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에게서 내려놓음을 배웠습니다
글, 사진 이기완 사진가
그 나무를 처음 만난 건 2004년 겨울이었습니다. 예당저수지 물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왕버들 나무. 나무는 30년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넓은 저수지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모습이 꼭 ‘나’ 같았습니다. 모두들 외지로 떠나고, 친구도 없이 외로워하던 내 모습….
힘들고 답답할 때 그 나무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뿌리를 내린 순간부터 온전히 그 자리에 있는 나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물결이 거칠게 쳐도 나무는 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꽃이 피고 새순이 돋고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다시 또 꽃이 피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무는 조금씩 커 나갔습니다.
2009년,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날이었습니다. 눈이 안개처럼 세상을 가리고, 그 나무만이 무심히 서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사진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수지에 20cm가량의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날씨, 하지만 나무는 주변에 동그란 작은 연못 하나를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한겨울 나무의 겉모습은 차가웠지만, 나무는 따스한 온기로 얼음을 녹이고 있었던 겁니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들렀다 가는 새들한테도 온전히 기다리고 품어주는 사람, 사람들의 언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외로움이 참 많았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이 외로움으로 표현된 거였습니다. 나무가 나를 위안해주는 만큼 외로움을 내려놓으면서 점차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내가 아닌 나 자체로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상대가 상처를 주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건 바로 나였습니다. 상처받기 싫어 너무나 가늘고 얄팍하고 치졸하게 살아온 나, 그런 마음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건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내가 내 틀로 만들어놓은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만든 틀에 안 맞으면, 충돌하고 아픔을 주고받기 마련이었습니다. 나만 그 틀을 내려놓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 나무가 편안했던 것은, 자기를 내세우지도 주장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내려놓아야… 누군가에게 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점차 내가 느낀 그 나무의 본질을 찍고 싶었습니다. 학벌이나 경제력 같은, 그 사람을 치장했던 배경을 빼버리면 그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듯이, 이 나무도 온전하게 나무만으로 찍어보고 싶어 안개가 많이 끼는 겨울을 선택해 사진을 찍어나갔습니다.
점차 사람들을 볼 때도 조금 더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자기를 치장하는 것들을 버리고 버려도 남아 있는 그 본질에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최대한 나의 틀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대하면 그 사람 또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에, 더욱 당당하고 자유로운 그 나무를 닮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