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계 대표 스토리텔러이자, 최고의 웹툰 작가로 손꼽히는 윤태호(45) 작가. 자신의 한판 바둑(삶)을 승리하기 위해 한 수 한 수 돌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 웹툰 <미생(未生)>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연재 중인 <미생>의 다음 회 탈고를 위해 밤샘 작업을 하고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취재진을 맞아주었다.
요즘의 커다란 성취에 큰 희열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 달리, 그는 덤덤했다. 만화가라는 직업 또한 살기 위해 하루하루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작가는, 인생의 출렁거림 속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미생 속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는 말처럼 그만의 바둑을 치열하게 두고 있었다.
“처음부터 시작할 겁니다. 다시는 바둑처럼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밝혀야 할 불빛이 있다면 책임질 겁니다. 내게 허락된 불빛이 있다면요….”
<미생(未生):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2수, 열한 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기사만을 목표로 살아가던 주인공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면서 다짐하는 말이다. 그렇게 <미생>은 이제 삶이라는 바둑판 위에서 세상과 바둑을 두며 주인공이 차츰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만나는 많은 사람들, 넥타이에 하얀 와이셔츠, 다 똑같아 보였던 샐러리맨들 하나하나의 삶이 따듯하게 채색되어진다. 직장 생활을 하며 자기 삶이 훼손당하는 느낌,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은 느낌, 가정과 일과의 조화의 어려움, 일상의 고단함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직장인들에게 위로와 연민, 격려를 건네는 만화. 재미뿐 아니라, 잊었던 꿈을 생각나게 하는 만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돌아보게 하는 그 만화에 사람들은 감동했고, 2012년 1월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이후 온라인 웹툰 조회 수 4억 회, 직장인들의 필독 웹툰, 만화가 아닌 인생 교과서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국민 웹툰이라 불리며 모바일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미생>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요?
너무나 감사하죠. 제 인생에 이런 빅 이벤트가 없었고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성취니까요. 그래서 해피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불안감도 있어요. 이런 걸 또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했을 때 또 지면은 나를 찾아줄까? 하는 불안감. 그런 건 대중 작가로서 항상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마음이 급한 것도 있고요. 미생에도 나오지만 샐러리맨들이 사업 한 건 잘됐다고 그 메뉴얼대로 다음 사업이 저절로 되지 않잖아요. 작가의 삶도 궁극적으로 봤을 때 직장인들의 삶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나요?
방법이 있다기보다 미생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그냥 하루하루 도장 찍듯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인 것 같아요. 저는 ‘성공’, 이런 말을 싫어하는데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가 우리 손에 있지 않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지 결과는 그 뒤에 오는 거 같아요. 마치 막 나무를 비볐더니 불이 붙는 이치처럼요.
“말하지 않아도 행동이 보여지면 그게 말인 거여.” “평생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등등 미생에는 와 닿는 명대사들이 많습니다.
스토리를 구성할 때 이야기를 하나로 정리할 수 있는 소박한 문장 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 문장들이 다 크고 작은 제 경험에서 나오는 거죠. 만화에 나오는 대사나 내레이션은 제가 공감하지 않는 것은 나올 수 없으니까요. 미생은 특히나 저에 대해서 돌아본다는 생각을 갖고 쓰고 있습니다.
‘우연은 기대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끝난 사람에게 오는 선물 같은 것’. (미생 29수 중) 요즘, 윤태호 작가의 인생에 찾아온 최고의 ‘빅 이벤트’ 또한 준비된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 신문에 네 칸 만화를 연재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던 윤작가는 자연스레 미대를 꿈꿨지만, 고3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미대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만화가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한다. 특별한 거처도 없어 낮에는 만화 학원에서 배우고, 밤에는 노숙 생활을 하며 ‘하루빨리 만화가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던 그는, 우연처럼 어린 시절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허영만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고, 다시 조운학 선생의 문하생을 거쳐 1993년 ‘비상착륙’이라는 작품으로 데뷔를 한다. 25살의 이른 데뷔, 그것은 문하생 시절 ‘연습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연습에 몰두한 결과였다.
자칫 자만에 빠져 있을 수도 있었으나, 지금의 윤태호 작가를 만든 힘은 바로 그 성취의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데 있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작품을 보니, 그림에는 엄청난 공이 들어가 있었지만, 그 그림이 담고 있는 얘기는 형편없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다시 조운학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창작이란 무엇인가’부터 고민하며 드라마 <모래시계> 대본, 최인호의 시나리오 전집 등을 모두 베끼는 등 스토리 공부에 매진한다. 그렇게 2년여, 탄탄한 그림 실력에다 스토리 구성력까지 갖게 된 윤태호는 날개를 단 듯 화제작을 그려냈고, 1998년 발표한 ‘분노를 모르는 불감증 사회에 던지는 과거 시점의 SF’ 만화 <야후>로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웹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연재하게 된 웹툰 <이끼>. ‘본격 한국식 잔혹 스릴러’를 표방하며 선과 악, 그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이끼>는 강우석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며 더욱 화제를 모았다. 구력이 쌓인 사람으로서의 노련미, 만화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몰입하게 하는 구성력, 인간과 삶,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스토리, 매 작품마다 소재나 표현 방식에 한계를 두지 않는 신선함까지 더해지며 윤태호 작가는 한국 만화계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야후> <이끼> <미생>까지 작가님의 작품들 보면, 인물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저를 분석하는 작업이 창작에 도움이 됐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제 팔자, 운명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피부나 그런 면에서 약점이 많게 태어났고 가정 환경도 어려웠고. 괜한 열패감에 쌓여, 계속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걸 꿈꿨죠. 그러면서 저를 많이 돌아보고 사주, 관상, 별자리, 이런저런 공부를 많이 찾아서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저에 대해서 이해의 폭도 커지면서 다른 사람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세상 만인의 모습이 바로 내 안에 있는 거라는 것도 알았죠. 내가 누군가를 볼 때 남을 보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남을 판단하고 규정짓는 거잖아요. 제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언제나 제 안에 있는 어떤 조각이 나와서 그것이 구체화된 거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제 안에 있는 어떤 면을 극대화시켜서 그려 보기도 하지요.
