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와 그리고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과 넷이서 고향으로 벌초를 갔다 왔습니다.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지만 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 고향 가는 길이 기쁘신지 주무시지도 않고 창밖을 내다보며 연신 이야기꽃을 피우십니다. 이때 항상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게 아내입니다.
벌초하러 올라가는 길목, 아내가 밤나무 밑에 멈췄습니다.
“어머나, 밤이 벌써 익었네요. 아버님 잠깐만요, 여기서 밤 좀 따고 가요~~.”
진격의 아버지는 가는 길을 멈추지도 않고 한마디 하십니다.
“사 먹어~~~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고~~~.”
아버지의 시크한 한마디에 아내가 발끈합니다.
“아버님은… 이런 게 다 재미죠~~ 얼마나 좋아요, 산에서 밤도 줍고.”
아버지가 잠시 멈춰서 다시 한마디 합니다.
“사 먹는 게 맛있어.”
한참 벌초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아버지를 급히 찾습니다.
“아버님, 이 버섯 먹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는 아내의 손에 놓인 버섯을 보는 둥 마는 둥 한마디 합니다.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마라. 버섯 먹고 싶으면 사서 먹어~~.”
아내 역시 아버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연신 버섯을 들춰 봅니다. 그 모습에 아버지가 다시 한마디 합니다.
“먹는 버섯인지 독버섯인지 구분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은…. 애쓰지 말고 슈퍼에서 사먹어~~ 슈퍼에선 독버섯 안 팔아~~ 무슨 구분법이고 지랄이고 그냥 사 먹어~~.”
벌초를 다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아내가 밤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그리고 이내 발걸음을 옮기다 차를 세워둔 마을 입구에 다다라서 대추나무를 발견합니다.
“어머나, 대추 큰 거 봐요 아버님, 한 움큼만 따서 차례 상에 올리면 좋겠다.”
이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고 입을 실룩이자 아내가 자진 납세를 합니다.
“알았어요~~ 사 먹을게요~~ 사 먹는 대추가 맛있어요~~ 네네.”
아버지가 실룩이던 입을 멈추는가 했더니 기어이 한마디 더 하십니다.
“남의 울타리 안에 있는 건 떨어진 거라도 행여나 줍지 마라. 이 세상에 안 파는 거 없다. 다 사 먹어~~ 그게 세상에서 젤 맛있고 몸도 맘도 다 편해.”
차를 타고 나오는 길에 아내가 깨밭을 지나치며 한마디 합니다.
“아… 저 깻잎….”
그리고 아버지 눈치를 보더니 아내의 말끝이 흐려지며,
“사 먹는 게 더 맛나겠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아내와 어머니는 화장실에 가고 아버지와 저는 휴게소 장터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홍삼캔디 하나를 시식하시고 계셨습니다.
“한 봉지 사 드릴까요?”
저의 물음에 아버지는 저에게만 들리게 낮은 목소리로,
“이런 데서 사면 비싸.”
그리고 슬그머니 시식용 캔디 한 개를 더 챙기더니 차로 가셨습니다. 언제 나왔는지 아내가 차로 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더니 만 원짜리 홍삼캔디 한 봉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후다닥 계산을 마치더니 차로 뛰어갑니다. 얼떨결에 같이 차에 타서 시동을 거는데 아내가 아버지에게 사탕 봉지를 내밀며 한마디 합니다.
“아버님~~~ 사탕 드세요. 그리고 그렇게 얻어 드시지 말고요. 사 드세요~~ 꼭~~ 사~~~ 드세요~~~ 아셨죠? 아버님~ 사 먹는 게 젤 맛있어요~~~.”
표정이 영 떨떠름한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아내에게 전합니다.
“너도 이거나 먹어라.”
언제 주우셨는지 아내의 손에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밤이 몇 개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차 안에서는 아버지는 사탕을 먹고 아내는 밤을 까먹었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작게 웅얼거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둘이 입에 뭘 물고 있으니 세상이 다 조용하다.
진작 뭘 물려 놓을 걸. 에이구, 시끄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