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몸에서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기생충.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기생충 하면 떠오른 건 징그럽다 , 해롭다, 나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수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딱히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며 기생충 변호에 나선 이가 있다. 20년간 기생충을 연구해 온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서민(47) 교수다.
김혜진 & 사진 최창원

“인지도를 높여서 많은 청소년들한테 과학을 주제로 강연하는 게 꿈이에요.” 현재 MBC-TV <컬투의 베란다쇼>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인 그가 방송을 하는 이유다.

‘기생충 감염자가 150만 명, 봄가을로 구충제를 먹는 게 일상화된 나라에서 일반인을 위한 기생충 교양서가 이렇게 없다니…. 아차 싶은 생각에 책을 쓰게 됐어요.”

최근<기생충 열전>이란 책을 펴낸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 지난 1년간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과학’에 연재한 글들을 묶어낸 이 책은 네티즌들로부터 쉽고 재밌다는 평가를 받으며, 과학 칼럼으로는 이례적인 ‘우글우글’한 댓글로도 화제를 모았다. 어느새 기생충도 귀여워지는 묘한 경험을 한다는 네티즌의 고백까지 있을 정도. 일간지 칼럼을 통해 기생충을 통한 사회 풍자를 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그의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국내 50명의 기생충학자 중 유일하게 ‘나대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이 기생충 같은 놈아’란 욕도 알고 보면 외모 지상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는, 진담과 농담과 유머를 넘나드는 서민 교수와의 인터뷰는 내내 유쾌하고 새로웠다.

궁금한 것부터 여쭐게요. ‘봄가을마다 구충제를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 하셨는데, 정말 괜찮은가요?
현재 회충 감염률이 0.003%로 극히 낮은 데다 회충이 그리 나쁜 애는 아니거든요. 평생 사람 몸속에서 기껏해야 밥풀 몇 알 먹을 정도죠.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박멸 운동이 일어난 건 1964년 한 소녀의 죽음이 발단이 됐어요. 사인은 영양실조였는데도 당시 소녀의 몸에서 회충이 1,063마리가 나와 대대적으로 구충제를 먹기 시작했죠. 당시 사람들에게 회충이 많았던 이유는 회충알은 대변으로 나오는데 그걸 배추밭의 인분 비료로 쓰다 보니 계속 감염되는 구조였거든요. 그러다 인분 비료 사용을 금지하고, 화장실이 점차 수세식으로 바뀌면서 회충은 멸종의 길을 걷게 됐지요.

기생충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계신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기생충만큼 편견에 시달리는 것도 없어요. 기성세대들은 채변 봉투로 기생충 검사를 했던 기억이 있고, 젊은 사람들은 기생충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혐오하고 두려워하거든요. 어떤 분들은 기생충이 거의 멸종됐는데 연구할 필요가 있냐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자로서 그동안 사실을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구나 싶어 부끄러웠습니다. 특히 우리 식습관이 보양식, 회를 잘 먹다 보니 기생충 연구는 더 중요해요.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기생충도 있거든요. 가령, 스파르가눔은 주로 뱀을 먹으면 걸리는데 문제는 뱀을 안 먹는 사람도 걸린다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 감염되는지 별로 알려진 게 없어요. 또한 우리 국민의 10% 정도가 감염되는 개회충도 마찬가지예요. 소간을 먹으면 걸리는데 조사 자료가 거의 없죠. 연구해야 할 과제들이 하면 할수록 많은 거죠.

그는 기생충을 주인 몰래 세 들어 사는 객식구에 비유한다. 그 옛날, 천적이 널려 있는 들판에서 불안에 떨며 먹고살기가 힘들었던 일부 동물들은 “다른 동물 몸에 들어가 살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를 낸다. 그렇게 동물들에게 들어가 살아가며 일방적인 이득을 보는 생물체를 기생충, 손해를 보는 생물체를 숙주라 하는데, 살아야 할 터전(숙주)을 망가뜨리는 건 기생충 입장에서도 손해여서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게 기생충의 기본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대개 증상이 없는 게 특징이다.

‘이 기생충 같은 놈아! 하며 기생충을 탐욕의 상징에 비유한 것도 잘못됐다. 기생충은 언제나 먹을 만큼만 먹는다. 세상에 뚱뚱한 사람은 있어도 뚱뚱한 기생충은 없다. 대식가의 몸에 있던 회충도 채식주의자의 몸에 있는 회충도 길고 가늘다. 왜? 자기 분수를 지켜서 먹으니까. 기생충은 비열할 수는 있어도 탐욕스럽지는 않다.’-<기생충 열전>중에서

사람들에게 기생충이 비호감인 이유로, 특유의 생김새도 한몫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때론 기생충들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한다. 외모로 인해 힘들었던 자신의 삶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많이 힘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데 제 얼굴을 거울로 보고 더 악화됐죠.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엎드려 자고 있는데 애들이 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쟤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냐?’ 심지어 길을 가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붙들려 “넌 왜 이렇게 바보같이 생겼냐?”는 말까지 들어봤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한번도 제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한 적이 없었어요. 인간쓰레기다, 이 사회에 하나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스무 살 때까지 했던 거 같아요. 정말 앞이 캄캄했죠. 그래서 속죄의 일환으로 항상 헌혈을 했어요.(웃음) 38번 정도.

