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 그 상처를 씻어내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줘야 할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한다면 그 상처가 어떨까요. 그 고통의 세월을 보낸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겪어야 했던 부모의 구박과 구타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증과 강박증에 시달리게 했다고 합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 하지만 이제 다 벗어났다는 그녀가 담담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합니다. 혹여라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처럼 다 벗어나길 바라면서.


가정 폭력, 입에 담기도 참담한 단어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나?

당연하다. 이제 다 벗어났으니까. 한마디로 태어나면서부터 사랑 따위는 못 받았다. 맞고, 구박당하고, 미움 받으면서 컸다는 뜻이다. 그것도 나를 낳아준 부모로부터.

도대체 왜?

구구절절 말하자면 우리 집 가정사가 좀 막장 드라마다. 엄마가 18살에 나를 가졌다. 당연히 원치 않는 임신이었다. 양가에서 난리가 나고, 결국 아빠와 살림을 차렸는데, 아버지한테 다른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차마 아기와 여자를 버리지는 못했다.

그럼 어쨌든 가정을 꾸리신 건데….

그래서 동생들도 태어났다. 할머니가 아들을 원했는데, 둘째도 셋째도 딸이었다. 할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엄마가 셋째를 낳고 죽는다고 약을 먹었다. 그때 내가 여섯 살이었는데 엄마가 젖을 못 먹이니까 내가 갓난쟁이를 돌봐야 했다. 아버지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 엄마는 혼자 아이들 키우며 붕어빵 장사 등 부업을 했다. 그때 엄마 나이 겨우 20대 초반이었으니, 여자로서도 힘들었겠지. 그 원망이 다 나한테 왔다.

그 화를 자식에게 풀었단 말인가?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 너만 아니었으면’이었다.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다. 뱃속에 있는 나를 지우려고 배를 때리고 그랬다더라. 엄마가 나를 부를 땐 이유가 두 가지였다. 혼내기 위해서, 아니면 시키기 위해서. 11살 때 엄마가 횟집을 하면서 엄마의 레이더망에서 좀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장사를 도와야 했다.

어린 나이에 그걸 다 견뎠나, 나 같으면 가출했겠다.

그런 생각도 못 했다. 내가 핍박받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를 못 했던 것 같다. 그 환경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술 먹고 깽판은 쳤다. 15살 때 처음으로 술을 먹었다.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안 나는데, 다음 날 엄마가 엄청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뭔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시원했다. 그때부터 주사가 생겼다. 그 뒤로 1년에 한두 번씩은 술 먹고 깽판을 친 거 같다.

일본에서 직장 생활 했다고 들었다.

대학에서 일문학을 전공했다. 혼자 자취하면서, 연애도 하고 자유롭게 사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집만 생각하면 힘들었다. 그러다 일본 회사와 연이 닿아 일본에서 13년을 살았다. 나중에 마음수련을 하면서 보니, 역시나 엄마한테서 도망가고 싶었던 게 제일 컸다.


마음수련은 언제 시작했나?

2007년. 그 당시에 엄마가 가출을 했다. 여자다운 삶 한 번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 50대에 들어서면서 엄마도 더 이상 못 견딘 거다.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내가 아무리 재밌게 살아도 집은 늘 우울했다. 엄마를 찾고 한숨 돌리는데, 직장 동료가 한 일주일만 쉬고 오라며, 마음수련을 소개해줬다. 첫날 강의를 듣는데 이게 일주일만 할 게 아니더라.

마음수련은 자기 삶을 돌아보는 거 아닌가. 힘들었을 것 같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10살 때까지 인격이 형성된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핍박을 받으면서 자랐다. 아버지도 때리고는 했지만 엄마에 대한 상처가 훨씬 컸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되는 존재, 나는 사라져야 하는 존재였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짓눌려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내가 사실 오줌싸개였다. 사십이 다 되어서까지 오줌을 쌌다. 그런데 수련을 하며 두려움, 불안함 들이 버려지면서 멈춰졌다.

엄마에 대한 마음이 잘 버려졌나?

징글징글했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남아 있는 게 엄마인 거다. 실제 엄마가 옆에 있든 없든 엄마가 계속 내 안에 있었다. 엄마한테 혼나면 안 된다, 엄마가 시키는 건 다 해야 한다, 이런 게 항상 있었다. 사람을 만나도 다 엄마로 대입이 됐다. 그러니까 사람이 싫고 짜증 나고 불안했다. 어차피 낳은 자식인데, 그렇게 미워했어야만 했나,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수련하면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모든 인연의 사진을 버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가 배를 때리면서 날 죽이려고 하니까, 태아인 내가 나만 죽을 줄 아냐, 나 혼자 죽지만은 않겠다, 이런 마음을 먹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못 믿는 분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소름이 끼치고 끔찍했다. 결국 엄마는 자기를 향해 증오를 품었던 나를 본능적으로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안 그러려고 해도, 조절이 안 됐을 거다. 엄마도 후회하고 구박하고 후회하고 때리고 그랬겠지.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고, 참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럼 내 마음속의 감시자였던 그 엄마는 없어졌나?

원망은 없다. 엄마도 힘들었을 텐데 나는 내 마음사진으로만 엄마를 봤다. 엄마에게 힘이 되어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못한 게 미안했다. 그 뒤로도 수련하면서 엄마만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났다. 미워서도 아니고 원망도 아니었다. 한순간 아, 내가 엄마 마음을 닦아주고 있구나 알았다. 이게 다 엄마 마음이구나, 엄마도 이렇게 힘들었구나….

생활도 좀 바뀌었나? 주사 부리는 거는 없어졌나?

술은 아예 안 먹고 있다. 사실 원래 알콜이 맞는 체질도 아니었다. 19살 때부터 피던 담배도 끊었다. 끊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3과정 수련할 때쯤부터 내가 담배를 안 피고 있다는 걸 인식했다. 전혀 생각이 안 나서, 담배가 끊어졌구나 알았다. 주변에서 다 놀랐다.

사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나,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엄마 뱃속부터 10살까지의 산 삶에 모든 답이 들어 있다고 본다. 그때 어떤 환경이었느냐가 지금의 내 성격, 가치관 등을 정하지 않겠나.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일어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알고 버려야 모든 문제가 풀린다. 나는 마음수련을 통해서 그 고통의 고리를 끊어냈다. 다 벗어났다. 당연히 마음수련을 하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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