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조우성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되겠습니다.”

뚜벅이 변호사 조우성씨

기업분쟁연구소 조우성(46) 변호사.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본 동영상에서였다. 그는 ‘경청은 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가’란 주제로 강의 중이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조우성 변호사는 변호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경청이라고 말한다.
분노하고 격정적으로 부딪치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수없이 목격해왔다는 것. 냉혹한 승부사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경청의 지혜를 들어본다.

김혜진 & 사진 최창원

2014-08-(20)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17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직접 체험한 ‘경청의 힘’에 대한 내용들을 담아내셨는데요, 책을 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2년 5월인가 연달아 2개의 사건을 졌어요. 사건에 지고 나면 되게 힘이 빠지거든요. 그러면서 변호사로서 내가 잘하고 있나? 자문할 때였죠. 사건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고, 제 스스로가 방전된 상태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데 마침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처음엔 제 글이 너무 변호사답다고 해서 소설가분들의 책을 필사해가며 편안한 문체로 바꾸려는 연습까지 했어요. 덕분에 공부도 많이 됐습니다. 그동안 제가 쓴 글은 목적과 결론이 중요했는데, 글 쓰는 여정 자체가 의미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원고를 탈고하는 순간 제 스스로 방전 직전이었던 배터리가 충전되는 기분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보게 되셨을 것 같습니다.

그랬죠. 그동안 진짜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로마 시대 검투사같이 살았거든요. 승과 패에 대해 민감했죠. 근데 돌이켜보니 진짜 좋은 변호사는 가이드(안내자) 같은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가령 누군가가 캄캄한 동굴에 갇혀요. 처음 소송을 당한 사람은 그런 심정이거든요. 그때 옆에 가이드가 등장하는 거죠. 그런데 가이드라고 해서 이 동굴을 완벽하게 알진 않아요. 가다가 같이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고 박쥐 떼 습격도 받고. 동굴을 빠져나와서 밝은 세상으로 갈 수도, 못 갈 수도 있죠. 하지만 지더라도 그 이유를 알고,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고,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거든요. 승소보다 패소했을 때 의뢰인과 어떤 관계를 가져가느냐도 결과 못지않게 중요해요. 책을 쓰면서 ‘조우성, 너 그렇게 살아왔잖아.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잘 가봐’ 하고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달릴 때는 몰랐는데 일단 멈추고 삶을 반추하면서 알게 된 거죠.

 

조변호사가 전하는 수많은 사건 중에는 가슴 찡한 사연도 많다. 그는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음에도 자식을 위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아버지의 애틋한 부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글을 못 읽는 피의자가 있었는데, 그 사실만 밝혀도 쉽게 무죄를 밝힐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이를 거부했던 것.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고등학생인 자신의 아들이 동네에서 놀림을 받게 될 것을 염려해서였다. 이 사건을 맡으며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했다는 그는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을 밝히려고 끈질기게 설득한 자신이 못내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도 이럴 것이다’ 지레짐작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린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작년에 20대 후반 남자분이 3개월째 월급을 못 받았다고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사장을 상대로 민사, 형사, 노동청 소송을 다 했는데도 돈을 못 받은 상태였죠. 그동안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기에 제가 마땅히 줄 수 있는 해결책이 없다는데도 꼭 상담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일단 얘기를 들어보니 그 과정에서 인격적인 모독을 당했고,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어서 1년 동안 법정 투쟁을 했더라고요. 변호사님, 전 뭘 할 수가 있습니까? 묻는데 ‘정말 할 만큼 다 했네요. 더 잘할 수 없습니다. 이제 과거는 놓고, 새로운 길로 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거 같습니다’ 하니까 이 친구가 갑자기 펑펑 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야 정리가 된다’는 겁니다. 변호사로서 꼭 해결책을 주는 게 다가 아니구나…. 그 뒤로 비록 해결책은 주지 못하더라도 상담하고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것만으로도, 되게 효용이 있는 변호사가 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경청의 힘’을 실감하게 되신 거군요.