그런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너무 밝고 재밌으시잖아요.
가만 보니까 재밌는 친구들이 인기가 많더라고요. 그때부터 유머 연습을 했어요. 유머는 원래 자기를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되는데 그런 면에서 전 유리했어요. 일단 눈이 작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니까. 하지만 외모에 안주하면 안 돼요.(웃음) 제가 20년간 죽어라 한 노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 날 정도예요. 또 하나는 글쓰기였어요. 대학 입학 후 모토가 ‘외모가 안되니까 글로 일어나자, 웃겨 보자’였거든요. 저는 정말 말하기가 안됐어요. 떨리기도 하고 외모 콤플렉스로 오랫동안 땅바닥만 보고 걸어서 사람들 얼굴을 똑바로 못 봤거든요. 글이 제겐 편했어요. 일간지 칼럼을 쓰면서 좋았던 건 제 글을 남들이 평해준다는 거였는데, 타인에게 인정받은 건 글쓰기가 처음이라 정말 기뻤죠. 돌이켜보면 12년간 서울(집)~천안(학교)까지 왕복 4시간 동안 해마다 100권씩 책 읽은 게 비결이 된 거 같아요.

어찌 보면 기생충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의 ‘글빨’ 덕분이었다. 의대 진학 후 그는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그러다 의대 본과 2학년 때 쓴 기생충 드라마 <킬리만자로의 회충>을 눈여겨본 기생충학과 교수님의 제안으로 그는 기생충학 연구에 발을 디디게 된다. 평소 좋아했던 교수님이 “21세기에는 기생충의 시대가 올 거야” 하며 제안한 점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엇보다 기생충학 하면 대변 검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인류의 건강에 이바지할 수 있는 학문’이란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학과 달리 연구 위주의 기초과학이라는 점에서 심적 부담이 적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서민 교수에게 기생충이 그랬다. 대개 기생충이 몸 안에 있으면 배가 아프다 등의 증상만 접하다 보니 기생충이 마냥 나쁜 줄로만 알았지만, 막상 접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말라리아와 같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기생충도 있었지만, 알고 보면 괜찮은 기생충들도 있었다.

기생충이 인류 건강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대개 기생충하면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하지만 주혈흡충의 알, 돼지편충처럼 당뇨병이나 알레르기 치료에 사용되는 착한 기생충도 있거든요. 사실 기생충은 우리 면역계와 오랜 기간 공존해왔어요. 근데 기생충 박멸로 인해 면역계로서는 싸울 상대를 찾지 못해 황당한 상황에 처한 거죠. 이렇듯 알레르기성 비염, 아토피 등 면역계가 다른 외부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알레르기 질환이라면,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면역계가 미쳐버려서 우리 몸을 공격하는 게 자가면역질환이에요. 근데 이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기생충이 도움이 된다는 게 여러 연구들로 증명됐거든요. 잘사는 나라는 알레르기 질환이 많은 반면, 못사는 나라가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주죠.

하지만 연구 대상인 기생충을 찾는 일도 만만치 않다. 선모충의 감염 경로를 찾기 위해 2년간 118마리 남짓한 멧돼지 근육과 씨름하고, 심지어 무덤 근처에서 몇 시간 동안 땅 파는 수고로움도 뒤따른다. 과거 유적에서 기생충을 조사해 당시 사람들의 삶을 알아가는 학문을 고(古)기생충학이라고 하는데, 오래된 미라나 유적에서 기생충을 찾는 일도 그가 하는 연구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생충을 발견하는 순간 모든 피로가 싹 풀린다’는 그는 천생 기생충 학자다.

연구를 하다 보면 어려움도 많을 텐데요, 과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과학자들이 연구 과정이 힘들고, 연구 결과가 잘 안 나오면 조급한 맘에 가끔 유혹에 빠질 때가 있어요. 가령 실험 과정에서 쥐가 죽었으면 좋겠는데 안 죽어, 그래서 몰래 죽이고 나서, 어머 죽었네~ 하고 데이터를 위조하는 거죠. 근데 그게 돈을 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거란 거죠.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안내하니까요. 그래서 과학자에겐 윤리 의식과 최소한의 양심, 누군가의 주춧돌이 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의학 발전에 공헌한다는 인류애를 갖추는 게 중요하겠네요.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정답에 가기 위한 동반자인 거죠. 논문에 연구 방법을 쓰는 이유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그 누군가가 더 나은 연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거거든요. 제가 도요새의 장에서 희한한 기생충을 발견한 적이 있었어요. 이게 뭘까 하고 논문을 찾아보는데 브라질의 한 학자가 똑같은 걸 발견한 걸 보고 참 반가웠어요. 그 사람 덕분에 내가 하는 일이 편해지니까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을 주고 싶어요. 나중에 후세들이 이 분야에 대해 논문을 쓸 때 제 이름이 심심치 않게 있는 거죠. 진실, 정답을 향해 후대의 과학자들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것. 그런 게 과학자로서의 뿌듯함 아닐까요.

“앞으로 외부 강의를 많이 하면서 아이들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과학에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요. 특히 오지나 섬 등 과학 교육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많이 가고 싶어요. 사실 저는 강의는 죽어도 못 할 줄 알았어요. 애들이 강의 평가 때마다 선생님 눈 좀 맞춰주세요, 할 정도였는데 다행히 지금은 재미와 보람도 느끼고 많이 편안해졌어요. 이게 다 기생충 덕분이죠.(웃음) 사람들이 의미 없는 생명은 없다는 것, 하찮게 보일지라도 다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외모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당당히 대중 앞에 선 과학자 서민 교수. “임상 의사는 눈앞의 환자 한 명을 고치지만, 기생충 연구자는 큰 거 한 방을 노린다”며 활짝 웃는 그는 이제 오직 인류의 건강을 위해 연구할 뿐이다. 수줍음 많고 자신감 없던 그가 매력 만점 교수가 되는 반전이 일어났듯이, 존재감 제로의 기생충 역시 인류의 희망으로 자리하게 될 그날이 곧 오기를 기다리며. “기생충아, 기다려! 서민이 간다.”

서민 교수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저서로는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기생충 열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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