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하. 17살, 오직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그녀는 이듬해 ‘혜성’이란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그 뒤 성공적인 일본 활동을 발판 삼아 2007년 국내에서 1집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대중 앞에 선 그녀는 아이돌 대세인 가요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또래 가수들 중 최고의 가창력을 자랑하며 직접 작사,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그녀, 최근 1년 6개월의 공백을 깨고 4집 앨범 <슈퍼소닉>으로 다시 돌아온, 올해로 데뷔 9년째를 맞는 가수 윤하(25)를 만나보았다.
MBC ‘나는 가수다Ⅱ’ 무대에 가수 윤하가 섰다. 그녀가 부를 곡은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모든 관객이 숨죽인 가운데 그녀는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에 집중했고,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저 나이의 가수가 어떻게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가장 섬세한 <빛과 소금>의 노래를 저렇게 참 정결하게 다시 재해석해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또래 여가수 중에서 톱클래스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자격이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는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떠나 그녀가 또래 가수들에서도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기존의 아이돌 가수들이 걸어온 방식과 그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오직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싱글 앨범 <유비키리>로 데뷔, 이후 ‘혜성’이란 곡으로 일본 오리콘(일본의 인기 음악 차트) 순위에 진입하면서 주목받으며, 2006년 한국에 돌아와 1집 앨범 <고백하기 좋은 날>을 발표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전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그녀는 또 한 번의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다시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그렇게 1년 6개월이란 시간을 견뎌낸 그녀는 결국 너무나 바랐던 무대로 돌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한결 편안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이번 4집 앨범을 준비하며
그 마음가짐이 남달랐을 거 같아요.
전엔 작업할 때 어떻게 하면 대중들한테 어필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잘 팔리겠지 하면서 무언가를 겨냥해서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참 경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그걸 다 내려놓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뭐지? 하고 싶은 게 뭐지?’ 생각하면서 저의 솔직한 모습을 담으려고 했죠. 진심을 담으면 통하지 않을까 해서요.
최근 MBC <나는 가수다Ⅱ>
최연소 참가자로 화제를 모았는데요,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가수들을 위한, 제대로 갖춰진 무대가 많지는 않잖아요. 그게 참 아쉬운데 ‘나가수’는 음향, 밴드 등 최고의 환경이 갖춰져 있어요. 그래서 몹시 긴장은 되지만 가수라면 느껴야 할 올바른 긴장감이란 생각이 들고,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는 생각에 하게 됐어요. 특히 ‘나가수’ 방청객들은 6개월에서 1년 이상을 기다렸다가 오신 분들이라 다른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감동과 절실함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가수로서 욕심이 나는 무대이고, 한편으론 관객들한테 잘 돌려드렸을까 걱정도 돼요. 그러다가 합이 딱 떨어질 때 느끼는 쾌감이 있는데, 그때가 ‘먼 훗날에’란 노래를 다 부르고 난 뒤였어요. 연인으로 치면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했는데, 상대가 받아줬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게 참 좋았던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기 위해
일본까지 가셨는데,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요?
뭘 모르니까 했던 거 같아요. 사실 가수의 꿈을 꾼 건 H.O.T 오빠들을 너무 좋아해서였어요. 가수가 되면 오빠들을 직접 볼 수 있지 않을까.(웃음) 또 마침 보아 선배가 만 13살의 나이로 데뷔를 한 거예요.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죠. 부모님 몰래 오디션도 여러 번 봤고 번번이 떨어졌어요. 그땐 빨리 가수가 돼야 한다는 생각만 있어서 무서운 게 없었던 거 같아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운이 좋았죠.
마침내 일본에서 먼저 가수 제안이 왔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그녀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 학교 친구들도 못내 그리웠지만, 가수의 꿈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선택한 길이었다.
이후 그녀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피아노 연주를 겸비한 ‘피아노록’이란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일본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5살 때부터 치기 시작한 피아노 실력은 그녀의 가창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러다 2005년 애니메이션 <블리치>의 엔딩 테마곡으로 쓰인 ‘호우키보시(혜성)’란 노래가 오리콘 차트 20위권에 진입하면서,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를 사람들은 ‘오리콘의 혜성’이라 부르며 주목했다. 국내에선 인지도조차 없던 ‘초짜 가수’가 해낸 믿기 어려운 기록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와 피나게 갈고 닦은 가창력, 독학으로 공부한 일본어 실력 등 그녀의 엄청난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본에서 한창 활동 중이던 윤하는 2006년 <인간극장>이란 다큐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2007년 1집 앨범을 내고 한국에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에 나선다. ‘비밀번호 486’ ‘기다리다’ ‘내 남자 친구를 부탁해’ 등의 히트곡을 내며 많은 팬들의 사랑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갑작스레 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전 소속사를 상대로 불공정 수익 배분에 따른 전속 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무대가 아닌 법정에 서야 했기 때문이다. 1년 6개월이란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나왔기 때문일까. 다시 돌아온 무대는 이전과는 달랐다. 가수로서, 노래할 수 있는 이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기에, 모든 조건에도 감사하다는 그녀다.
가수가 무대 대신 법정에 서야 했는데,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나요?
