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의리 있는 사람일까?

‘봄 나드으리~’ ‘아메으리카노~’ ‘대으리운전~’ 의리 시리즈가 전 국민적인 유행입니다. 데뷔 이래 초지일관 의리를 부르짖었던 김보성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고, 한때는 입 밖에 내기에 어색했던 ‘의리’는 이제 모든 단어에 마구 붙이고 싶을 만큼 친근해졌습니다. 왜 우리는 새삼스레 의리에 열광하는 걸까요? 단순히 김보성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당연한 정의가 쉽게 깨져버리는 사회에 대한 반작용, 불신의 사회를 거부하는 대중 심리의 반영이 아닐까요. 우리가 갈망하는 진정한 의리와 신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 편집자 주


당신, 왜 나랑 살아? 의리 때문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여러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오랜 기간 신의를 지키는 것에 대한 장점을 밝혔다.(A Healthy Dose of Loyalty. 2011. 6. 21일자)

연인에 대한 의리 애정 관계에서 장기간 신의를 지키는 것이 인생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RAND 고령화연구센터가 22년 동안 4천 명의 남성을 조사한 결과, 50대~70대 기혼 남성은 미혼이나 이혼 혹은 사별한 동년배에 비해 수명이 현저하게 길었다. 130명의 신혼부부를 조사한 결과 부부 싸움의 대부분이 ‘의리 없음’에서 비롯됐다. 상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신뢰가 돈독한 부부는 자신이 아닌 배우자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직장에 대한 의리 의리를 지키는 것은 경력에도 도움이 된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은 금전적인 보상뿐 아니라 생산성 및 창의성 향상을 경험한다고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연구는 밝혔다. 이직이 빈번한 실리콘밸리의 IT기업 직원 5만 명의 연봉을 조사한 결과, 한 직장에서 최소 5년 머무른 직원의 평균 연봉 상승률은 1년에 8%인 반면, 이직을 자주한 경우는 5% 정도였다. 또 한 회사에 오래 머무르는 직원은 그 회사에 온 지 얼마 안 된 직원에 비해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보인다. 미식축구 선수 역시 팀을 옮긴 직후 1년 동안은 성적이 향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5년 이상 머무른 선수들이 더 뛰어난 성적을 보인다고 한다.
좋아하는 팀에 대한 의리 한 팀을 계속 응원함으로써 팬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간 400명 이상의 스포츠 팬을 조사한 결과, 이사를 가더라도 고향 팀을 응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경우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데 따른 불안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익을 놓고 의리를 생각하고, 위급한 시기에 목숨을 내놓고, 오랜 약속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지킨다면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공자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이 반드시 모두 성실하지 못하더라도 자기만은 홀로 성실하기 때문이며,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사람이 반드시 모두 속이지 않더라도 자기가 먼저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이다. ● 채근담

열매 맺지 않는 과일나무는 심을 필요가 없고, 의리 없는 벗은 사귈 필요가 없다.
● 명심보감

의리는 용기에 의해 행해지고, 용기는 의리에 의해 키워진다. ● 요시다 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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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사나이 김보성 의리 열풍

김보성이 1989년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시작은 비락식혜 CF였다. 여기서 그는 느닷없이 쌀가마니를 후려치며 ‘우리 몸에 대한 의리!’를 외치더니 모든 단어에 ‘으리’를 집어넣기 시작한다. ‘전통의 맛이 담긴 항아으리!’ ‘신토부으리!’ ‘이로써 나는 팔도와의 의리를 지켰다. 광고주는 갑, 나는 으리니까! 으하하하!’라며 70년대 액션 영화 주인공같이 포효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네티즌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사람들은 김보성과의 ‘으리’를 지켜야 한다며 식혜를 사먹기 시작했고 으리를 집어넣어 패러디 만들기 열풍이 이어졌다.
김보성이 의리를 외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부터 초지일관 의리를 외쳐온 ‘싸나이’였는데 왜 2014년에 갑자기 사람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걸까?
투박하게 의리만을 외치는 모습이 처음 볼 땐 너무나 이상하고, 촌스럽게 느껴졌지만 무려 10년 이상 의리를 외치자, 결국 사람들은 그 캐릭터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정까지 들어 그에 대한 의리 감정까지 생긴 것이다. 또한 사회에 대한 불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이 극에 달했다는 것도 의리 열풍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김보성에 대해 단순한 호감을 넘어서서 거의 추앙하는 분위기까지 나타나는 것은 그가 초지일관 외친 의리라는 가치가 현실에서 극히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선장은 승객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도망쳤다. 국가 시스템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우왕좌왕했다. 이럴 때 의리는 ‘나는 당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다’ ‘나는 당신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끝까지 내 손을 놓지 않겠다는 우직한 메시지에 사람들은 무의식적 안정감을 느꼈다. 자극적인 유희와 위안을 추구하는 불안 불신 고독의 각박한 시대가, 십 년 이상 의리를 외친 우직하며 우스꽝스러운 상남자에게 반응해 나타난 ‘으리 김보성’ 열풍. 김보성 자체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지 못할 경우에 곧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있겠지만, 상남자 김보성 캐릭터에 열광했던 대중 심리는 그대로 남아 또 다른 ‘으리’의 대상을 찾을 것이다. ● 하재근 문화칼럼니스트


