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간

입교당에서 만대루를 바라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 건축의 특징을 알려주고 싶을 때, 나는 하회마을 언저리에 있는 병산서원으로 안내한다. 병산서원은 건축물로만 따지면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건축이다. 결구방식이나 규모, 장식 등은 흔하고 엉성하기까지 한데도, 이 작은 건축은 늘 감동을 준다. 처음만이 아니다. 몇 번을 찾아가도 그렇다.


만대루는 자연을 매개하는 프레임으로서의 건축을 보여준다

서양 집과 우리 옛집의 다른 점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자연을 대하는 방법이다. 서양은 외부나 자연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에게 자연은 정복하기 위한 대상이고 외부 공격으로부터의 은신처일 뿐이어서 자연과 적대적 위치에 있는 건축이 건축 역사의 근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옛 건축을 보면 그냥 자연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청이나 툇마루 같은 공간은 내부인지 외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자연 속에 집이 던져져 있는 모습이다. 우리 선조들에게 자연은 공존해야 하는 가치였으며, 섬김의 대상이었고,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었다. 따라서 집은 앞산과 뒷산을 연결해주는 매개적 역할을 할 뿐이었으니, 집 자체의 모양보다 공간의 배열이 더 큰 과제였다.
병산서원은 이에 대한 좋은 보기이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을 모시는 사액서원으로, 지리적으로 안동 시내와는 물론 하회마을과도 절벽 같은 너들대벽을 두고 떨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병산屛山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밑으로 낙동강 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고요한 곳이다.
특히 우리의 관심은 강의동 건축이 구성하는 공간의 아름다움이다. 강의동은 네 개의 건물로 이뤄지는데 맨 위에 강의를 하는 입교당, 그 앞에 좌우로 학생들이 기거하는 동재와 서재 그리고 남쪽 아래 누각인 만대루晩對樓가 있어 50여 평 크기의 가운데 마당을 감싸고 있다.

밖에서 보면 중첩된 기와지붕이 만드는 풍모가 경사진 지형과 잘 어울려 있지만 가만히 보면 만대루라는 누각의 길이가 다른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이랬을까. 이 의문은 마당에 들어가 입교당에 앉아 보면 절로 나오는 탄성과 함께 풀리게 된다. 앞산 병산이 만대루에 가득 들어와서 마당의 한쪽 벽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만대루는 기둥만 남기고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병산을 그 속에 채울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 크기가 마당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길이여야 하는 까닭에 긴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건축은 오로지 자연 속에 걸터앉아 있지 자연을 막거나 닫거나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기둥에 의지하고 걸터앉아 다시 병산을 보면, 이름 그대로 병풍 속에 닫힌 듯 펼쳐져 있고 시시때때로 물안개가 그 풍경을 변화시킨다. 사계절의 절경은 그 속에 갇힌 고요한 마당을 살아 숨 쉬게 하는 힘이 된다. 건축은 프레임으로서만 존재하며 자연을 적극적으로 매개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황진수 & 글 승효상 건축가

사진가 황진수님은 2007년부터 왕가제례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으로 <신의정원, 조선왕릉>(2009) <한국정원> (2012) 등 정원 연작 작업을 해왔으며, 서울을 주제로 한 사진집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님은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 개설 후 자신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바탕으로 수졸당, 대전대 혜화문화관 등을 지었으며, 저서로 <건축, 사유의 기호> 등이 있습니다. 이 글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의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출발점, 병산서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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