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엔딩 노트>

버킷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를 일컫는 말이다. ‘주변의 의견은 모으되, 결정은 내가 한다.’ 가지런하게 써내려간 일본어 위로 영화의 타이틀이 떠오른다.<엔딩 노트9>.

스나다 도모아키는 정년 퇴임과 동시에 건강 검진에서 말기 암 판정을 받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스나다씨는 담담한 마음으로 꼼꼼하게 엔딩 노트를 준비한다. 그리고 영화는 스나다씨의 일상과 생각을 근접한 위치에서 담아낸다.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믿어보기, 기꺼이 손주들의 머슴 노릇하기, 한 번도 찍어보지 않았던 야당에 표 한 번 주기 등. 스나다씨의 버킷리스트는 가벼운 듯 가볍지 않다. 삶을 살아오며 행하지 않았던, 혹은 행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완성해가며 스나다씨는 새로운 인생의 맛을 경험한다.

장례식장 사전 답사를 가고 초대장을 준비하며 꼼꼼하게 점검한다. “내가 호스트인 행사인데, 초청 명단 관리도 잘해야지”라고 말하는 행사는 사실 본인의 장례식이다. 아이러니함에 웃음이 날 만도 하지만 엔딩 노트가 완성되어 갈수록 관객 또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스나다씨는 ‘잘, 죽을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하다 보면 문득 ‘사람은 왜 죽을까?’라는 질문에 봉착한다. 그때, 스나다씨의 어린 손주가 답을 말해준다. 설핏 웃음이 나는 순진한 대답이지만 꽤나 명쾌한 대답이다.

이제 마지막을 맞이하며 스나다씨의 상태는 급격하게 악화된다. 부인과의 대화를 담은 장면이 스크린에 비춰질 땐 극장이 엄숙해지기까지 한다.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지만, 그 순간에 버킷 한편에 담아두었던 작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이 카메라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실제 일본에서는 엔딩 노트가 판매되고 있다. 법적 효력을 지니는 문서는 아니지만 사후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병이 들었을 때 조치를 바라는지 여부, 장의 절차와 상속, 남겨진 사람들에게 남기는 메시지, 통장의 자동이체 목록 등.

‘죽어감’을 생각하며 작성하는 엔딩 노트는 삶을 돌아보는 계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내가 없음으로 인해 생길 일들에 대한 민폐를 줄이는 일, 이 얼마나 배려 있는 삶인가! 아니, 죽음인가! <엔딩 노트>에는 두 가지 매력이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스나다씨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레이션이 흐르는데, 이는 사실 영화의 감독이자 스나다씨의 막내딸인 마미 스나다의 목소리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아닌 젊은 여성의 목소리로 아빠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레이션. 어색할 법도 하지만 죽음을 공포의 시각이 아닌 받아들임의 시각에서 이야기하기에 영화의 맛이 달라진다. 어느새 관객도 스나다씨의 가족과 함께 스나다씨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매력은 스나다씨 본인의 유쾌함이다. 분명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자락을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나다씨는 유머러스한 모습을 영화 내내 유지한다. 소탈하게 웃는 스나다씨의 모습에서 관객이 오히려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살아감’과 ‘죽어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빠의 마지막까지 담담하게 담아갔던 감독조차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던 하나레 구미의 ‘천국님’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마지막으로 할아버진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셨지
마음의 보물은 돌아보면 항상 그곳에 있다고
있어요, 있어요. 거기에 있어요. 항상 거기에 있어요

항상 거기에 있었던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과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엔딩 노트를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

조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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