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내려놓고 나잇값을 하게 되다
김주완 44세. 개인사업 운영. 인천시 계양구 오류동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몇 학번이세요?”
사람을 만날 때면 이름 다음으로 묻는 게 바로 나이였다. 동창회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몇 기세요?” 선배일 경우 바로 존칭을 쓰고, 어린 사람은 하대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지한 상담을 청해오던 후배들은 나와 대화를 하면 한풀 꺾이곤 했다. “나도 그런 거 경험해 봐서 아는데 말이야…”로 시작하며 아랫사람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린 친구들이 술을 먹고 실수를 하면 “객기로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겼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실수하면 “나잇값 못 하네” 하며 혀를 찼다.
나이는 내 삶의 기준이었다. 20대엔 결혼해서 20평 정도엔 살아야 하고, 30대엔 30평, 40대엔 40평 정도에는 살아야 하지 않나, 하며 그 목표에 도달하려 애썼다.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직함이자, 먹고사는 방법, 생활 수단까지 포함된 개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디까지나 내가 정해놓은 기준이지만 그 나이에 맞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다.
그러다가 아주 재미난 일을 경험했다. 내가 다니는 동호회에서 MT를 갔는데, 이름표를 살펴보니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나이 먹은 사람이 혼자 뻘쭘히 앉아 있는 형국이었다. 괜히 왔다는 생각에, 영 가시방석이었다. 야외에서 술 한잔 할 분위기인데, 점점 어두워지면서 서로 얼굴도 잘 안 보이던 상황, 순간 나는 과감히 내 이름표에 써 있던 나이 42를 24로 바꾸었다.
‘에라~ 모르겠다. 젊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데, 나잇값 못 한다고 할 거 아니야…. 그럴 바엔 이왕 온 거 나이를 한번 확 놓아보자.’ 나도 모르게 오늘 하루만은 나이를 놓고 지내보자는 용기가 생긴 거였다.
서로 골고루 얼굴도 익히고 친해지기 시작하자, 젊은 친구들이 한마디씩 건넸다. “근데, 넌 왜 이렇게 늙었니?” “왜 이렇게 삭았어?” 농담이되 농담만은 아닌, 걱정스런 인사말들이었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하고 손해 보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적응되어 갔다. 모처럼 젊은이들과 어울린 자리는 다양한 얘깃거리로 즐거움을 주었고, 그때 느낀 자유와 해방감이란~!
당시의 경험은 나에게 나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얼마나 나이란 틀에 갇혀 살고 있었던가. 그로 인해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의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그 후론, 의식적으로 나이를 내려놓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을 만나면 나이보단 안부부터 물었고, 나잇값 하느라 무게만 잡던 나를 내려놓고 후배들에게 농담도 걸고, 직원들에게 커피도 돌렸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대화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사무실 분위기도 좋아졌고, 훨씬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가장 큰 변화라면 사람을 만나는 폭이 훨씬 넓어졌다는 것이다. 스무 살 젊은이와도 나보다 한참 많은 어르신과도 금세 친구가 되고 말이 통하는 기분이란 정말 근사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왜 그렇게 나이, 나이, 하며 살았는지 픽 하고 웃음이 나온다.
결국 나이를 정말 잘 먹는다는 건 자기의 틀을 잘 없애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온 날만큼 쌓이는 관념과 관습, 그 딱딱하게 굳어진 성벽을 허물 줄 알 때, 정말 상대를 배려하고 잘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나잇값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