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33세. 직장인.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선배 언니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 애니메이션 동아리에서였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언니는 뭐랄까 욕심도 많아 보이고, 남자들과만 유독 친하게 지내는 약간 공주 스타일로 선뜻 친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다 언니와 함께 게임 회사에 입사하면서 회사 기숙사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청소, 설거지 등 함께 해야 하는 일을 잘 도와주지 않을 뿐더러, 모두가 일을 할 때도 혼자 일찍 퇴근해 버리곤 했다. 한번은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언니가 오랫동안 설거지를 하지 않고 그릇들을 쌓아 두어 구더기가 생긴 적이 있었다. 세상에나~! 나는 화들짝 놀라 뜨거운 물로 구더기를 씻어내고 설거지를 했고, 그런 언니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언니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퇴사를 하고, 서울로 왔는데 혼자 방 구하기도 어렵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 언니와 자취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언니는 청소나 빨래를 나보다 덜 하는 것 같았고, 가끔 남자 친구를 새벽에 데리고 와 노래를 부르곤 해서 나를 짜증 나게 했다.
그렇게 얄미운 언니가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수련을 한다고 했을 때 언니의 안 좋은 이미지 때문에, 마음수련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언니가 바뀌는 것 같더니, 청소를 하고, 밥을 차려주고, 나를 챙겨주는 게 아닌가. 이제야 비로소 ‘언니’ 같은 기분이 들었다. 힘들 때 무심코 털어놓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진심으로 들어주었고, 언니의 조언은 큰 힘이 되었다.
한번은 언니가 1주일간 논산에 있는 마음수련 교육원에 다녀왔는데,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너무나 예뻐져 돌아왔다. ‘마음수련하면 저렇게 예뻐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점차 언니를 의지하고 따르게 되었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따로 떨어져 살게 되면서 언니의 빈자리는 더 크게 다가왔었다. 힘들 땐 자주 언니를 찾았다. “언니 시간 돼요?” 하고 물으면, 언니는 언제나 내 얘기를 들어주기 위해 달려와 주었다. 자존심이 세서 다른 친구들한테는 좋은 모습만 보여 왔는데, 왠지 언니한테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도 다 이해해주고 들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마치 엄마처럼.
어느 날 언니에게 고백했다. “언니, 저 수련해야 될 거 같아요.”
살면서 늘 바란 게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남자 친구를 생각하거나 여행을 꿈꾼다든지 한순간도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수련을 하고 복닥복닥한 마음들을 버리자 잡념은 사라지고 마음은 평온해졌다. 수련을 하면 마음이 버려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일할 때 일에만 집중하니 일의 효율도 2~3배로 늘어났다. 오직 그 순간에 몰입해서 산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싶다.
가끔 친구들은 내게 말하곤 한다. 평소에도 해피바이러스같이 밝은 네가 뭘 버릴 게 있냐고…. 난 솔직히 말한다. 그동안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많은 잡념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하지만 이젠 정말 행복하다고. 그렇게 되기까지 함께해준 언니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누구보다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순미 언니, 언니 진짜 완전 달라진 거 알아요? 언니, 짱이에요~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