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직원 회의를 마치고 우르르 교실로 향하던 중, 함께 걷던 오십 대 여선생님이 앞서 가던 이십 대 처녀 선생님에게 말했다.
“하선생, 어쩜 그렇게 예쁘고 날씬하노?”
젊디젊은 이십 대 선생님은 뜻하지 않은 찬사에 뒤돌아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하얗고 가지런한 이에도 젊음이 반짝거렸다.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오십 대 여선생님도 그런 빛나는 청춘의 세월이 있었을 터이다. 그래서 나는 누님 같은 여선생님을 위로하듯 또는 아부하듯 한마디 하였다.
“뭘 그렇게 부러워하십니까? 선생님도 젊었을 때는 한 인물 했잖습니까?”
그랬더니 오십 대 여선생님이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더. 나는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예뻐예. 우리 집 아저씨가 그랬어예.”
함께 걷던 동료 교사들의 웃음꽃이 쏟아졌다. 그 속에 중년 남교사도 맞장구를 쳤다. “맞십니더. 우리 마누라도 내가 나이 들수록 멋지다 그랍니다.”
봄나들이 가는 아침이 밝았다. 정성 들여 세수를 하고 매끈하게 면도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데 아무래도 옷차림이 겨울의 칙칙함을 떨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봄날에 어울리는 화사한 스타일이 좋을 듯했다. 안되겠다 싶어 옷장 서랍을 열고 기웃거리니 아내가 깃이 있는 티셔츠를 입으라고 권했다.
“나이 든 아저씨 같아 보여서 싫은데?” “당신 나이 든 아저씨잖아? 점잖아 좋아 보이구만.” “나는 점잖은 스타일보다 나쁜 남자 스타일이 어울리는데….”
그렇게 말하고 한동안 입지 않았던 원색 셔츠를 꺼내 입었다. 거울 앞에 서 보니 가슴에 있는 큰 체크무늬가 상쾌했다. 아까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흡족했다.
“음. 적당히 나빠 보이는군. 됐어!”
그때 문밖에서 힐끗 나를 흘겨보던 아내가 중얼거렸다.
“나쁜 남자? 별꼴이야. 정말.”
아내의 혼잣말을 또 귀 밝은 내가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별꼴’이라는 표현이 거슬리지 않았다. 짧은 순간, 젊은 시절 시시껄렁한 수작을 거는 터벅머리 총각과 좋은 듯 싫은 듯 뽀로통해져서 톡 쏘아붙이는 콧대 높은 아가씨를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재미있어서 속으로 나를 옹호했다.
‘별꼴이 반쪽이다. 흥!’
지난 시절은 우리 곁을 떠나 이미 사라져 버린 빛. 젊은 날 풋풋했던 우리 모습도 믿지 못할 기억의 편린. 하지만 바로 지금 우리가 보는 이 광경은 화사하게 쏟아지는 눈부신 빛의 향연. 강물과 유리창, 새벽하늘과 아스팔트 그리고 나뭇잎과 아이의 눈망울이 그렇게 빛나는 이유를 이제야 어슴푸레하게 알겠다. 삼월이다. 당신도 눈부시다.
글 최형식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