의리란 나를 옳게 다스리는 것

난 ‘의리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의리 있는 사람도 좋아한다. 의리라고 하면 보통 남자들 사이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의리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생각한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나는 “의리 있다”는 소리를 좀 들은 편이다. 지난 추억을 되짚어볼 때 가장 대표되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1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마트에서 술을 사고(철없던 시절ㅎㅎ) 대학생쯤 보이는 분께 대신 계산을 부탁했다. 그분은 선뜻 허락해주었다. 근데 술을 건네받는 장면을 그곳 직원한테 딱 걸리고 말았다. 친구 두 명은 줄행랑을 쳤고 그분은 같이 왔던 친구들의 이름을 물었지만 끝까지 불지 않았다.ㅎㅎ 이후 나는 의리 있는 친구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2 고등학교 때 친구 둘이 싸웠다. 지나가던 3학년 언니가 선생님께 일렀다. 선생님은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 모두를 불러다 반성문과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하셨다. 싸운 친구 둘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세 명이 반성문을 쓰게 되었는데 친구 둘은 자세한 내막을 써갔지만 나는 백지로 제출했다.
철없는 시절의 에피소드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삼 의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언가 거창한 게 아니라 나를 믿어주고 뽑아준 회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 먼저 안부를 묻는 것, 연인 사이에도 한눈팔지 않는 것….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지켜나가고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의리를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의리(義理), 옳게 다스리는 것, 날 다스려서 옳은 사람을 만드는 것. 의리! 하면 김샛별! 하고 떠오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김샛별 28세.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나에 대한 최고의 의리는?

우리 세대는 어릴 적부터 ‘반공반첩’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골목 놀이를 할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 또한 학창 시절부터 의리의 사나이, 정의의 사도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 중에 하나다.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구해주고, 불량 학생 눈에 찍힌 약한 친구 대신에 내가 주먹질을 당하기도 했다. 운동선수를 했던 때라 몸을 굉장히 사렸는데도 그런 불같은 의리는 어디서 나왔는지. ROTC 시절에는 ‘눈빛’ 때문에 술집에서 패싸움이 붙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도 나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은 절대 때리지 않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다 하는 강직성, 약자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돌직구를 날렸다.
그러다 몇 년 전, 마음수련을 하며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열심히, 정의롭게’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가만히 보니 그 옛날의 가난하고 외로웠던 삶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웃들에게 온정을 베풀지 못했던 가난한 형편, 또 내가 태어났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결국 나도 남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고 이름을 얻고 싶다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거였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의리’는 교육이라는 틀 속에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쌓아온 의리와 비겁함에 대한 개인의 기준을 내려놓고 보니, 진정한 의리란 변하지 않는 ‘참’이고 그것은 곧 ‘무한한 세상 자체’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변하지 않는 참마음이 되는 것이 나에 대한 의리이자 세상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마음이라면 무슨 일을 하든 남을 위할 것이고, 그런 사람이라면 저절로 많은 이들의 신의를 얻을 것이다. ● 나윤길 52세. 부산서여자고등학교 교사


관우는 왜 신으로까지 추앙받았을까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유일하게 신앙의 대상이 된 인물이 바로 관우다.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사당이 세워지고 추앙받고 있다. 한 나라의 수장(首長)도 아닌 일개 무장인 관우가 오랜 세월 동안 존경을 받는 이유, 그것은 의리에서 찾을 수 있다. 관우는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웠으며, 평생을 함께했다.
관우의 마지막은 이랬다. 관우는 최악의 상태에 빠져 맥성이란 작은 성채에서 구원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진이었던 손권 군 편에서는 제갈근을 보내 그를 설득하려 했다. 손권과 사돈을 맺은 다음 협력해서 조조를 치고 한실을 부흥시키면 어떻겠냐고 유인하지만, 관우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나는 해현 출신의 이름 없는 무부(武夫)일 뿐으로 우리 주군이신 유비 형님께서 수족처럼 보살펴주는 은혜를 입었소. 어찌 의를 버리고 적국으로 갈 수 있으리오. 만일 이 성이 함락된다면 죽을 뿐이오. 옛말에도 있지 않소. ‘옥을 부술 수는 있어도 그 흰색을 바꿀 수 없고, 대나무를 태울 수 있어도 그 마디를 훼손할 수 없다’고 말이오. 비록 내 몸은 죽어도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으리니 그대는 여러 말 하지 말고 속히 여길 떠나시오.” 결국 관우는 손권에게 참수를 당했다.
그렇게 관우는 외롭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민중들의 마음에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역대 제왕들은 관우의 신의와 충성심, 의리의 덕목을 널리 떨치게 하여 백성들의 귀감을 삼으려 했고, 이러한 작업은 민중들의 관우 숭배와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
어떠한 유혹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의리,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용기, 목숨을 걸고라도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 관우 같은 사람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기만 해도 든든할 것 같다.
● 참조 도서 <관우의 의리론>(나채훈 | 보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