많은 의뢰인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소송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언제 분노하고 상처받는 걸까? 저마다 사연과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변호사를 찾는 이유는 비슷해요. 바로 자신의 고통에 공감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다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소송을 시비를 가리고 분쟁을 처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치유의 과정이자 분노를 풀기 위한 방법인 거죠. 사실 어떤 사람은 승소를 해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반면, 패소를 해도 후련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거든요. 결국 소송의 과정을 거치면서 삶의 용기를 얻고 자기 치유를 시작하느냐, 반대로 분노로 제자리걸음하느냐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과정을 거치며 그 일을 해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비즈니스 코칭 콘서트인 ‘을을 위한 행진곡’ 강연. 경제력, 협상력 등에서 불리한 위치인 ‘을’들이 거래 상황에서 알면 유용한 법률 지식과 협상 기법을 소개했다.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경청은 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가?’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조변호사는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강연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철도 공무원이셨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청에서 인턴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당시 검사시보(試補 : 수습)였던 그가 했던 일은 피의자, 즉 죄가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심문해 수사 기록을 작성하는 거였는데 피의자의 딱한 사정까지 기록했던 것. 급기야 담당 검사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가 아니라 변호인이 작성한 변론요지서 같습니다”고 말할 정도였다. 피의자의 범죄 행위와 그 사람이 처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몹시 어려웠던 그는 결국 변호사의 길을 택하게 된다.

변호사로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게 가장 기쁘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성품은 부모님의 영향인가요?

돌아보면 외할머니, 어머님의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지금도 생각나는 게 저희 외갓집에는 항상 거지들이 많았어요. 외할머니가 항상 밥을 주셨거든요. 그러다 보니 외갓집에서 무슨 일을 치르면 그 사람들이 와서 다 도와주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도, 어머니도 ‘남을 도울 수 있는 건 되게 행복한 일이다. 돈이든 마음을 써주는 일이든. 도울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한 거다’고 늘 말씀하셨죠.

법정에선 사람의 밑바닥까지 다 본다고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긍정과 믿음이 계속 변치 않으셨는지요?

사실 제가 정이 많고, 마음이 앞서다 보니 상처받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옛글을 보면서 힘을 많이 얻죠. 제가 한비자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얘기했거든요. 보통 성선설, 성악설 하는데 저는 성약설을 믿어요. 어떤 사람의 얘기든 들을수록 이해되는 것이 그 상황에서 그 선택을 한 이유가 있거든요. 많이 가진 사람은 자기 의도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은 작은 이익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거죠. 배신도 하고. 저도 사실 흑과 백이 분명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살아갈수록 회색도 많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단정적으로 되지가 않아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거죠. 결국 인간은 이익 때문에 움직이니까 그런 인간을 이해하고 컨트롤하라는 게 한비자인데 공부하면 할수록 스스로가 되게 단단해져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떤 충격이 와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도록 제 마음을 단단하게 해준 책이에요.

실제로 고전, 철학 등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책을 통해 배운 지혜를 사건에 적용한 적이 있으신지요?

피고인들이 처음 소송을 당할 때는 그 일이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법리적으로 이끄는 것 못지않게 인간적으로 어떻게 안내할까 고민하게 되는데, 그 사람의 멘탈을 바로잡아주고 싶을 때 고전을 인용하곤 해요. 예를 들어, 어떤 사장님이 잘나가다가 부도가 나고, 2년간 감옥에 있다 나오면서 울분에 차 있는 거예요. 잘나갈 때는 알짱거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도 안 보인다면서, 얼른 성공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계속 무리한 사업을 벌이는 거죠. 그래서 제가 사마천 <사기>의 맹상군열전에 나오는 맹상군과 풍환의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잘나가던 제상인 맹상군에게는 참모만도 3천 명이었는데, 어느 날 제상 자리에서 물러나자 다 흩어지고, 풍환이란 노참모만 남게 됩니다. 후에 맹상군이 다시 복직하자, 사람들이 다시 아첨하면서 몰려들어요. 이를 본 맹상군이 화가 나서 혼내줘야지 하는데, 이때 풍환이 하는 말이 있어요. ‘세상일 중에는 어쩔 수 없이 그리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 부귀다사 빈천과우(富貴多士 貧賤寡友), 부귀할 때는 선비들이 주위에 많지만 가난하고 천할 때에는 주위에 친구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꽃이 봄여름에 피었다가 가을 겨울에 떨어지듯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저도 그분한테 그랬어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사람들이 떠나간 것에 대해서 분을 갖고 있으면 또 다른 일에 휘말리게 됩니다. 노여움을 풀고 모래성이 아닌 정상적인 탑을 쌓아 가십시오.

