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개그우먼 김영희(32)는
‘아줌마 개그의 최강자’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10년 데뷔, 28세 때부터
줄곧 다양한 아줌마의 역할로 웃음을 줘왔기 때문이다.
최근엔 <개그콘서트> ‘끝사랑’에서
정열적인 사랑 중인 ‘김여사’로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김영희씨.
개그맨이 되고자 두 번 연속 공채에 도전,
합격했지만 신인이 실력을 발휘할
개그 프로가 없다는 것에 좌절해야 했던 그녀.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KBS 공채에 도전했으며,
긴 공백 등의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그녀는 ‘자신에 대한 믿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즐길 줄 아는 것’이
꿈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 말한다.
“옴~마!!” “앙대요~” “짓꾸져~!”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돌싱 김여사는 정사장(정태호) 앞에서 최선을 다해 혀 짧은 소리를 내고, 과감한 애정행각도 마다하지 않는다. 촌스러운 화장에 온갖 멋을 부린 ‘좀 노는 아줌마’ 김영희와 죽이 척척 맞는 ‘허세 왕’ 정태호. 두 사람의 연기에 웃음이 절로 터지는 <끝사랑>이 요즘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다. 김여사의 “앙대요~”는 이미 국민 유행어가 되었다.
요즘 ‘끝사랑’이 인기가 많습니다. 기분 좋으시죠?
사실 그런 인기를 느낀 지는 얼마 안 돼요. 아이디어 짜고, 회의하고 녹화하고… 개그맨들의 일주일 패턴이 똑같거든요. 어디 놀러 간다거나 돌아다니는 게 없다 보니까, 실제로 체감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 ‘인간의 조건’이라는 프로를 찍으며 외부를 다니면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구나 알았죠. 너무 좋고 감사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짜게 됐나요?
연인 코너를 재밌게 했으면 좋겠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중년밖에 없겠다 싶었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중년의 사랑이 되게 예쁘단 말이에요. 제가 조민수씨의 연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조민수씨가 예전에 출연한 드라마 <피아노> 때의 억척스러움과 고급스러움 섞인 걸 찾아서 해보자 해서 모티브로 삼아 했는데, 이게 저한테는 최선인 거죠.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들을 떠올려보면 다 아줌마는 맞는데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그동안은 좀 억센 아줌마 쪽이었다면 <끝사랑>의 아줌마는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억세지는 않은 나름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고급선이라고 할까.(웃음)
김영희씨 연기를 보다 보면 ‘맞아, 우리 동네에도 저런 아줌마 꼭 있었어!’라는 생각이 늘 듭니다. 관찰력이나 연기력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아유, 감사합니다. 실제로 평소 주변을 많이 관찰하고,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봐요. 같은 영화도 필이 꽂히면 일곱 번 여덟 번씩 봅니다. 처음엔 전체 스토리만 보인다면, 다음엔 세트, 옷차림, 엑스트라 등등 보면 볼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내 것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특히 제가 빼놓지 않고 보는 게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이에요. 거기서 본 아줌마 캐릭터들이 제 안에 쌓여 있다가 개그로 나오는 거 같아요. 이제 <끝사랑> 김여사도 봄옷으로 개편을 해야 해서 요즘엔 유심히 아줌마들의 옷이며 액세서리 같은 것을 더 관찰하는 중이에요.
작년 <거지의 품격>이 끝나고 몇 개월간 공백기 후의 코너여서인지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는데요.
다 그렇겠지만 저에게는 정말 개그콘서트 무대가 절박했어요.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도 자신의 주 무대에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늘 힘들었거든요. 원래는 이 코너가 2년 전에 다른 분과 만든 코너였어요. 그때도 제가 오랜 공백기 때였는데, 검사 맡으면 반응은 좋은데 통과가 안 되는 겁니다.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런 기다림 끝에 된 거거든요. 첫 녹화를 마치고, 마지막에 인사를 하는데 고개를 못 들 정도로 눈물이 떨어지더라고요. 너무 원했던 무대에, 제가 원하는 코너로 다시 섰다는 게 찡한 거예요.
“김영희는 개그계의 홍수환이다.” 동료 개그맨 허경환은 한 방송에서 그녀를 그렇게 표현했다. 네 번 쓰러지고 다섯 번 일어나 승리한 전설의 복서 홍수환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 악바리 같은 끈기와 근성을 말한 것이다.
동네 개그맨이라 불릴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끼가 많았던 김영희가 본격적으로 개그맨이라는 꿈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였다. 그녀 안의 개그 본능이 자연스레 개그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시작도 좋았다. 2010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해 개그콘서트 <두 분 토론>으로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여자 신인상과 최우수 아이디어상을 수상한 것.
