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그 입장에서 생각해준다면, 서로의 차이는 오히려 서로를 알게 되는 큰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지윤’이와

‘윤식’이 사이

윤지윤 30세. 선박검사관.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나는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는 말에 유감이 많다. 여성은 여성이고, 남성은 남성이지, ‘스럽다’라는 표현은 왜 필요했을까? 이미 짐작했겠지만 나는 남자 같은 아이었다.

갓난아기 때 나의 어머니는 “아드님이 참 잘생기셨어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사촌들도 모두 남자였다.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오빠들의 옷을 물려 입고, 권총 장난감을 들고 뛰어다니며 오빠들이 노는 대로 놀면서 컸다.

그러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모두 여자들만 있는 학교로 갔다. 나는 여전히 외모도 성격도 ‘남자 같은’ 아이였다. 교복이 아니면 거의 체육복을 입고 다녔다. 내가 여자였지만, 오히려 여자 아이들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사소한 것에 삐치고, 질투하고, 뭔가 한 단계를 더 거친 후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이과 계열 쪽에 흥미를 느낀 나는 공과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남자 동기들도 선배들도 후배들도, 여자애들에게 느끼는 불편함 없이 나를 대해주었다. 짧은 머리에 바지만 입고 다니며 남자들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나는 거의 여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공강이 생길 때면 인문대학 앞에서 선배들과 앉아 지나가는 여자들의 외모에 점수를 같이 매기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 여자 분들께 참 미안하다.

결국 나는 선배로부터 남자 이름을 하사받게 된다. 바로 ‘윤식’이다. 2학년 때 그 이름을 받았으니, 3년간 윤식이라 불렸다. 여학생은 항상 첫 줄에 앉아야 한다는 궤변을 펼치던 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만은 그 첫 줄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공식적으로 윤식이로 명(!) 받던 때가 그때였다.^^

황주리 작. <그대 안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62cm. 2010.

졸업 후 나는 역시나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조선(造船) 쪽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불편한 건 없었지만, 간혹 여자라서 받는 편견도 있었다. 선박 설계 감리를 한 후, 검사자의 이름을 찍는데, 내가 여자라는 걸 알고 나면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설계한 것을 감리한 사람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배 잘 알아요?” “몇 년 일했어요?” 하며 대놓고 무시한 분도 있었다.

그럴 때면 ‘왜 남자들은 여자를 무시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내 안에도 그런 마음이 똑같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마음수련을 하면서였다.

자라면서 ‘남자 같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고, 그럴 때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나보다 더 크고 더 힘이 세고 더 빠르게 달리는 오빠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강인한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생겼던 것이다. 예쁜 것에 관심 많은 여자들의 취향에 나는 아닌 척하면서 남성성을 동경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치우치며 살았구나 하는 반성도 되었다.

수련을 하며 그런 마음들을 덜어내고 나니 예전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구두나 여성스러운 옷들도 예뻐 보였다. 좀 꾸미고 다니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 옛날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사람 됐다고 한다. 여성스러워졌다는 말일 것이다. 굳이 ‘여성스러워져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남자 같아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느 사회나 여성과 남성이 있고, 어느 사람에게나 여성성과 남성성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잘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아내의 잔소리가

4절까지 이어질지라도

백일성 41세. 직장인.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며칠 전 중학생 아들 녀석 학원 문제로 아내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종합반으로 옮기게 되면서 부담스러워진 학원비 걱정에 아내의 푸념이 이어졌습니다. 남자인 저로서는 이왕 옮기기로 결정한 거 더 이상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막고자 아내에게 넌지시 한마디 했습니다.

정말 맹세코 좋은 뜻에서 내뱉은 한마디였습니다. 제 좌뇌의 중추 신경을 따라 측두엽을 거쳐 구강 구조의 세 치 혀를 통해 무심코 흘러나온 그 한마디는 다름 아닌 “아껴 써…” 딱 이 세 음절이었습니다. 이 세 음절이 아내의 달팽이관을 거쳐 아내의 전두엽 감각 중추를 자극하였는지 아내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짧은 순간에 봇물 터지듯 흘러나온 아내의 말은 느낌만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아껴 쓰라고?… 내가 언제 흥청망청… 요즘 물가 생각이나 해봤… 우리 살림에 더 이상 뭐… 15년 동안 허리띠 졸라… 남들 다 한다는….”

1절이 끝난 듯 잠시 숨을 몰아쉬고 애국가 2절에 들어갑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도 하물며 철갑을 두르는데 내 몸에 걸칠 옷 한 벌 사려고 해도 몇 번을 들었다 놨다, 결국 애들 옷 사들고 오는 심정을….”

그 이후 3절, 4절도 이어졌습니다.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아내의 말에 문득 네덜란드의 구멍 뚫린 둑을 주먹으로 막았다던 소년에게 지금 제 아내의 입도 한번 막아 달라는 부탁을 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결혼 15년 차 남편인 제가 오른 학원비만큼 좀 더 절약하자고 그냥 무심코 던진 ‘아껴 써’라는 세 음절이 아내에게는 애국가 4절의 한숨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긴 한숨 소리 앞에 입을 꼭 다문 저에게 아내의 눈빛이 뭐라고 대꾸 좀 하라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딱 한마디 하고 애국가 4절을 들었는데 주어, 동사, 목적어로 구성된 3형식 문장이라도 한마디 했다가는 아내는 팔만대장경이라도 낭독할 기세입니다.

