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문자가 편할까?

한때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30초면 끝날 이야기를 문자로 끊임없이 주고받는 ‘엄지족’이 화제가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국민 스마트폰 시대를 맞이한 지금,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전 세대가 ‘엄지족’이 되었지요. 하루 60억 개가 넘는 ‘카톡’ 메시지, 안부 인사, 업무 약속, 이별 통보도 문자로 하곤 합니다. 나는 왜 문자가 편한 걸까요? 언젠가부터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심호흡을 하게 되는 우리들, 편안하고 기분 좋은 문자 소통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주


LG경제연구원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39%의 응답자가 전화를 거는 것보다 문자나 SNS로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10대와 20대 젊은 층은 그 비율이 42%로 나타났다. 한편 2010년 인크루트에서 회원 4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 음성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이유로는 간단해서(62.0%), 심리적으로 편안해서(49.3%), 효율적이라서(40.1%)라고 복수 응답했다. ‘예전에 통화로 하던 것을 이제는 문자로 하는 일’에는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 교환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를 활용하면서 57.2%의 응답자가 전화 통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실제로 휴대 전화 가입자 한 사람당 음성 통화 시간은 2008년 월 181분에서 2011년 172분으로 줄었다.


문자 메시지의
확산과 사회적 의미

사람들이 문자를 더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문자 메시지는 음성 통화와 달리 시간 차를 두고 반응할 수 있기에 운전 중, 옆 사람과 대화 중, 회의 중인 경우에 응답을 적절한 시점으로 지연시킬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더군다나 하루 24시간을 미세하게 분할해서 사용하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음성 통화는 상대의 일상을 방해하는 무례한 통신 수단’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더 적절한 시점에 답장을 할 수 있는 문자 소통은 친구와 가족, 먼 친척들과 ‘거절당하는’ 부담감 없이 연락을 유지할 수 있다.
한편 ‘카카오톡’ ‘라인’ 등 무료 대화 어플리케이션이 있어 통신비를 절약할 수 있으며 1:1 대화뿐 아니라 단체 채팅이 가능해지면서 매우 소심하거나 수줍어하는 사람도 ‘실시간 응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문자 메시지는 제3자가 모르게 주고받을 수 있어 사생활을 확보할 수 있고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약속을 잡거나 정보를 제공할 때에 효율적이다.
또한 이모티콘 등을 통해 대화를 이미지화할 수 있다는 점, 기존 글쓰기 형식을 이탈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그래서 세대별, 공동체별로 고유한 언어 형식과 문체를 창조하는 재미도 느끼게 된다.
참조 도서 <호모 모빌리쿠스>(김성도 | 삼성경제연구소)


키보드 소통의 혁명 이모티콘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로, 스마일리(smiley)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모티콘은 1982년 9월,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 스콧 E. 팰먼(Scott E. Fahlman) 교수가 발명했다.
80년대 초반 당시 컴퓨터 통신은 일부 컴퓨터 전문가, 특히 남자들이 많이 사용했는데, 학교 내 게시판에는 매번 딱딱한 글이 올라와 이내 감정싸움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팰먼 교수는 가장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3개의 부호로 이모티콘을 만들어, 함께 웃자고 쓴 글의 제목 끝에는 :-) 를 붙이고, 진지하게 쓴 글은 :-( 를 붙이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이모티콘은 큰 호응을 얻으며 인터넷 보급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나라별로 수천 가지 이모티콘을 자생적으로 발전시켰다.
게시판에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이 셰익스피어처럼 뛰어난 문장력을 가지지 않았기에, 이모티콘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지라도 충분히 사용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 팰먼 교수. 그 덕분에 우리는 ‘말로는 차마 표현하지 못할’ 감정들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하고 소통하게 되었다.
32년이 지난 지금, 이 혁신적인 발명품은 인간의 뇌 반응까지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호주 플린더스 대학 오웬 처치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이모티콘을 사람 표정을 본 것처럼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모티콘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없었던 뇌 신경 반응을 ‘학습’된 언어인 이모티콘을 통해 창조한 것이다.


문자는 문자일 뿐
오해하지 말자!

문자 메시지가 ‘붐’이었을 때 청소년기를 보낸 저는 문자할 때 이모티콘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ㅋㅋㅋ’이나 ‘~ㅎㅎ’도 꼭 붙이는 편이에요. 그런데 몇 년 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오빠와 ‘카톡’을 하는데 시종일관 단답형, 초성으로만 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분이 나쁜가?’ ‘나랑 연락하기 귀찮은 건가?’ 하고 오해를 했어요. 만나 보면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문자는 꼭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얘기했더니 그 오빠는 당황하며 습관이라 고치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몇 년의 시간 동안 그 오빠는 꾸준히~ 단답형 문자를 고수했고, 저는 최근에서야 원래 단답형 인간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살 차이 안 나지만 문자에도 세대 차, 성향 차이가 확실히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또 한 가지,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제가 아무리 단답형 문자로 ‘나 기분 엄청 나쁨’을 표시해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아예 없으니까요.
그 이후 문자는 문자일 뿐 오해하지 말자! 하면서 오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모든 상황을 내 기준대로 쉽게 판단하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거~ㅎㅎ 소소하지만 내 생각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다운
24세. 서울시 강북구 미아동