17년 동안 몸담았던 법무법인을 떠나 기업분쟁연구소를 차린 지 1년째. 요즘은 SNS를 통해서도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는데, 페이스북으로 들어오는 법률 상담이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다른 변호사, 변리사들과 함께 페이스북에 전문가 그룹을 결성해 국내 스타트업(창업 기업)을 돕고 있다. 그룹 이름은 ‘어벤져스’. 영웅들이 흩어져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모여 일을 해결하는 영화처럼,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면 함께 능력을 발휘해 도움을 주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앞으로도 법률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에 대한 법률 자문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대형 로펌을 그만두고 기업분쟁연구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실제 법을 필요로 하는 작은 회사나 개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고 하셨는데요.

대형 로펌에서는 돈은 벌어 좋았지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큰 회사를 대리해서 작은 회사랑 싸우는 게 많았는데, 실제 법을 필요로 하는 곳은 작은 회사나 개인들이었지요. 그런 것에 막연한 채무감이 있었죠. 사실 법은 하나의 도구거든요. 사람들은 흔히 법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얼마든지 소송 전 단계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아요. 승소 못지않게 중요한 게 무익한 소송을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분쟁 예방 쪽에 관심이 많은데 되도록 분쟁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고,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최소의 비용과 시간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마무리하는 프로그램을 전파하는 게 제 꿈이에요.

변호사로서는 물론 강연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지요?

30대 때는 빨리 무언가를 이뤄야 된다는 ‘스피드’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근데 막상 40대가 되어 보니까 스피드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아무리 목적을 향해 빨리 달렸다 해도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리고 40대에 막 접어들었을 때, 재능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나는 뭘 잘할 수 있는가, 뭘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가.’ 그러다가 문득 저란 사람은,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데 열정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래서 변호사로서의 전문성 외에 리더십, 협상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벌었던 사람이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봤고, 힘들었지만 재기하는 사람도 보면서, 그 물을 담을 만한 역량이 되지 않으면 그릇은 깨진다는 걸 깨달았죠. 그러면서 출세나 돈에 대한 욕심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게 된 것 같습니다.

조우성 변호사는 서울대 법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년부터 17년간 법무법인 태평양 민사총괄부 및 기업소송부 파트너 변호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기업분쟁연구소 소장이자 법무법인 한중의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수많은 소송 사건을 담당하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계약서 작성실무, 지적재산권 소송전략 등을 주제로 법률 강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4-08 (7)
이 세상에 어떤 변호사로 남고 싶은가요? 좋은 변호사? 혹은 훌륭한 변호사?

좋은 변호사란 승률도 높고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변호사는 처한 상황에 대해 잘 어루만져주고, 이 힘든 상황도 분명히 지나간다, 이기든 지든 여기서 당신은 뭔가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줘서, 재판이 끝나도 아, 그때 그 변호사가 내가 힘들 때 바로 세워줬지, 하고 떠오르는 그런 친구 같은 변호사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 조영래 변호사님이신데 그분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분의 반의반 정도, 제가 할 수 있는 깜냥 내에서 소박하게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떳떳하게.

“변호사만큼 절박한 이들을 많이 도울 수 있는 직업도 없다”는 그는 뚜벅이란 말을 좋아한다. 쉽게 흔들리거나 지치지 않고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한결같은 변호사가 되겠다는 의미이다.

인생의 소용돌이에서 외롭게 서 있을 때, 자신의 삶에 공감해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명암이 달라지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왔다는 조우성 변호사.

그가 말한다. 우리가 그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된다는 건, 팍팍한 무릎을 두드리고 다시 먼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용기 한 줌을 전하는 것과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