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창문_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소통한다

지촌종택. 경북 안동_ 창문을 여니 맑은 바람 몇 줌이 봄기운을 전한다. 밖으로 산과 강이 그려지고, 나지막이 들어온 햇살은 선비 정신을 비춘다.

한옥에서는 창과 문의 구별이 없다. 그래서 창문이다.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한다. 소통의 통로이다. 특히 한옥의 백미는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분합문이든 바라지창이든 광창이든 크고 작은 창문을 통해 세상 밖을 보면 다양한 자연과 인간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문틈 사이로 아기자기한 장독들이 눈에 들어오고, 여름이면 붉은빛을 토해내는 백일홍이 바람에 춤을 추고, 가을이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이, 겨울엔 하얀 눈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만큼이나 아름답다.  사진, 글 이태훈

선교장. 강원도 강릉_ 현존하는 한옥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행랑채를 따라 나란히 줄지어 있는 3개의 중문이 인상적이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대구 달성_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라는 말에 등장하는 봉창으로, 주로 사랑채에 만들어졌다. 사랑채는 남자들의 공간으로, 겨울철에 사람들이 모이면 방 열기가 뜨거워진다. 이때 창문을 열면 너무 춥기 때문에 작은 봉창을 열어 통풍을 시켰다.

이남규 고택. 충남 예산_ 
부엌에 난 광창이다. 광창은 창호지를 바르지 않고, 문살도 수직으로 아주 단순하다. 광창을 통해 본 안채의 이미지가 색다르다.

초간정. 경북 예천_ 대청에 난 바라지창이다. 겨울철 칼바람이 매서운 북서풍을 막기 위해 창호지가 아닌 나무로 창문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리 한옥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수를 많이 따르고 있다. 특히 ‘창문(窓門)’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다. 외국 건축물에서는 창(Window)과 문(Door)은 엄격하게 역할과 기능이 다르며, 명칭도 각각 다른 반면, 우리 한옥에서 창문은 때로는 창이 되고, 문이 되기도 한다. 대개 창은 채광과 공기 순환을 담당하고 문은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우리 한옥의 창문은 서양 건축에서 말하는 창과 문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좌우상하 대칭으로 만들어진 창문들을 밖에서 보면 균제의 미와 절묘한 공간의 분할이라는 선현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오래된 한옥에는 종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 많다. 그래서 한옥을 촬영하다 보면 종손이나 종부님들과 친해지지 않으면 사진 한 장 찍기가 쉽지 않다. 봄이면 나무를 심어주거나, 가을걷이 때는 호박이나 쌀자루 등을 광으로 날라주기도 한다. 때론 홀로 사시는 종부님과 차 한잔 하며 말벗도 되어준다. 종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되고, 그 집안의 가풍과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어 좋다.

죽헌고택. 전남 장흥_
오래전 한옥은 창문을 열어야만 밖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100년 전쯤부터 문에 유리를 넣어 평소에도 밖을 볼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한 한옥들이 생겼다.

매산종택 산수정. 경북 영천_ 맨 위에 다락문이 있고, 그 아래 왼쪽에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창문이, 그 옆에 채광과 통풍만의 기능을 가진 작은 창이 하나 더 나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운강고택. 경북 청도_ 유리는 빛을 많이 통과시켜 방 안을 환하게 만들어주지만 우리 한옥의 창문은 창호지를 한 번 거쳐서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조금 어둡지만 굉장히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밝음보다 은은한 멋을 강조한 우리 한옥의 창문이다.

김동수 가옥. 전북 정읍_ 크고 작은 다양한 창문들이 많다. 천장까지 들어 올려진 분합문을 비롯해 삼면으로 둘러싸인 미닫이문들이 한옥의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언제나 자연과 소통하게 할 수 있는 구조가 바로 한옥의 진면목. 덕분에 옛 선비들은 창문을 여는 순간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사상을 구현하고,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창문은 세상의 변화를 깨닫게 하고, 닫히고 열리는 문의 기능처럼 때로는 절제와 때로는 개방으로 사람을 대하게 하고, 편협하지 않고 균형 잡힌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함을 상징했다. 한옥의 창문은 그렇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진리를 이어주는 숨길이었다.

이태훈 사진가는 1970년 강원도 태백 생으로 <스포츠서울>과 <월간조선>에서 12년간 여행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여행칼럼니스트,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10여 년간 전국에 흩어진 한옥을 찾아다니며 우리 한옥에 대한 고증과 사실적 기록, 그리고 종갓집들이 가진 독특한 역사성에 주목하며 사진을 담아왔으며, 저서로는 <뷰티풀 코리아> <하늘이 내린 선물> <일생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곳 100>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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