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1세대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 삼성 가로본능 휴대폰,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등등 그는 빌 게이츠가 ‘디자인계의 구루(지도자)’라고 표현할 만큼,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에 산업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생소했을 시절부터 디자이너의 꿈을 꾸고, 디자인의 씨앗을 심고 발전시켜온 김영세(65). 198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한국인 최초로 ‘이노디자인’을 세우고 본격적인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온 지 30여 년. 아직도 그는 ‘디자인’이라는 말에 가슴이 뛴다.
최근 그에게 연일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 이노디자인이 자체 브랜드로 처음 제작한, 헤드폰 ‘이노웨이브’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2014iF디자인어워드’ 디자인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3월 김영세 뮤지엄(YKDM)이 드디어 개관한 것. “내가 어떤 동기를 만나 디자이너의 꿈을 갖게 됐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꿈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가 뮤지엄을 만든 이유였다.
디자인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미국 ‘IDEA’ 상들을 휩쓸고,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된 그의 디자인들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여행 중 불편함에서 나온 여행용 골프가방 프로텍, 아내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한 손으로 쉽게 꺼내어 볼 수 있는 슬라이드 개폐 방식의 콤팩트, 딸을 위해 만들게 된 액세서리처럼 생긴 MP3 등등. 그래서 그는 디자이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상에서 출발하라.”
선생님을 보며 디자이너의 꿈을 꾼 이들도 많은데요,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남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에서 남들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죠. 그리고 그게 전달돼서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행복해지고. 그게 쌓이면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게 돼요.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진하게 관심을 가져요.(웃음) 인간으로서는 쓸데없을지 모르겠으나 디자이너로서는 반드시 가져야 할 관심인 거죠. 사람들에 대한 관심 없이는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수 없으니까요.
‘진한 관심’에서 비롯된 디자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신가요?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였어요.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마주쳤는데, 난감한 표정으로 에스컬레이터 앞에 있더라고요. 디자이너로서 그를 도울 수 없을까? 고심하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에스컬레이터의 양쪽 끝에 스키처럼 생긴 발판을 두 개 만들어서 나오는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그러한 장치를 실제 디자인해서 발표했죠. 그걸 보고 교수님도 굉장히 격려해주었는데, 그때부터 저의 디자인에는 발명이라는 키워드가 파고들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창의력을 발산하는 방법도 체득했지요. 불편함을 관찰하라는 것. 그런데 안타까운 게 이게 아직 세상에 나오지를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다시 살려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게 이노디자인 슬로건 ‘디자인은 사랑이다(Design is loving others)’라는 철학과 연결돼 있는 거 같아요.
디자인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중에 가장 핵심은 사랑이다, 이렇게 시작된 겁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게 선물인데 그게 디자인이 아닌가 생각해요. 선물을 고르면서 어떤 것을 그 사람이 더 좋아할지 고민하듯이 디자인도 고민을 하는 거죠. 그래서 디자이너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듯이 디자인하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은 사랑이다’라는 걸 느낀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들이 16살 때, 어버이날에 아내에게 쿠폰북을 선물했어요. 세차하기, 설거지하기 등이 적혀 있는 쿠폰인데, 쿠폰마다 만기일이 적혀 있었는데 마지막 쿠폰 ‘엄마를 사랑하기’에만 ‘만기 없음’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걸 보는 순간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데, 이게 바로 디자인이구나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엄마가 기뻐할까 궁리하며 아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리고 썼을 거 아니에요? 참된 디자인은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했죠. 사랑이 담긴 디자인은 반드시 마음을 움직이게 되어 있더라고요.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마음이 모든 것이겠지요. 뭘 표현한다는 것은 마음이 지시하는 것일 거고. 마음을 전달하는 메시지가 제 경우에는 디자인인 것이죠. 결국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거죠.
그가 디자이너의 꿈을 갖게 된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외국 디자인 잡지를 보게 되었다. 그 안에는 가정용품, 조명기기, 병따개 등 멋있고 신기한 디자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설렘이 전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디자인이다!라는 결코 시들지 않는 목표가 생긴다. 하지만 그가 디자이너를 꿈꿨던 1960,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산업 디자이너라는 호칭조차 없었을 때였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1976년, 그는 산업디자인으로 유명한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언어의 장벽, 동양인에 대한 차별 대우…. 그 길이 녹록지만은 않았지만 그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 한결같이 밀어붙이는 뚝심과 배짱, 치열하게 도전하는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매번 새로운 기회들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는 1986년 첨단산업의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에 한국인 최초로 디자인 전문회사 ‘이노디자인’을 세운다. 자신의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디자인은 기술이 먼저 나오면 그것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우리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생산할 수 있는 회사에 찾아가서 제공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해낸 것이 ‘디자인 우선주의(Design First)’라는 개념이었다.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그는 ‘디자인을 먼저 정하고 그것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많은 기업들과 함께 수많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이리버 MP3이다. 2001년 천편일률적인 사각형의 MP3들 속에 나왔던 세계 최초의 삼각기둥 형태의 MP3(iFP-100시리즈)는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작은 중소기업이었던 아이리버(당시 레인콤)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9년 일본의 유력 경제지 닛케이 BP는 ‘세계 10대 디자인 회사’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노디자인을 뽑았다. ‘디자인 우선주의’라는 프로세스를 세계 최초로 시도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때로는 실패하는 디자인도 생기고 또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설령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누군가 실패라 말해도 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여겨요. 디자인이라는 것은 미래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 있는 요인이 너무 많거든요. 마이클 조던이 그런 말을 했잖아요. 수많은 골을 성공시켰을 때는 그거 곱하기 서너 배 되는 골을 실패했다고. 만약에 실패를 안 했다면 도전을 안 한 거겠죠.