그 이후로 우리 부부는 화성 남자 금성 여자처럼 멀리 갈 것도 없이 거실 남자 안방 여자가 되어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불편한 몸을 소파에서 뒤척이다 안방 문을 살며시 열었습니다. 어두운 방 TV 불빛에 얼굴만 환히 비추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황주리 작. <돌에 관한 명상>

돌 위에 아크릴릭. 2004.

“형우 엄마 맥주 한잔 하러 갈까?”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내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습니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집 앞 호프집으로 향하는 저의 팔짱을 끼고 아내가 방향을 바꾼 곳은 편의점 앞이었습니다.

“아껴 쓰라며? 캔 두 개만 사와.” 뽀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내를 뒤로하고 캔 맥주 두 개를 사와서 아파트 분수대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캔을 따달라며 내미는 아내. 15년 동안 아직도 맥주 캔을 못 따고 항상 저에게 맡깁니다. ‘치~익’ 소리를 내며 약간의 거품이 올라오자 제 손에서 캔을 낚아채 거품을 빨아 먹는 것도 15년 동안 한결같습니다. 입술에 거품을 묻힌 채로 아내가 입을 엽니다.

“자기야~ 내가 당신한테 무슨 해결책을 듣겠다고 돈 타령한 건 아니야. 난 그냥 부부간에 서로 말하고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달라는 거야.”

분수대에 흩날리는 물방울 때문인지 아내의 눈망울이 촉촉합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의 미안함을 전하며 아내에게 건배를 제안했습니다. 아내는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목구멍으로 넘깁니다. 그 모습에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여보… 아… 껴~~~~~ 먹어~” ㅎㅎㅎ

남녀로 만나서 연인이 되고 부부라는 이름으로 15년을 살았는데도 아직도 의사소통에 미흡한 점이 많아 이렇게 다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가 바라보고 있는 분수대처럼 같은 공간에서 끝없이 순환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늘도 아내의 입술에 묻은 맥주 거품을 손으로 닦아줍니다.

 

우리 반 남자애들은

‘아이돌 스타’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화경 고등학교 3학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나는 언니만 두 명 있고, 여중을 나와서 남자들하고 지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을 가게 되었다. 앞으로 한 반에서 남자아이들이랑 함께 생활하겠구나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나는 FT아일랜드라는 그룹을 좋아한다. FT아일랜드는 밥을 먹을 때도 잠에서 막 깼을 때도 멋있고 생활 하나하나가 화보처럼 아름다울 것 같고 나한테도 언제나 너그러울 것 같았다. 그렇게 막연히 아이돌 스타를 보면서 동경해 마지않던 남자들. 하지만 환상은 와르르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자다가 일어날 때면 반쯤 풀린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질 않나. 점심시간엔 반찬 하나도 누구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무장한 채 초스피드로 밥을 먹고, 다 먹은 후에는 엄청난 트림으로 소화됐음을 알려준다. 스스럼없이 방귀를 뀌어대며 오늘 뭐 먹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남자애들. 도대체 남자애들은 왜 이러는지,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학교에서 빵 만드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자 후배들은 “빵이 이 정도로 부풀어 오르면 되는 건가요? 앞으로 어떡해요?”라며 세세하게 물어본다면, 남자 후배들은 “누나, 이거 다 됐어요?” 하며 딱 필요한 것만 묻는다.

동아리에서 봉사 활동도 많이 가는데, 그럴 때도 남녀의 차이를 많이 느낀다. 봉사 활동을 가면 적적했던 어르신들이 반갑다고 맞아주시는데 남자아이들은 쑥스러운지 선뜻 다가가서 “감사합니다”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뒤로 숨는 것이다. 반면 여자애들은 뭐든 도와드리려고 하고 말도 싹싹하게 한다. 청소 등 여러 가지 일을 도와드릴 때 어르신과 말 한마디 안 하고 묵묵히 일만 하는 남자아이들을 보면서 “으이구, 봉사 활동까지 와서 꼭 이런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쑥스러움을 많이 타던 남자아이들도 공연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르신들이 신청하는 노래도 멋지게 불러드리고 더욱더 오버해서 춤도 추며 즐겁게 해드린다. 결국 끝나고 돌아갈 때쯤에는 남자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어르신들께 많은 도움을 드리고 가는구나 싶다.

말을 안 할 뿐 남자아이들은 마음속으로 미리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행동하는구나 하는 걸 느낄 때면, 칠칠치 못하게 보이던 애들이 아이돌 스타처럼 멋있어 보일 때가 있는 것도 솔직히 사실이다.ㅋㅋ

여자들끼리 있으면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다 할 수 있어서 좋고, 남자와 같이 있으면 재밌게 놀 수 있어서 좋다. 남자아이들이 이해가 안 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쉽게 들지 못하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 우리가 원하는 곳까지 가져다주고 고맙다고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넘어가줄 때, 집까지 가는 길이 많이 어두우면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 남자들의 묵묵함이 왠지 감사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TV 속의 화려한 스타보다, 든든하게 옆에 있어준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더 멋있을 때도 꽤 있었다.ㅋㅋ

황주리 작. <그대 안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62cm.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