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1
사월 한식 날 엄마하고 아버지 산소 벌초하는데 당신 허리처럼 굽은 호미로 잡초 매시던 우리 엄마 산소 언저리에 홀로 핀 노오란 풀꽃 언뜻 보시더니 그만 눈을 뺏겨 호미 끝으로 마른 흙 톡톡 파시기에 그 꽃 옮겨 가면 집 근처도 못 가 말라 죽을 거라고 낫으로 잡풀 베어 넘기던 내가 쓴소리 건넸더니 우리 엄마 깜짝 놀라 물러앉아 두 손으로 흙을 퍼서 풀꽃 주위 도톰하게 채워놓고 토닥토닥 다져주시더라 애비야 꽃 안 다치게 조심해서 하거라 말씀하시더라 벌초를 다 마치고 아버지께 잔 올리고 재배 드리고 나뭇등걸마냥 거친 엄마 손 잡고 산비탈을 내려오니 배꽃보다 더 하얗고 붓꽃보다 더 곱던 엄마 생각에 퇴주잔 끝에 불콰해진 나는 그냥 울고 싶더라
꽃2
어머니가 서울 친척 집에 꼭 다녀오실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시골집을 비우게 되었다. 모처럼 새 단장을 하신 어머니가 오래된 손가방에 돋보기와 성경책과 안약을 챙겨 넣고 나갈 채비를 하셨다. 하지만 당신은 선뜻 나서지 않고 거실 한 켠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분 앞에 앉으셨다. “할매 댕기올 때까지 잘 크고 있거라. 얼릉 댕기 와서 할매가 많이 많이 쳐다봐주께.”
눈이 깊은 사람은 꽃을 눈길로 가꾸는가 보다. 작은 화분의 앙증맞은 꽃들이 꼬마 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어머니 시선은 가늘고 푸른 줄기에서 싱싱한 잎새 사이로, 이 꽃잎에서 저 꽃잎으로 나비처럼 분주하게 옮겨 다녔다.
이십여 년 전, 화단 앞에서 어머니가 하신 혼잣말을 나는 기억한다. “아무리 귀하고 예쁜 제 자식도 어떤 때는 미울 때가 있는디, 꽃은 왜 이리 볼 적마다 예쁘다냐.”
며칠 후, 어머니가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되었다. 지금쯤 화분 밑에 감추어 둔 열쇠를 꺼내 집에 들어오고, 오래된 가방에서 돋보기와 성경책과 안약을 꺼내 제자리에 놓을 때다 싶어서 전화를 했다. “내 집에 옹께 너무 좋다. 세상에 어디가 편허것냐. 내 걱정 말아라.”
그래놓고는 한껏 들떠 꽃들의 안부를 전해 주었다. 그 목소리가 은초롱처럼 맑았다. “아 글쎄, 저번 장날 사놓은 쪼깐한 화분이, 나가 없는 사이 손톱만 한 꽃을 피웠더라 말이시. 그래 갖고 이짝 저짝에서 할매 나 좀 보소. 할매 나부텀 먼저 봐주소. 함시로 서로 저 쳐다봐달라고 난리더라.”
동쪽 하천 따라 긴 방죽 끝자락 외딴집, 다시 당신의 일상으로 돌아온 내 어머니는, 오늘도 개미처럼 꼬물꼬물 텃밭 일을 마치고 이제 단잠에 드셨겠다. 세상에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눈길 고운 할머니를 위해 꽃망울 펑펑 터뜨리는 꿈을 꾸시겠다.
글 최형식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