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가 된 만화

2013년 2월 처음으로 만화가 등록문화재로 선정되었다. 한국 최초의 만화 단행본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1946), 10판까지 재인쇄되었던 한국 최초의 만화책 베스트셀러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1958), 최장 기간 연재된 시사만화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이렇게 세 편이다. 등록문화재란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 가치가 큰 것을 지정하는 것으로, 이제는 만화가 문화재가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각 만화 주인공들의 입을 빌어 그들의 소감을 들어본다. 정리 최창원 & 자료 제공 한국만화박물관

저는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 단행본 <토끼와 원숭이>의 주인공 토끼예요. 제가 살던 시대는 일제 강점기 말기랍니다. 원래 저희 토끼들은 토끼나라(조선)에서 아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이웃 원숭이나라(일본)에서 무력을 앞세워 쳐들어왔어요. 원숭이들은 우리를 집에서 쫓아내고 재산을 빼앗고 하인처럼 부렸어요. “너희들은 이제 속마음과 겉모양이 다 원숭이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 귀를 자르고, 흰 털을 검게 물들이고, 엉덩이의 털을 밀어 원숭이처럼 붉은 칠을 하면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원숭이처럼 바꾸고자 했어요. 우리는 힘이 없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국 뚱쇠나라(중국)와 센이리나라(러시아, 미국 등 열강 세력)가 힘을 합쳐 물리쳤지요.

저를 그리신 분은 우리나라 현대 만화의 개척자인 김용환(1912~1998) 선생님이세요. 만화는 당시까지만 해도 신문이나 잡지에 삽화 정도로나 연재되던 보조적인 개념이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만화로만 이루어진 하나의 책을 만드신 거예요. 만화의 위상을 끌어올려 주신 거지요. 원래 이 만화의 원작은 아동 문학가 마해송(1905~1966) 선생님이 쓰신 거예요.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정치사를 저 같은 동물로 의인화하여 함축적으로 풍자한 작품을, 김용환 선생님이 만화로 표현한 거지요. 김용환 선생님은 코주부로도 유명하신데, <코주부 삼국지>라는 작품도 곧 등록문화재가 될 예정이라고 하니, 참 기분이 좋습니다.

<토끼와 원숭이> (김용환. 마해송 원작. 1946년.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간행)

등록문화재 제537호. 한국 최초의 만화책 단행본. 그동안 문헌상의 기록만 있던 것을 2010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경매를 통해 구매해 소장하고 있다.


나는 시사 문제에 날카로운 고바우 영감이라오. 50대의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정치인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소. 나의 단 한 올의 머리카락은 기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1955년 동아일보 연재 초기에는 가벼운 세태 풍자 정도였소. 그런데 가면 갈수록 분통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거요. 점차 강도 높은 정치, 세태 비판적 성격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소. 내가, 보기에는 이래 보여도 좀 날카로운 구석이 있소. 촌철살인의 시각으로 내가 느낀 사회상을 4컷 만화에 표현을 하면 나 같은 소시민들이 같이 열광을 했다오. 다만 정치인들은 뜨끔했는지 검열, 연재 중단, 경범죄 처벌, 취조 등을 받기도 했소만. 그런데 지금은 작품과 캐릭터 자체로도 그렇고, 현대사 연구를 위한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세상이니, 참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오.

자랑 좀 하자면 내가 인기를 끌면서 영화, 드라마, 광고로도 만들어졌다오. 나를 토대로 많은 연구도 이루어졌다고 들었소. 일본에 ‘고바우 작가론’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원생도 있었다고 하더이다. 나를 그린 이는 김성환(83) 화백이시오. 김용환 선생과 더불어 한국 현대 만화의 개척자로서 많은 후진들을 이끌어왔지요. 2001년부터는 자비로 고바우만화상을 제정, 매년 만화 문화 발전에 공헌한 만화가를 선정,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고 있으시니 참 고마운 분이지요.

<고바우 영감> (김성환. 1955-2000년까지 발행)

등록문화재 제538호. 최장 기간 연재된 시사 만화. 1950년부터 <사병만화>

등의 기관지에 수록.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 이후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을 거치며 모두 1만4,139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원화는 최고급

양지에 묵으로 그렸으며 철장(綴裝), 낱장, 병풍 등의 형태로 보관돼 있다.

저는 헤어진 엄마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금준이라 하옵니다. 조선 초기 성종대 15세기 중후반, 황해도 구월산 기슭 토막골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어머니와 헤어졌지요. 술주정뱅이였던 아버지께서 술값을 벌고자 노비로 팔아버렸던 겁니다. 어머니는 슬피 우시며 그해 국화꽃이 피면 다시 온다고 했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뒤늦게 후회하셨으나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저는 7살 때 엄마를 찾아 홀로 삼만리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숱하게 많은 일을 겪습니다. 그 세월 동안 글을 읽고 배워 과거 시험에 장원급제해 암행어사도 됩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탐관오리나 권력자의 부정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하고, 뭇 백성들에게는 선정을 베풉니다. 그리고 드디어 15년 만에, 여러 번 엇갈렸던 어머니와 국화꽃이 만발한 구월산에서 만나게 됩니다. “아~ 보고팠습니다. 어머님~ 흑흑~.”

저의 이야기를 쓰고 그리신 분은 전통 극화의 개척자인 김종래(1927~2001) 선생님입니다. 당시 한국전쟁 이후 가족과 헤어진 시대 아픔과 맞물려 저의 이야기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58년에 초판 상권이 발행된 후 10판까지 재인쇄되며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저는 일개 만화 속 주인공이오나, 현실 세상에서 사시는 모든 분들, 그 누구도 다시는 엄마 찾아 삼만리 길을 떠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옵고 바라옵나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

(김종래. 1958년. 고전 사극 만화)

등록문화재 제539호. 한국 최초의 만화책

베스트셀러. 원래 상권 220매와 하권

224매 등 모두 444매로 구성됐으나,

현재 하권 1매의 원화가 유실돼

모두 443매가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원화는 2010년 유족의 기증으로 한국만화영상

진흥원에서 소장,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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