‘이노의 디자인에는 빼기 기법을 쓴다’는 말이 다가왔습니다.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이노의 디자인을 어린 친구들이 재미나게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심플 쌈박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했죠.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이노디자인의 핵심이니까요. 왜냐하면 군더더기는 값어치가 없고 또 쓸데없는 비용이에요. 빼기 디자인이란 군더더기를 빼자예요. 그렇게 하면 그 결과는 심플 쌈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가격이 싼 상품이 돼요. 늘 디자인의 3대 요소는 진선미라고 합니다. 진은 기능이 진실해야 한다, 선은 가격이 착해야 한다, 미는 모양이 아름다워야 한다. 왜냐면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빼기 디자인이 필요하죠.
처음 선진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며 그가 다짐한 것이 있었다. ‘디자인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다,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어 한국의 디자인 발전을 위해 애쓰겠다’는 것. 그의 바람처럼 처음 그가 디자인을 시작했던 당시와 2014년의 지금, 서울의 거리와 한국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엄청나게 변화되었다.
디자인 미개척지에 태어나 먼저 앞서가며 씨를 뿌리고, 개척하는 그 발전의 과정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감사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나라 디자인을 이끌어갈 후배들을 키우기 위해,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 강연 활동 등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인터넷 SNS 트위터(@YoungSeKim)를 통해 젊은이들과의 소통도 즐긴다.
김영세 디자이너 하면 T라인 디자인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생활 전반에 걸쳐 태극라인을 활용해서 디자인을 하고 계시잖아요. 디자이너로서 한국적 디자인이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딱 들어온 게 태극기의 선이었어요. 이 오묘한 선들의 조화로 어떤 디자인도 가능하겠구나 싶었죠. 앞으로 이 태극라인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세계에 코리아의 이미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디자이너로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움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늘 끊임없이 도전해 오셨습니다. 그런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완벽하지 못하다는 걸 아는 거지요. 디자인도, 작품도. 목표만큼 나오질 않는구나.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건 아니에요.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만약에 이루었다면 열정은 식잖아요. 열정이 진행 중이란 것은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다음엔 뭘까. 잣대를 높여가는 거죠. 그러러면 또 엄청나게 노력을 해야 하죠.
얼마 전 트위터에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덕목은 정성과 재능이다. 그런데 정성이 80% 재능이 20%다’라 하셨는데요.
최근 이야기인데 우리가 해놓은 일을 보고 상당히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어요. 왜 여기까지밖에 안 될까. 그러다 보니 재능이 아니라 정성이 부족했구나를 알겠더라고요. 예를 들면 프로젝트에 대한 정성, 최종 사용자들에 대한 정성, 이런 정성이 없으면 재능이 아무리 많아도 나의 재능을 어디다 쓸지를 몰라요. 그런데 재능은 약간 떨어지더라도 정성이 지극하면 그 재능을 찾아서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자신의 일을 즐기며 결과적으로 남을 기쁘게 하는 창조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퍼플피플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미래를 이끌어갈 사람들은 퍼플피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우리는 짧은 순간에도 가치를 생산하는 창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예를 들어 식당 일을 하더라도 손님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퍼플피플이에요. 돈 벌려고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얼굴 표정부터 다르죠. 스스로 내가 하는 일은 내 거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동안에 많은 걸 배우고 진화하게 되죠.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대단한 재능을 받아서 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개발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인 거죠. 그래서 나의 일을 내 일처럼 할 때 ‘내일’이 생긴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자기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정말 즐겁게,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이란 사람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 디자인이 사람을 위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믿는 그는 늘 호기심과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희망이 많은 사람은 젊은 사람이고, 후회가 많은 사람은 늙은 사람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는 항상 젊다. 그가 앞으로 가져올 디자인이 또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줄까. 희망과 설렘을 주는 그는 우리들 역시 젊게 만들어주는 마음 디자이너이다.
“나의 디자인의 세 가지 키워드는 생활, 문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으며, 그들 모두를 연결하는 고리는 사랑이다.” – 김영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