문자나 이메일(이하 문자)의 등장은 우리에게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오해와 미스커뮤니케이션의 기회도 함께 제공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일들이 문자를 사용했을 때 오해를 유발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표정, 몸짓, 목소리의 크기와 톤, 말투, 시선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 단서를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이 어떤 하나의 단서를 놓쳐도 다른 단서를 이용해서 메시지 전달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정한 의미를 해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문제는 문자의 경우에는, 면 대 면 대화나 전화 통화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다양한 비언어적 단서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일한 내용이라도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훨씬 커지게 되는 것이다.
문자 작성자는 문자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문자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에게만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라도 비언어적인 단서가 배제되면 진정한 의미 파악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문자는 친한 사이에도 쉽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나아가 인간관계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오해의 가능성이 있는 주제라면 문자나 이메일을 명확하게 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수화기를 드는 것이 좋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 ‘리쌍’과 ‘장기하와 얼굴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우리 지금 만나’가 귓가를 때린다.
우리 지금 만나(만나) / 아 당장 만나(당장 만나) / 우리 지금 만나(만나) / 아 당장 만나(당장 만나) / 휴대 전화 너머로 짓고 있을 너의 표정을 나는 몰라(몰라 몰라 나는 절대로 몰라)
전우영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대학 시절,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와 문자를 주고받았습니다. 비슷한 또래다 보니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말을 놓기도 했어요. 그래서 문자도 아무 생각 없이 반말로 보냈죠. 그런데 막상 문자로 찍히고 나니 선배는 버릇없는 후배라며 엄청 화를 냈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해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죠.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싸가지 없는 후배로 찍히고 말았습니다. 2년쯤 후 그 사건이 자연스럽게 잊히면서 선배도 화가 누그러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후로 중요한 이야기나 오해 살 만한 이야기는 꼭 얼굴을 보고 합니다. 문자로는 전달이 안 되는 게 너무 많더군요. 감정, 억양, 상대방의 상황 같은 거요. 카톡은 특히 상대가 메시지를 수신했는지 여부를 알게 되니까 오해가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카톡 왜 안 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삐졌어?’ 등등 온갖 타박과 핀잔이 쏟아집니다. 얼마나 바쁜지, 제 상황이 전달이 안 되는 거죠. 문자 소통이 편리한 점도 많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곽규성 31세. 경남 창원시 진해구


얼마 전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을 문자로 할 수가 있어?”
“왜 꼭 얼굴을 보며 말해야 해?”라는 나의 물음에 대화라는 건 말소리로만 하는 건 아니니까 더군다나 이별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순간에 표정, 손짓, 눈빛들을 함께 보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나의 남자 친구도 그랬다. 얼굴을 보지 않고 “헤어지자”고 하는 건 예의가 없는 거라고. 또한 표정과 눈빛을 알 수 없는 이야기는 진심을 알 수 없고 거짓을 말할 확률이 크다고 했다. 8년 전부터 누누이 해온 말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로 인한 다툼이 많았다. 아니, 지금도 많다. 나의 남자 친구는 글은 말보다 거짓일 확률이 높고, 정리하고 고치고 다듬어지기 때문에 진심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반대다. 나는 말이 불편하다. 머릿속에 있는, 내 마음속에 준비했던 이야기들이 입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어버버거리고 우물쭈물하다가 보니 상대 페이스에 말려 버리고,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해야 할 말은 못 하고 상황은 내 뜻과는 다르게 전개될 때가 많다. 내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얘기다. 반대로 글은, 어떠한 방해 요소 없이 내 마음과 생각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똑 부러지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이건 성격과 성향의 차이다. 말이 글보다 편한 사람이 있고, 글이 말보다 편한 사람이 있다.
대체적으로 외향적인 사람은 말이 편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글이 편하다. 물론 항상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난 글이 편한 사람이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데, 모든 걸 말로 할 수도 없고 모든 걸 글로 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 편한 사람들이 글이 편한 사람들에게 예의 없다는 비난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예의가 없다고 말한다면, 글이 편한 사람들이 불편한 말을 우물쭈물하다 결국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 게 올바른 걸까. 선호하는 방식이 다른 건 아닐까. 글로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예의 없는 사람으로 단정 짓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나의 생각에 8년 만에 남자 친구가 동의했다. 그리고 그는 내 남편이 되었다.
박경미 31세.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말이 편한 사람이 있듯이 문자가 편한 사람도 있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