하지만 그녀에게도 몇 번의 슬럼프가 찾아온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2011년 <두 분 토론>이 끝난 후 찾아온 9개월간의 긴 공백기였다고 한다. 끊임없이 새 코너를 짜 검사를 맡았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끈질기게 놓지 않은 건 개그에 대한 열정이었다. 코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그콘서트 회의실에 나가서 매일매일 아이디어를 짜고, 검사를 맡고, 떨어지고,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 기간은 개그맨 김영희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 그녀를 성장시킨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의지는 어디서 나온 건가요?
좋아하는 거 같아요. 사실 제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뭐를 하겠다고 시작했다가 끝까지 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도 저를 못 미더워하고, 저도 저를 못 믿고 살았어요. 그런데 개그는 이상하게 끝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흥미를 굳히고 나면서부터는 저한테는 안 하면 안 될 거 같은 존재가 돼버렸어요.
개인적으로 웃음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웃음의 힘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일단 제가 시청자의 입장이었을 때 너무너무 웃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거 같애요. 고민을 하거나 슬플 때 등, 다른 감정에는 다 생각이 들어 있잖아요. 그런데 웃을 때만은 생각이 없어요. 웃으면서 “나는 이래서 웃는 거야” 생각하는 사람 없잖아요. 자연스레 웃으면서 거기에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게 웃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제가 무대에 섰을 때는 제가 웃지는 않아도 보는 분들의 웃음을 받는 입장이잖아요. 받았을 때의 그 에너지도 이루 말할 수가 없죠. 한 주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더라고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올 수 있잖아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두 분 토론> 후 9개월간의 공백기가 있었을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저에게는 마치 9년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때 생각한 게 ‘나를 믿자’였어요. 내가 나를 안 믿고 흔들리기 시작하니까 그 시간들이 더 힘들어지는 거예요. 나를 믿지 못하면 모래알도 바위처럼 크게 느껴지거든요. 근데 나를 믿으면 바위가 다가와도 모래알처럼 여겨지는 힘이 생겨요.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최고의 극복법이었던 것 같아요.
마음을 비운다는 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면요?
내려놓는다는 건데, 그게 솔직히 힘들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용을 써도 안 되고 악을 써도 안 되는데 이렇게 안 될 거면 차라리 내가 행복하기라도 하자, 하면서 내려놨죠. 이 코너를 꼭 해야겠다는 욕심, 내가 꼭 무대에 서야겠다는 욕심…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즐기려고 했어요. 그 즈음 새 코너들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개콘을 하다가 쉬고 있는 후배에게 이야기를 해요. 내려놓으라고. 내려놓고 그냥 놀라고. 뭔가 내려놨을 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데, 내가 꽉 잡고 있으니까 그런 공간이 안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내려놓으면서 진짜 즐길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무대 위에서 보면 항상 즐기는 거 같은 모습이에요.
솔직히 그런 여유가 이제 좀 생긴 거 같아요. 사실 처음 <두 분 토론> 할 때도 전혀 즐기지 못했어요. 첫 회만 좀 즐겼던 거 같고, 갑자기 큰 인기가 와버리니까 욕심이 생기고 일이 돼버린 겁니다. 무대에서는 그냥 놀아야 하는데, 뭔가를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고 병적으로 소재 찾고 대본에 매달리고. 스스로 매여서 스스로를 죄여가면서 사법고시 준비하듯이 해버린 거예요. 매 주를. 동료 신보라씨는 제가 ‘두 분 토론’ 할 때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하니까 놀라더라고요.
역시나 행복은 많이 가진다고 오는 건 아닌 걸까요.
돌아보면 오히려 대학로 소극장에서 식권 2장 받으면서 생활했던 개그맨 지망생 때 더 행복했어요. 그때는 꿈이 있었고, 즐겼으니까. 그런데 그게 일이 된 순간 못 웃기면 안 된다, 더 잘해야 한다, 그런 생각들로 제 마음이 꽉 찼어요. 아무것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고, 당연히 행복할 수가 없죠. 박영진 선배도 제가 힘든 기간들을 거치면서 변했다는 이야기를 하세요. 그 기간들이 있었기에 자만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거 같다고. 예전에는 앞만 보며 달려왔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보이는 거 같아요. 내가 뭐가 부족한지도 보이고. 그러면서 사람도 주변에 더 생기고, 예전보다 표정이나 이런 게 많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도 들어요.
“아줌마 캐릭터를 파는 게 흥미롭고 재밌다, 지금도 하고 싶은 아줌마 캐릭터가 무궁무진하다”는 김영희씨는 데뷔 초부터 아줌마들을 연기해왔다. 고루한 정장에 단발머리, 뿔테 안경을 걸치고, 거침없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두 분 토론>의 여당당 대표, 아주머니들이 떼 지어 등산복을 입고 등산 가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은 <봉숭아학당>의 싱글 아줌마들 모임인 비너스회 회장, <끝사랑>의 김여사…. KBS 개그맨이 되기 전부터 아줌마 연기가 전담 마크였다고 하니, 그 역사는 더 오래된 셈이다.
