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로를 잘 하는 사람일까?

누구나 상실을 경험합니다. 14살까지 평균 5가지, 어른의 경우 10~15가지의 상실을 경험한다는군요. 아무리 단련이 되어도 누군가를 잃은 고통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기란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도 어렵기만 합니다. 그저 괜찮은 척 슬픔을 억누르거나, 혼자 극복해보려고 애를 쓸 뿐입니다. 혹은 ‘슬퍼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야’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강해져야지’ 등의 말을 건네 보지만 과연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위로를 잘하는 사람일까요? 우리가 겪는 슬픔, 그리고 치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주

2006년, 7살 나이에 아빠를 잃은 영국 소녀 밀리(Milly)는 9살에 슬픔을 위로하는 책을 썼다. 책의 제목은 <아빠가 세상을 떠납니다(My Daddy Is Dying)>. 밀리의 아빠 사이먼 벨은 36세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밀리는 4개월간 아빠의 고통스런 투병 생활을 지켜보며 큰 상실과 슬픔을 느꼈다. 그래서 비슷한 아픔을 겪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슬픔을 견디는 방법을 책에 담은 것이다. 책에는 상실감을 극복하는 놀이, 상상하는 법,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그림과 함께 표현했다.

밀리의 Tips
① 물감 마구 칠하기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물감을 마구 칠해서 종이 위에 쓰여 있는 아빠 이름을 감추곤 한다.
② 행복한 케이크에 대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고 그것을 그린다. (‘행복한 생각’이라는 재료를 추천한다!)
③ 하루의 기분이 슬펐는지 행복했는지 아니면 평범했는지 각 감정의 색을 정하고 칠해서 감정 차트를 만든다.
④ 아빠가 돌아가실 때 나는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소녀가 꽃 위를 날아가는 그림을 생각하고 이것이 나의 걱정들을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다.
⑤ 내 인생의 주기, 그리고 식물과 나무들이 어떻게 살고 죽는지를 그림을 그리며 이해했다.


“자신과 대화하십시오! 당신이 당신과 대화하기 시작하고, 그게 완성되면, 그 누구도 당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거나 슬퍼하거나 고독한 겁니다. 당신과 친해지십시오!”
– 가수 김태원 KBS <남자의 자격> 중에서


진정으로 위로하는 법

“내가 6살에 뇌종양에 걸려서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 내가 바란 것은 위로였어. 그런데 사람들은 위로는커녕 6살 아이한테 용기를 강요했어. 잔인하게. 괜찮아 영이야. 수술은 안 무서울 거야. 괜찮아 넌 이길 수 있어. 사람들이 그 말밖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냐고? 안 괜찮아도 돼. 영이야 안 괜찮아해도 돼. 무서워해도 돼, 울어도 돼.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난 하루 이틀 울다가 괜찮아졌을 거야. 근데 그때 못 울어서 그런가 지금도 난 6살 그때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 _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노희경 작. 2013) 중에서.

오영(송혜교 분)이 가짜 오빠 오수(조인성 분)에게 보통 많은 사람들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내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배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위로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을 6살 어린 영이에게 그렇게 이성적인 말을 해준 사람들처럼, 실직, 질병, 파산, 심지어 아이의 죽음 등으로 지독한 상실감을 겪어 힘든 사람들에게 그저 “슬퍼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이외에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른다.

그런 이성적인 말이 아니라 “얼마나 무섭니, 얼마나 힘드니,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말. 피하지 말고 그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큰소리로 울어도 괜찮다고, 어떤 감정도 다 표현하라고 말해주고 무엇이든 받아주자. 때로 너무 지쳐 있어 무슨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이면, 말을 걸기보다 가만히 옆에 있어주거나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진정으로 위로를 받은 사람은 누군가 이성적으로 앞으로 이떻게 해야 해, 하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감정의 앙금 없이, 새롭게 일어설 힘을 받게 된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① 위로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심리 상태에 큰 영향을 줍니다. 평소 신뢰가 돈독한 관계라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됩니다.
② 어설픈 말과 행동보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공감하고 조용히 곁에서 함께 있어주세요. 슬퍼할 때 손을 잡아주거나 안아주면서 그 슬픔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③ 사고 관련 뉴스와 영상에 장기간 노출되면 직접 사고를 겪지 않았더라도 대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 있으므로 주의합니다.
④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콤플렉스, 상처, 아픔, 집착 등 부정적 감정들을 빼내는 훈련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속에 어두운 요소가 줄어들수록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힘도 커지게 됩니다.
⑤ 평소에 즐거운 마음을 유지시킬 수 있는 취미 활동과 산책, 등산을 권장합니다. 또한 기쁨은 배로 나누고 슬플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를 잘 유지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⑥ 자신의 입장에서 경솔하게 위로를 하거나, 꿋꿋이 견뎌내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기대를 준다면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슬픔을 억누르게 만듦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 김재환, 목포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글쓰기나 일기 쓰기 등 문학을 통해 고통스러운 감정을 해소한 후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대화하는 등 사회성이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글쓰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검열이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에서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막지 않도록 문법, 글씨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글은 슬픈 감정을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저널 치료의 대가 캐슬린 애덤스는 상실의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보내지 않는 편지’ 쓰기를 제안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함으로써 고통스런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고, 잃은 사람과의 미완성이었던 관계 부분을 완성할 수 있으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보다 깊고 명확한 인식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 참조 도서 <내 마음을 만지다>(이봉희 | 생각속의집)