<미생>은 작가님 최초의 긍정적인 만화로 불릴 만큼, 전작들의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비해 밝은 느낌인데요. 특히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술을 끊겠다 다짐하는 과장 등 가정 이야기들에 독자들도 뭉클해진다고 합니다.
미생의 테마 중 하나가 그거거든요. 나 혹은 가정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데 일때문에 가정이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것을 되돌리지만, 결국 직장에 나오는 이유는 가정으로 가기 위함이라는 거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이삼 일에 한 번 집에 가는 상황이다 보니, 미안하고 마음이 무겁죠. 책이 잘 팔리고 영화가 되고 그런 것이 우리 아이들이 아빠하고의 관계에서 지금 이 나이에 경험해야 할 것들을 보상해줄 수 있나? 하면 그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빠가 지금 자기 일에서만큼은 성실하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어요. 그것까지 놓치면 굉장히 괴로울 거 같아요.
미생,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라는 부제가 붙는데, 결국 완생으로 나아갈까요?
‘미생’은 원래 바둑 용어로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말을 일컫는데, 누구나 살아간다는 게 미생 같아요. 돈이 적으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돈이 많으면 거기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걸 지키기 위해서 뭔가 하잖아요. ‘완생(完生)’은 결코 이룰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걸 지향해 가는 게 인간의 삶이라고 할까요.
인생에 가장 큰 슬럼프가 있었다면요? 슬럼프를 극복한 방법도 궁금합니다.
<이끼> 하기 전 3년 정도? 거부를 많이 당했죠. 그래도 계속 그렸어요. 그게 슬럼프 극복법이었죠. 누구한테나 일이 잘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피하는 버릇이 생기면, 자꾸 몸이 거기에 의지하게 될까 봐 항상 자리는 지키고 앉아 있었어요.
올 6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인천상륙작전>은 역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요즘 전쟁이라는 걸 화석화시켜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휴전을 고정시켜서 마치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것처럼 확정적으로 생각한다거나, 지금 상태가 좋다거나. 그런데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불합리한 제재나 이런 것들은 분단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 대단히 많거든요. 그런 지점에 대해서 조금은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제대로 설득이 되어 있는가?” 기획서를 쓰기에 앞서 가장 중요하게 물어봐야 할 질문. (미생 39수 중)
그 질문처럼 스스로 설득이 되지 않는 작품, 대충 허투루 쓰는 작품을 용납하지 못하는 윤태호 작가는, 그만의 에너지가 들어 있는 만화를 만들기 위해 매 작품마다 취재, 자료 조사 등 치열한 준비 기간을 거친다. 처음 출판사의 제안으로 시작한 미생만 해도 준비 기간만 3년, 그 기원을 따지자면 10년이 걸려 숙성된 작품이다. 그는 미생 후속작으로 ‘신안 앞바다 보물선’ 이야기도 치열하게 준비 중이다.
작가님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정말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는 걸 인식하는 분에게는 굳이 제 이야기도 필요하질 않다고 봅니다. 자기 욕망이 자기를 가만히 안 둘 테니까요. 뭐라도 하게 만들고 모색하게 만들겠지요. 결국 욕망의 사이즈가 재능이고 그 사이즈를 구현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재능이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첫 수업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어요. “스스로 각오하고 있느냐”고요. 만화가의 길이라는 게 힘든 일도 많거든요. 그렇지만 진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가시밭길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겠지요.
2년째 미생을 연재하며 이런저런 작품과 일정을 병행하느라 제대로 잘 시간도 없었다는 윤태호 작가.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도, 새로운 작품을 기획할 때 가장 행복하고, 끊임없이 하고 싶은 작품이 샘솟는다는 그는 천생 만화가이다.
‘내가 한 수, 상대가 한 수… 한 판, 두 판, 세 판… 수많은 판을 거쳐 내가 가야 할, 도달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가 꿈꾸는, 도착하고 싶은 삶은 어떤 것일까?’ (미생 96수 중)
그 답은 작가도 아직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저 오늘도 열심히, 치열하게 한 수 한 수 인생의 바둑을 묵묵히 두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최선의 길이 아니겠냐고.
지난날들에 대해 실패다, 성공이다, 경계 짓지 말자. 그 또한 우리가 그토록 찾고 싶은 답, 완전한 삶으로 안내하는 길 중 하나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