활은 댄스는 아닌데, 어떡해야 하지…. 그런 고민이요. 그런데 제가 계속 생각해왔던 게 일단 노래보다 인간성이거든요. 가수든 뭐든, 우선 사람 됨됨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김태원 선생님한테 가면 인간성은 무조건 배울 수 있을 거고, 또 저를 여태까지 끌어주신 고마운 분이니까 바로 결정했죠.(웃음)
상금 중 상당한 액수를 보육원 등에 기부했잖아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내가 한국 분들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한국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백청강은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기 좋아하는 아이었다. 9살 때부터 한국으로 돈 벌러 가신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외로움에 홀로 우는 시간도 많았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행복했다 한다. 그런 시간들 덕분에 마음을 담아 노래할 줄 알게 되고 다른 이의 어려움을 생각할 줄 아는 속 깊은 배려도 생긴 듯 보였다.
가수를 꿈꾸던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음악 학원에 입학,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운다. 록가수 김경호를 너무 좋아해 로커를 꿈꾸던 그에게 댄스그룹 HOT는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어떻게 춤추면서 노래할 수 있지? 그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춤과 노래를 연습한다. 클럽에서 노래하며 생활비를 벌며, 각종 오디션에도 참가했다. 연변가요무대 1등, 연변TV 전국청소년오디션 1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대부분 1등을 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중국이 워낙 크다 보니 지방 대회에서 1등 하는 것만으론 이름을 알릴 수 없었고, 또 소수민족이기에 그 기회도 적었다. 점차 자신감이 떨어져갈 무렵 ‘위대한 탄생’ 중국 오디션 소식이 들려왔다. ‘노래’만이 전부였지만, 출구를 찾기 힘들었던 청년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었다.
오디션이 열리는 중국 청도는 기차를 타고도 꼬박 하루, 그리고 반 이상 더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한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가냐”며 만류하는 엄마를 설득해,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오디션 날, “가장 쉽게 노래하는 사람 중 한 명을 만났다”며 그의 가창력은 높이 평가되었지만, 콧소리로 인한 부정확한 발음, 모창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결과는 합격.
“좋습니다. 기쁘고요, 어머니 아버지 열심히 해서 좋은 가수가 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한국 입성, 1차 예선에 통과한 100여 명이 경합을 벌인 후, 다섯 명의 멘토가 각각 제자로 맞을 4명의 참가자들을 선택하게 되었다. 마지막 멘토 결정의 순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던 백청강의 멘토를 하겠다는 사람은 없었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순간 “제가 선택하겠습니다” 손을 든 이는 바로 김태원씨였다. 그의 안에 담긴 누구보다도 강한 노래에 대한 열정과 끼를 알아본 것이다.
김태원을 멘토로 만난 백청강은 마치 날개를 단 듯 그만의 강점을 살려나간다. 매 경합마다 콧소리, 음정 불안 등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단점을 고쳐나갔다. 아이돌의 댄스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무대에서는 지난 시절, 그가 얼마큼 가수가 되기 위해 땀을 흘렸는지도 느끼게 해주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간절한 떨림이 있는 목소리, 맑고 깨끗한 음색, 체구는 작아도 무대를 감싸는 파워, 약해 보이지만 강단 있는 모습과 순수함…. 그 안에 감춰진 보석 같은 매력들이 점차 드러났고 팬 층도 두텁게 형성되었다. ‘상처받은 어린 야수’ 같았던 처음의 그의 모습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치유되고 변화해 갔다.
방송이 진행되면서 점점 청강씨를 좋아하고 아끼는 팬들이 많아졌어요.
처음 중국 오디션 방송이 나간 다음 팬 카페가 생겼어요. 그전까지는 데이비드 오 팬 카페가 유일하게 있었거든요. 그때 솔직히 부러웠어요. 얘는 역시 다 되니까, 잘되는구나 했는데, 저도 생긴 거예요.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나고 저를 좋아해주니까 고맙고 한마디로 진짜 좋았어요. 팬 여러분들, 항상 저를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짜 너무 감사한 마음이에요. 저를 좋아해주시는 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바로 앞에서 콧소리, 음정 불안, 모창 등을 지적받으면 굉장히 위축됐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맨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럽고 놀랐어요. 근데 점점 그걸 받아들여 고쳐나갈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사실 모두 저 잘되라고 해주신 말씀이잖아요. 특히 콧소리에 대한 지적은 힘들었어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콧소리가 원래 있었거든요. 아, 유전인데 어떻게 고치지 싶더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유전이라도 고칠 수는 있을 거다 생각하고 계속 연습하다 보니까 조금씩 되더라고요. 지금도 무대에 설 때는 해주셨던 조언을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은미 선생님께서 ‘반주 따로, 목소리 따로 분리되어 있다며, 노래할 때 음악에 젖어서 같이 하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지금도 항상 생각해요. 그리고 음정이 불안하다고 조금씩 계속 낮아진다고 하셔서, 모니터를 해봤는데 진짜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것도 계속 연습하고 있어요. 또 제스처를 하려면 제대로 하고 어설프게 하려면 아예 하지 말라는 신승훈 선생님 말씀도 항상 생각해요.
멘토들의 말씀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셨군요.
특히 김태원 선생님과의 인연이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저한테 김태원 선생님은 진짜 은인이에요.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만큼. 너무 감사하죠. 특히 저한테 ‘초심을 잃지 마라’ ‘자만을 경계하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막말로 조금 크면 자기가 잘났다고 그러다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초심이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초심 때는 어떤 일도 다 하다가 이젠 가수니까, 니네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김태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많이 새겨요. 저는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가수가 돼야 한다는 계약을 저 친구와 저는 마음으로 했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바랍니다.” 백청강의 우승 발표 후 김태원씨는 그렇게 축하의 말을 대신한다. 사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조선족 청년의 우승은 그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조용하던 연변 사회는 들썩였다. ‘앙까’라는 연변 말까지 유행시킨 그는 단순히 가수를 꿈꾸는 청년 이전에 연변 우리 조선족들의 자부심이었고, 또한 한국 사람에게는 조선족을 이해하는 다리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연변에선 백청강씨가 롤모델이 됐다고 해요.
중국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위대한 탄생2 참가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힘들어도 꼭 이겨내고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 꿈을 이룰 때까지 피땀을 흘리면서 노력하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이건 또 저한테 하는 말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제 곧 ‘위탄2’를 하는데, 많이 떨리겠지만 그걸 극복해서 침착하게 한 순간 한 순간 하면 좋겠어요. 오늘은 내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무대 위에서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죠. 저도 그랬거든요.
백청강씨에게 노래란 무슨 의미인가요?
저에게 노래란 길이에요. 제가 선택한 길이 노래고, 또 제가 걸어야 할 길이 노래예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꿈을 잃지 않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노래를 통해서.
백청강은 최근 MBC 드라마 <계백>의 메인 테마곡을 부르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좌절도 경험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는 백청강. 오직 노래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청년, 이제 그는 가수 백청강으로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바람대로 진정 초심을 잃지 않는 가수란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그의 미래가 상상되었다. ‘톱스타 백청강’의 콘서트장, 무대에 선 그가 특유의 선한 미소를 띠며 관객들에게 묻는다.
“여러분, 제가 위대한 탄생 우승자였던 거 앙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