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저온 창고에서 상해갑니다. 차라리 좋은 일에 쓰일 방법은 없을까요?’
작년 5월, 트위터에 올라온 어느 농민의 글이다. 이 글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번져나갔고 결국 한 청년의 눈에 들어왔다. 청년은 배의 활용 방법을 인터넷으로 공모했고, 충남 아산의 한 마을에서 잼을 만들 수 있다는 답변을 받게 된다. 결국 쓰레기가 될 뻔했던 배들은 소셜 네트워크와 청년의 노력으로 배 잼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태풍이나 구제역처럼 갑작스런 재해가 발생하면 판매할 시기를 놓치는 농산물이 많이 생겨요. 먹는 데 문제가 없어도 외모 때문에 제값을 못 받는 ‘못난이 농산물’도 생기고요. 그런 농산물을 대신 팔아주는 착한 중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희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정천식씨는 청년 기업 ‘빛트인’의 대표다.
‘빛트인(Between)’은 작거나 못생겨서, 혹은 판로가 없어져서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하는 농산물을 도시의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위탁 판매하는 청년 기업. 농촌과 도시에 희망의 빛을 틔운다고 해서 ‘빛트인’으로 이름 붙였다 한다.
고등학교 때 조리를 전공했던 정천식씨는 작년 3월 박원순씨의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한 희망별동대 청년 프로젝트 중 친환경 먹을거리 분야에 참여를 시작했었다. 그러던 차 처분 못한 배 때문에 고민하는 농민의 글을 보았고 배 잼 만드는 일까지 적극 도왔다.
그것은 평소 정천식씨가 생각하던 것들이기도 했다.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처치 곤란, 한숨 덩어리 취급을 받으며 버려져야 하는 농산물들에 대한 재활용 말이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동료도 생겼다. 일본에서 1년간 농사를 체험하며 환경 문제를 고민해왔다는 경희대 4학년 김주영씨가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며 합류한 것.
처음엔 돈도 없고 경험도 부족한 대학생들이 농산물 유통 사업을 현실화할 수 있을까, 단순한 봉사 활동 아닐까,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다 한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 농촌 현장을 체험하고 농산물 시장, 일본의 유통 시장까지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았고, 작년 5월엔 ‘배 잼 판매 프로젝트’, 7월에는 ‘유기농 단호박 판매 프로젝트’를 실현해 나갔다.
그들은 신세대답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를 충분히 활용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SNS의 특성 때문에, 큰 비용 없이 사업의 아이디어 공모와 홍보, 판매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작년 9월, 추석을 앞두고 태풍 ‘곤파스’가 전국을 휩쓸었을 때도 이들은 농촌으로 달려갔다. ‘빛트인’은 그중 한 농가의 흠집 사과를 대신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강한 바람 때문에 흠집은 났지만 먹기엔 전혀 문제가 없어서 ‘OK사과’라고 이름 붙였고, 농민과 함께 소비자 가격을 책정한 뒤,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했다. 결과, 한 달 만에 4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과를 구매했고, 고객들은 “못난이 사과가 맞느냐? 정말 맛있다”며 추가 주문도 이어졌다.
응원의 메시지도 폭발적이었다. 함께 일하고 싶다며 휴가 기간에 찾아온 군인도 있었고, 무료로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컨설팅 회사 대표, 1년 동안 자동차를 후원해주는 곳도 생겼다.
도움의 손길이 뻗칠 때마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면서 다시 열정이 솟아난다는 이들은 혹여 착한 일을 한다며 안주하고 있진 않은지, 기존 유통업자의 관행을 따르고 있진 않은지,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착한 중개자는 농민에게도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파트너예요. 당장 큰 도움은 못 되더라도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미래의 농촌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취재 문진정 사진 홍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