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연구소 소장 이남규씨

소아마비라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 – Madison)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 대기업 제약 회사에서 일해 온 이남규(53) 소장. 인정받는 커리어에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24시간 스트레스로 가득 찼다. 신약 연구, 사람들과의 부딪침, 정치 경제 사회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 세상을 탓하기 바빴던 것. 하지만 마음을 버리면서 걱정도, 원수도, 허무함도 날려버렸다고 한다. 색깔도 냄새도 없지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정화하는 ‘물’처럼 비로소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는 이남규 소장, 그의 마음 빼기 이야기.

정리 문진정 & 사진 김혜진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저의 치료를 위해 전남 나주의 시골집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셨지요. 다행히 증상이 아주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리는 조금 불편했지만 생활에는 별문제가 없었고 공부도 곧잘 했기에 늘 상장을 타오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기 전까지는 책상에서 몇 시간이고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지요.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8년간의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의 대기업 제약 회사에 순조롭게 입사했습니다.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를 했다”는 동료들의 칭찬 앞에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직장과, 결혼 생활, 화려한 커리어를 가지고도 저의 머릿속은 언제나 스트레스로 가득 찼습니다. 신약 연구를 위해서 밤을 새고, 논문을 파헤치고, 앉으나 서나 24시간 골똘히 생각해야 하는 연구직 생활. 게다가 직장 상사와는 사사건건 부딪쳤습니다. 명색이 박사인 저를 수족 부리듯 하는 태도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요.

인격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높았던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사사로운 욕심이 없어야 한다,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그 틀에 벗어나는 사람은 다 부족해 보였습니다. 회사를 옮기고 또 옮겨도 상사와의 갈등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 사회 전체가 심각한 걱정거리로 다가왔습니다. GNP는 높아졌는데 서민들은 더 어려워지고, 환경오염, 화석연료, 핵 발전, 유전자 조작, 높은 자살률 등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닌 겁니다. 정치, 경제, 사회, 하나같이 다 마음에 안 들고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머리가 터질 듯이 답답했습니다. 그런 불안과 걱정, 화가 가득 차 있으니 사람을 만나면 늘 부정적인 이야기뿐이고 운전 중에도 쉽게 흥분하며 욕설을 퍼붓곤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저러다 뇌 질환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할 정도였지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던 삶. 명색이 박사이지만 많이 아는 것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바뀌어야 했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힘든 마음을 달래보려고 방법을 찾던 중 마음수련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고 1주일의 휴가를 내어 마음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머리에 집어넣기만 했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버리는 걸 시작했습니다. 40년이 넘도록 보고 배운 알음알이가 어마어마하더군요.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박사 때 읽었던 수백 권의 책과 논문들, 보고 배운 모든 지식들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떠올랐습니다. 그 모든 것을 버리다 보니 내가 아닌 우주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거대한 우주에 비해 내 머릿속의 지식은 눈꼽만큼도 안 되더라고요. 세상이 불공평하다,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오직 나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편협한 기준들을 세상에 들이대면서 옳다 그르다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다니…. 내 마음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서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틈나는 대로 영농 수련도 열심히 했습니다. 영농 수련이란 수련생들이 먹을 채소와 과일을 함께 가꾸며 자연 속에서 마음을 버리는 수련입니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다 보니 군대도 가지 못했고, 몸 쓰는 일이라고는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제가, 휘청거리며 퇴비를 나르고 한 발로 삽을 밟고 모종을 심었습니다. 비록 몸짓은 서툴렀지만 이런 일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 제가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안 해봤으니 못 해’라는 두려움도 한계도 넘어서게 되었을 뿐 아니라 ‘몸 쓰는 일’을 볼품없이 여겼던 저의 관념도 무너졌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평생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던 머리가 푹 쉬게 되었다는 겁니다. 몸을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한 일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박사다, 연구다, 그게 최고인 줄 알았던 삶. 나를 내려놓고 보니 자연이 주는 지혜와 세상 이치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지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세상은 이미 만물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다 주고 있구나, 잡초도 작은 벌레도. 도무지 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도 깨달았습니다. 제 안에 가득 차 있던 화와 미움도 다 사라졌지요.

물처럼 바람처럼, 말없이 포용하는 우주의 마음을 닮아 모두가 ‘너 나 없이’ 사는 것. 그 이상적인 삶은 내 마음을 우주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에 있었고, 그 방법은 바로 ‘자기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우주마음이 되어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다니, 평생 머리만 쓰고 살았던 저로서는 정말 꿈만 같은 일입니다. 머릿속이 편안하니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도 더 잘 떠올랐습니다. 원수 같던 옛 직장 상사들과도 스스럼없이 저녁 한 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더 나아가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부소장과 많은 연구원들에게 감사의 마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이 저를 ‘맹물’ 같다고 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색깔도 냄새도 없는 맹물을 닮았다고요. 물이라는 게 정말 신비로운 것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 분자이면서도 가장 낮은 데로만 흘러가지 않습니까. 또 인간이 만든 모든 오염 물질을 포용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정화시켜주지요.

지금 어렵고 힘든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내 마음세상 속에서 나밖에 모르고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직 스트레스덩어리인 그 마음세상은 없애고, 낮은 곳으로 흐르고 끝없이 포용하는 물의 마음이 된다면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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