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직장인 남성입니다.
연말연시엔 회사에서 행사를 참 많이 하는데요, 저는 끼가 없어서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못 추고, 우스갯소리도 못하고, 장기 자랑하라 해도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잘하는 동료들이나 후배들을 보면, 부럽고 괜히 위축이 됩니다.
뭔가 장기 하나는 계발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성격상 쉽지가 않네요.
무슨 행사나 엠티, 모임이 있을 때면 항상 하게 되는 고민입니다.
제가 사회 초년생일 땐 개인기 시키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할 때 저는 성대모사를 했는데, 그것에 다들 관심을 보였습니다. “진군하라~” 이 한마디에 회식 자리는 조용해졌고 저는 을지문덕 성대모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틈을 주지 않고 비명을 연달아 다섯 번 정도 질렀습니다. 3천 궁녀 낙화암 성대모사를 한 겁니다. 부장님이 조용히 술 한잔 드시더니 “너 3천 궁녀 끝까지 해보라”는 말에 몇 번 더 소리 지르다, 다시는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끼라는 것은 타고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차지합니다. 고민남님의 나이로 봐서 30평생을 남 앞에 나서지 않았던 끼가 지금 와서 남들이 부럽고 왠지 위축된다는 이유로 어떤 거라도 배워서 남들 앞에 서고 싶으시다는 건데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찾아오는 행사나 모임에서 기죽어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고민남님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위 사람들의 기대치입니다. 바닥에서 시작하니 밑져야 본전이고 좀만 잘하면 대박입니다. 두 번째 고민남님이 가지고 있는 열정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신다는 자체와 고치려고 노력까지 하셨다는 자세가 이미 가슴 한구석에 열정이 있으시다는 겁니다. 그 자그마한 열정에 불씨를 지필 수 있는 부싯돌은 딱 한 가지 열심히 하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달인 코너의 개그맨 김병만씨를 보면 외줄 타기를 하고 방송 내내 철봉에 매달립니다. 관객은 그의 재능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건 아닙니다. 그런 걸 하기까지의 인내심과 노력을 알기에 환한 미소를 보내는 겁니다. 저도 그날 3천 궁녀를 열심히 끝까지 한번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