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일상생활이 힘들었다는 정혜선(25)씨.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식은땀이 나고, 차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교통사고 ‘외상 후 스트레스’가 그녀를 괴롭혔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어느 날, 그녀는 마음수련을 만나게 된다. 과거의 기억에 끄달리는 좀비 같은 인생에서 이제야 탈출했다며 환하게 웃는 풋풋한 여대생의 마음공부 이야기다.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수업에 들어가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차 한 대가 오더라고요. 차가 멈추는 걸 확인하고 건넜는데 갑자기 그 차가 저를 치는 거예요. 순간 당황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엑셀을 밟아서 저는 보닛을 타고 옆으로 떨어졌죠. 조금만 늦게 일어났어도 버스에 치일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전공 책은 산산조각처럼 흩어지고 온몸의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게다가 “나는 바쁘니 보험 회사하고만 연락하라”는 가해자의 태도에도 화가 났었죠.
그렇게 열흘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이상하게 무서운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게 뭐라 설명이 안 돼요. 특히 밤에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거 같고. 저는 차가 저를 칠 줄 몰랐거든요. 일단 멈춰 있었고, 횡단보도여서 믿고 건너가다가 치이니까 더 큰 충격이었죠. 그런데다 상대가 안하무인으로 나오니까 더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했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차에 대한 노이로제가 생겼어요. 처음엔 혼자 길을 건너려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너무 떨려서 포기하고 돌아온 적도 많아요. 일주일이 지나서야 횡단보도를 겨우 건너고. 몇 번을 기다렸다가 횡단보도 앞에 사람들이 무리 지어 많이 모이면 같이 옆에 붙어서 가고. 유난스러웠죠. 언제든지 방향을 틀어서 나를 칠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항상 차를 주시했어요. 게다가 차 소리에도 민감해져서 차 시동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걷고, 끽~ 소리만 나도 자지러졌고요. 그때 알았어요. 세상천지에 차 없는 곳이 없구나.
성격도 예민하게 바뀌었어요. 그냥 웃고 넘길 말에도 짜증이 확 나고. 분명 말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에요. 내가 바뀐 건데 그게 컨트롤이 안 돼요. 결국 학기 말에 휴학을 했어요. 평범했던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내가 계획한 것들이 일그러지니까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엄청 났죠.
그 교통사고가 진짜 원망스러웠어요.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늪과 같아요. 생각 안 하려고 해도 어느 순간 하고 있고 떨쳐내기가 어려웠죠. 사고가 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 어떤 것도 그 이전으로 되돌려주지를 못하는 게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거 같아요. 가족들, 친구들의 위로조차도 제겐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더라고요. 심지어 부모님의 ‘이젠 잊고 힘내라’는 말에도 굉장히 화가 나는 거예요. 누구보다 자식의 고통에 가슴 아파서 해주신 말씀이신데도, 부모님까지 원망할 정도로 제 마음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교내 사고라는 이유로 법적으로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자, 세상에 대한 원망도 커져갔습니다. 결국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그래서 저한테 최선을 다했어요. 혹시나 우울증이 심해질까 봐 극복하려고 긍정적인 생각도 하고, 친구들도 열심히 만나고, 하루에 3시간씩 운동을 하고…. 근데 1년 넘게 했는데도 바뀌질 않으니까 점점 지쳐가는 거예요. 그때 좀 막막했어요. 탈출구도 없고 답도 없는데 계속 필사적으로 뛰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러던 와중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마음수련이 생각나서 집 근처 지역수련회에 찾아갔어요.
마음수련은 기억을 떠올려 버리잖아요. 처음엔 그게 참 힘들었어요. 그때의 내 모습이 싫고, 상황을 떠올리는 순간 운전자 얼굴, 망해버린 내 인생, 절망감과 분노가 뒤섞이면서 힘든 마음들이 올라오니까. 그런데 떠올리지 않으면 버릴 수도 없으니까 조금씩 떠올려 버리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조금씩 벗어났던 거 같아요. 정말 세포 하나하나에도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버려지는 과정에서 그때처럼 똑같이 아파왔어요. 그렇게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려 버리는데 고통도 같이 버려지는 기분이었어요. 늘 온몸이 무거웠는데 너무 가벼워지고 체력도 점차 좋아지고. 교통사고로 인해 생겼던 트라우마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아온 온갖 마음들까지 돌아보고 버릴 수 있었죠.
돌아보니 어떤 사건, 그 기억이 인생의 한순간을 빼놓지 않고 계속 영향을 준다는 게 참 무섭더라고요. 마음의 사진을 찍고 그 속에 살아간다는 게 참 무서운 거구나, 평생을 그 사건의 노예처럼 끌려다니면서 살겠구나. 정말 나라는 건 과거 사진의 집합체더라고요. 그게 너무 끔찍했기에 정말 열심히 버려나갔어요.
그러다가 우주가 나임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정리된 느낌이었어요. 그때의 감정은 형용할 수가 없어요. 이런저런 사연 속에 사는 게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이 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말 후련했거든요. 그리고 희망이 생겼어요. 그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요. 아, 되는구나. 마음이 놓였죠.
신기한 건 어느 때부터인가 짜증을 안 낸다는 거예요. 저는 항상 짜증 날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때 사고를 떠올려도 화도 안 나고, 어쩌다 사고 얘기가 나와도 덤덤하고요. 특히 차 소리가 났을 때 제 변화를 많이 느꼈어요. 예전엔 끽~! 소리만 나도 소스라쳐서 도망쳤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길을 걷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이 골고루 눈에 들어와요. 거리, 풍경, 친구 얼굴…. 일상이 편안해진 거죠.
친구들은 저보고 용 됐대요. 눈빛이 달라지고 성격도 유해지고…. 무엇보다 감사한 건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다는 거예요. 덕분에 내 인생이 달라지고 진짜 의미 있는 삶이 뭔지 알게 됐으니까요. 언젠가부터, 용서라는 말 이전에 용서가 돼 있더라고요. 더욱이 고맙기까지 했어요. 세상에 대한 화,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이 없어지니까 일단 제가 좋아요. 마음이 너무나 자유로우니까요.
꽃다워야 할 20대 초반을 좀비같이 보냈지만, 이제라도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느끼며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해요. 마음을 비워내야만 세상이 보이고 힘든 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