사실 이성 간의 이별도 충격이 크잖아요. 근데 함께 일해 온 사람들과 이별을 그렇게 겪은 거니까 큰 쇼크인 건 사실이었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원망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과정들을 겪었지요. 서로가 다르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고요. 다행히도 잘 마무리됐고, 이젠 사람 귀한 줄도 알고요.(웃음) 지금은 예전부터 오랫동안 같이하면서 마음이 잘 맞았던 분들과 일하고 있는데, 제가 가장 힘들 때 넌 다시 할 수 있어, 하고 응원해준 분들이에요. 그런 말들이 큰 힘이 됐고,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어려움을 겪으며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이 있다면요?
완전 긍정적인 예스(Yes)걸이 됐다는 거예요. 그전까지는 일하면서도 내가 피해 본다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배제했거든요.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에 당돌한 모습도 많이 보이고 내가 잘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굳이 하지 않겠다, 그게 프로다, 생각했는데, 가치관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무대에서건 할 수 있는 사람이 돼볼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음향 시설이 낙후된 곳이든 관객이 몇 명이 있든 가리지 말고 한번 해보자, 그렇게 된 거죠. 그동안 많이 깨지고 부서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아요.
훨씬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요?
맞아요. 사실 그전까진 남의 시선에 의존을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이런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계속 이렇게 있어야 돼,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제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뭔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개척자 느낌이었잖아요. 일종의 승부 근성으로 음악을 해서 그런지 ‘전부 다 이겨야지’란 생각이 컸어요. 그러다 보니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근데 이젠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남한테 의지할 수 있는 건 의지하게 됐어요. 내 생각이 전부 정답이 아니란 걸 알게 됐으니까요. 내가 아는 나보다 남들이 아는 내가 훨씬 정확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거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많이 생긴 거 같아요.
시련은 그녀를 성숙하게 했다. 그녀는 무대를 떠나야 했을 당시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누군가의 전화 한 통도 받기 힘들었던 시절, 그녀는 또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된다. 지난해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녀 스스로 “별밤DJ는 천운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라디오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통의 장이 되어주었다.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DJ도
윤하씨에겐 큰 부분이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데 저는 그래 본 적이 없는 거예요. 가령 ‘남자 친구가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란 사연이 오면, 그럼 제 생각은 ‘그냥 헤어져요. 왜 만나?’인데, 그건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거잖아요. 그러다 3개월쯤 지나니까 귀가 열리면서, 자기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굳이 제게 사연을 보낸 이유는 내가 뭔가 줄 수 있기 때문 아닌가, 하고 별밤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연을 하나씩 읽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혼자 안타까워했다가 좋아도 했다가 그런 감정들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라디오를 통해서 참 받은 게 많아요. 일단 저란 사람도 누군가의 얘기를 잘 들어줄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고, 남한테 관심이 생긴 것도 처음이고요. 지금은 제일 잘한 일인 거 같아요.
주변을 이해하고
살펴볼 수 있게 된 거네요.
라디오 DJ를 하면서 사람들을 지켜보게 됐어요. 러시아워에 시달리고 상사에게 혼나고, 다들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청취자 사연 중엔 제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거운 것도 있었고요. 그전까지는 세상에서 제가 제일 힘든 줄 알았거든요. 피해 의식에다 대인 기피 증상도 있어서 힘들면 스스로를 가두곤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예전의 제 모습을 생각하면 ‘독불장군’이었구나 싶어요. 그렇게 계속 살아갔을 걸 생각하면 무서울 정도죠. 라디오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잘 안 듣고 살아왔구나’ 반성이 많이 됐어요. 이제 좀 사람이 돼가는 거 같아요.(웃음)
윤하씨가 생각하는 좋은 가수란
어떤 가수인가요?
좋은 가수가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속일 수는 없거든요. 그 시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느냐는 제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는 거지요. 근데 정말 무서운 것은 관객분들이 다 느끼신다는 거예요. 언제나 무대에 오를 때 경건한 마음으로 올라가고, 뭔가 재미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 저분들이 좋아하시겠지?’ 혹은 ‘나를 보면서 조금 힘을 얻으시겠지?’라는 생각으로. 늘 내가 인간다움을 잃고 있진 않은지 점검하면서 무대에 오르고자 합니다.
문득 그녀의 초창기 데뷔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절 검정 재킷과 바지를 입고 록 음악을 하는 윤하는 마치 전사 같았다. 하지만 한때의 터널을 지나 한줄기 빛과 마주하는 사이 그녀는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나의 노래가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상처를 지울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녀.
“DJ를 하면서 마지막 멘트는 항상 이렇게 해요. ‘내일도 곁에 있겠습니다’라고. 생각이 나실 때 찾아주시면 항상 그 자리에 있겠다는 마음으로….”
노래를 참 잘했던 한 어린 소녀가 부단한 노력 끝에 정말 가수가 되었다. 가수가 된 소녀는 이제 언제나 관객 곁에 있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우리 시대는 또 한 명의 참 좋은 가수를 두게 되었다. 인간적으로도 가수로도 한층 성장한 그녀의 음악이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