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장교 출신의 디자인 기획자 김미진(36)씨. 사관생도 시절 간호사관학교 캐릭터 ‘한나예’를 직접 디자인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녀는 사관학교 4년, 간호장교 6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적성과 꿈을 찾아 디자인 회사로 이직을 한다. 하지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도 사람과의 부딪침, 스트레스, 상처들 때문에 방황했다는 그녀는 마음수련을 하면서 바른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았다고 한다. 이제는 자신의 재능이 세상에 쓰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는 그녀의 행복한 마음 빼기 이야기.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꿈이었어요. 뭔가 그리고 만들고 글을 쓰는 게 좋았고 재능 있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요. 그러다 중2 때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간호도 제대로 못 해드리고 임종도 못 지킨 채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던 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 후론 항상 마음 한편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죠. 돌아가신 엄마에게 누가 되면 안 되겠다, 동생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모범적으로, 원리 원칙대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IMF를 겪으면서 집안 형편도 어려워졌죠. 7남매 중 여섯째인 저는 결국 대학에 진학해서 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꿈을 접고 학비가 면제되는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진학해야 했습니다. 사관학교에서도, 간호장교 생활을 하면서도 원리 원칙적인 성격은 여전했습니다. 상명하복이 기본인 곳에서 선배들에게도 저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배들에게 미움도 많이 받았지요.
꿈을 찾아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서도, 가는 곳마다 부딪침은 심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주로 관공서나 기업의 캐릭터, CI, BI를 개발해주는 업무입니다. 그러려면 디자이너, 상사, 고객의 의견을 원만하게 조율하면서 프로젝트 전체를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자주 듣는 이야기가, 너무 원리 원칙적이다, 강하다 등이었죠. 갈등은 심해지고 일은 더 많이 쏟아지고. 아마 마음수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직장 생활 자체를 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마음수련을 하게 된 건 4년 전입니다. 그 당시 저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한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회사 생활에 지친 저는 휴직을 했고, 마음에 늘 품고 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며 너무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을 찾아갔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시를 쓰고 글쓰기를 즐겼던 저에게 그 선생님의 시는,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이상향 자체였거든요. 하지만 그분을 가까이 모시게 되면서 작품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와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이상향마저도 완전히 무너뜨릴 만큼 큰 충격이었지요.
저는 그 상처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친구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고 만나왔던 인연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보았습니다. 임종도 못 지키고 돌아가신 엄마, 모범적으로 살아왔던 학창 시절. 옳다, 바르다, 정의로움에 대한 엄격한 기준, 늘 인정받고 싶었던 제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배웠고, 내게 주어진 재능은 당연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왜 열심히 하지 못할까 불평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예술 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했던 이유도 교양 있고 우아하고 지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 나를 참회하고 버리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내 위주로만 돌아가던 생각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었고 사람들에 대한 높은 기대치나 환상도 없어졌습니다. 늘 머릿속을 맴돌았던 ‘해야 한다’ 하는 집착도 사라졌지요. 여가 생활을 해야 한다, 창작 활동을 해야 한다, 사진도 찍어야 되고 글도 써야 되고 만화도 그려야 한다, 하며 스스로 마음에 빚을 지고 있었는데 더 이상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사람들과 부딪치고 상처받았던 상황들이 제게 일어났던 이유도, 그만큼 제 틀이 강했기 때문이었지요.
그 시인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선생님을 판단했던 제가 오만했음을 고백했지요. 늘 부딪쳤던 디자인 실장님께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다시 회사에 돌아왔을 때는 정말 낮은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주 전체의 본래 바닥은 ‘바닥’이기에 가장 낮은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거짓된 마음에서 모두 벗어났을 때만이 진정 겸손해지고 낮은 마음이 될 수 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그토록 동경해왔던 이상적이고 가장 바른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수련을 시작할 무렵, 사람이 마음을 다 버리고 우주마음 자체가 되면 가장 지혜로워지고 가장 아름다워진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는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제 마음이 그렇게 되어보니 주변의 환경이 저를 지혜롭고 아름답도록 만들어주더군요. 직장에서는 상사나 동료가 조언을 해주고, 마음수련을 함께하는 분들도 저에게 언제나 지혜를 나눠주십니다.
“김팀장, 디자인을 이렇게 바꾸면 좋겠어~” “헤어스타일을 약간 바꾸면 어때?” 마음을 활짝 열고 그분들의 말을 받아들이니 디자인도 더 좋아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저절로 예뻐지더라고요.
브랜드 디자인 강의를 나갈 때도 잘 가르쳐야겠다가 아니라 잘 도와드리고 싶다는 입장에서 하다 보니 무엇이 필요한지, 최대한 맞춰드리게 되고 듣는 분들의 만족도도 더 올라갔습니다. 직장 후배들이 어떻게 그렇게 스트레스를 안 받느냐며 신기하다고 해요. 돋보이고 싶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나는 옳은데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나면 똑같은 환경일지라도 마음가짐이 확 달라집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나의 재능이 쓰일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최선을 다하게 되지요. 예전에는 막연히 행복한 삶을 꿈꿀 뿐 그 방법을 몰랐다면, 이제 빼기의 방법이 있습니다. 강박 관념도, 스트레스, 걱정도 다 빼기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모두가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해나가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