새로운 캐릭터를 시도할 때마다 신기하고 재밌다는 그녀는, 엄마, 엄마의 친구들, 드라마, 영화 속의 아줌마들을 면밀히 관찰해, 말투부터 화장법, 의상, 몸짓 등 세밀한 부분까지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을 통해 배꼽을 잡게 만드는 아줌마들이 탄생했다.
항상 아줌마 역할을 하다 보니, 실제 김영희씨를 아줌마로 보는 인식도 많잖아요. 그런 이미지가 좀 걱정되지는 않나요?
일단 진짜 아줌마가 아니니까 개의치 않고요. 일상에서 오해는 많이 하시지만 좋게 생각해요. 그만큼 연기를 잘하고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TV에서 보는 것보다 실물이 더 낫네’ 이런 얘기도 많이 들으니까, 그것도 좋은 거 같아요. 제가 개그 시작하고 제 나이 또래의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어요. 계속 연령대가 좀 있는 캐릭터를 해서인지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꽤 있어요. 팬레터를 보내주시는 분도 계시고 아이디어를 보내주시는 분도 계시고. 언젠간 아줌마들이 단체로 나오는 프로그램에 리포터로 갔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작가님이 제가 아줌마계의 소녀시대라고 할 땐 감사했죠. 팬에게 예쁜 도시락이나 이런 건 못 받아봤어도, 산지에서 보내주시는 고구마 감자 이런 거는 받아봤습니다.(웃음)
아줌마 캐릭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일단 되게 인간적이지 않나요?
바쁜 현실 속에서도 로망을 찾고 사랑을 찾고 감성을 찾으면서 인간적인. 그리고 뭔가 예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해도 되는 게 좋아요. 한번은 제 뱃살 중간에 마이크 줄을 차서 상황을 연출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아줌마 캐릭터의 매력인 거 같아요.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로 신봉선씨를 꼽았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또 그 외에도 특별히 힘이 되어주었다거나 존경하는 선배가 있다면요.
신봉선 선배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시청자 입장일 때부터 그 선배 개그를 보면서 많이 웃었죠. 꺼지지 않는 에너지가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개그맨이 되고 나서도 특별히 만날 일은 없다가, 개그콘서트 특집 때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서봤어요. 정말 그 무한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걸 정말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힘이 되어주신 선배는 많지만 특히 첫 코너를 같이 했던 박영진 선배에게 정말 감사해요. 그 선배는 후배 100명에게 물어봐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정도를 걷는 분이에요. 경상도 남자 스타일이라 말씀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가끔 제가 주눅 들어 있거나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이면 지나가면서 어깨 한번 꾹 눌러주고 가세요. 그런 무언의 격려가 일주일을 버티는 힘이 됐죠. 저도 그렇게 후배들을 챙기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개그를 하는, 어떤 개그맨이 되고 싶은지 말씀해주신다면요.
예전부터 모든 연령층에 통하는 개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요즘은 너무 흐름이 빠르게 변하다 보니까, 엄마랑 같이 개그 프로를 보다 보면 방청객들이 왜 웃는 거야? 저거는 무슨 뜻이야? 줄임말만 나와도 못 알아들으니까 그런 질문을 하세요. 엄마는 이해를 못 하겠는데 방청객들은 웃으니까 괴리감이 느껴지시나 봐요. 저도 엄마가 웃으실 때가 제일 좋아서, 데뷔하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늘 했었어요. 엄마가 웃을 수 있는 개그를 하고 싶다! 실제로 제가 개그맨을 하면서 어머니 또래의 아주머니들을 웃길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엄마가 웃을 수 있는 개그, 더 나아가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웃을 수 있는, 그런 개그를 하고 싶어요.
방송에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 만난 김영희씨는 아담하고 귀엽고 여성스러웠다. 패션, 네일아트, 퀼트 등에도 관심이 많다는 그녀는, 작년 <인간의 조건> 개그우먼 특집에 출연 ‘휴대전화와 쓰레기 없이 살기’라는 미션을 수행하며 뛰어난 손재주로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약간은 부정적인, 스스로에게는 약간 야박한, 잘 만족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무엇이든지 일단 주어진 것은 열심히 하는 성격’ 덕분에 오히려 매주 안주하지 않고 더 좋은 프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김영희씨. 무대 위의 김여사일 때가, 사람들이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는 천생 개그맨이었다. 인터뷰 말미 “앙대요~” 한 번만 해달라고 부탁하자, 조곤조곤 말하던 그녀에게서 갑자기 에너지 넘치는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웃고 살지 않음 앙대요~” “사랑하지 않음 앙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