‘보내지 않는 편지’를
써보세요


9년 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겨울 방학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일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리고 갑작스런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전화기 소리가 멀리 아득해지고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남편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면 난 생각이 많고 부정적이고 남 탓을 잘하는 성격이었다. 남편의 사고가 모두 다 나의 잘못으로 주어진 벌인 것만 같았다. 매일 자책하며 슬픔에 빠져 울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다가, 부엌에서 밥을 하다가, 자다가 일어나서, 밤이고 낮이고 눈물만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화장실에서 울고 나오는 내 앞에 10살 아들이 다가서며 말했다.
“엄마, 엄마가 그럴 때마다 동생이랑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제야 아이들도 아빠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두렵고 낯설고 부끄러워 죄인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읽고 또 읽고 종교에도 의지해 봤지만 두렵고 우울함은 견딜 수 없었다. 혼자가 되면 더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마음수련 교원 직무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련을 하며 살아온 내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악몽 같은 교통사고, 남편에게 잘못했던 일, 나를 괴롭혔던 기억들을 계속 버려나갔다.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지워지면서 마음이 안정이 되고 혼자가 되었다는 두려움과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내 안의 고통스런 감정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곁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남편도 임형주의 노래처럼 ‘천 개의 바람 되어’, 세상이 되어 언제나 함께 있고 변함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마음속 인생 드라마 한 편씩 만들어 가지고 있다. 나도 내 마음속의 내가 만든 드라마 속에서 살며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길 줄 안다. 세상에 감사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에 감사한다.
– 빈경남 50세. 필리핀 클락 거주


누구나 힘들고 지칠 때면 자신만의 조용한 아지트를 찾게 마련이다. 나에게 도자기 작업은 그런 나만의 고백이고 휴식이고 즐거움이다.
내가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십 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다. 집 주변에 공방이 있었는데,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하면서도 선뜻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조건과 때가 있듯이 나에게 도자기가 다가오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로부터 3년 후쯤 알고 지냈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는 일이 일어났다. 좋게만 지내왔던 모든 것들이 허상이고 위선이었다 생각하니 나를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혼돈스러웠다. 누구에게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위로받고 싶었지만 막막하고 그저 눈물뿐이었다.
그때 간절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도자기 작업이었다. 저것만 하면 비로소 숨구멍이 트일 것 같았다. 그렇게 인연이 된 도자기는 벌써 15년 동안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아지트이자 비밀스런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가만히 혼자서 흙을 만지다 보면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들도 그저 연속극의 이야기같이 가벼워진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한바탕 마음속의 눈물을 쏟아내고 싶을 때, 항아리를 만들어 마음을 담아둔다. 힘들고 지칠 때면 울퉁불퉁 모난 구석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마음이 평화로울 때는 도자기의 형태나 선도 아주 부드럽고 평화롭다. 그렇게 만든 도자기에는 전부 나의 마음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도자기들을 통해 나를 챙겨보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좋다. 어쩌면 이런 게 흔히 말하는 힐링이고 치유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도자기가 그러했듯이, 삶이 절박해질 때면 무엇에든 집중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요리가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노래가 되었든…. 그것이 곧 치유를 해줄 터이니.
– 박환순 47세. 경북 상주시 모동면

저는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힘들어서는 안 망한대요. 위로를 못 받으면 망한대요. 연인도,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랍니다. 살다가 어떻게 안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위로를 받은 연인, 친구들은 오래가고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보다 7년 오래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자는 술이라는 매개체가 없이도 대화가 가능하고 위로가 가능하대요. 근데 남자들은 술 없이는 어렵죠.
여러분, 한국 남자들 불쌍하게 생각해 주세요. 한국남자가 제일 잘하는 거는 일이래요. 제일 힘들어하는 건 다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위로하는 것이래요. 이걸 왜 그렇게 힘들어하나 봤더니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하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칭찬하거나 위로하는 걸 싫어하거나 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해하고 그러다 보니까 반복이 된답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분들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지만 “힘들지?” 이야기 해보고, 여자분들은 저 남자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언어를 배우지 못했구나,하고 이해해준다면 어떨까요.
–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김창옥 서울여대 교수의 강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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