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마음이 되어 하늘을 난다는 것

이인재 39세. 소령. 공군 전투기 조종사

중학생 시절,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조종사를 꿈꾸었다. 저렇게 하늘을 날 수 있다면. 하늘을 나는 조종사가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었다. 그렇게 공군사관학교를 입학하고, 졸업 후에 무사히 비행 훈련을 이수한 나는 드디어 공군 조종사가 되었다.

비행은 적성에 잘 맞았다. 하지만 내가 꿈꾸던 그런 생활은 아니었다. 하늘을 날고 있었지만, 하늘을 즐기고 있지는 못했던 것이다. 공중에서는 쉴 새가 없다. 전투기동 중에는 그 넓은 하늘에서도 아차 하는 순간 공중 충돌이 일어날 수 있고, 폭격 임무 중에는 지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한순간도 주의를 딴 데로 돌릴 수가 없다. 실수하면 바로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항상 긴장하고 훈련을 받는다.

비행을 하고 내려오자마자 다시 내일 비행에 대한 준비, 새로운 비행 기술 연구, 끊임없이 신기술을 배우고, 나를 계발해야 한다는 압박감, 인정받아야 한다는 마음, 문득문득 올라오는 공중에서의 사고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 조직 생활에서 오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그런 마음들 속에서 언제나 바쁘기만 하고 보람도 없었다. 내 내면 깊숙이에는 뭔가 이런 나를 바꾸고 싶다는 욕구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에 소개된 마음수련 책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일주일 만에 본성을 찾는다’는 말이 다가왔다. 당직 근무를 서는 주말,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책에는 일주일 만에 본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소개돼 있었고,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나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지역수련원으로 가서, 수련을 시작했다.

나의 살아온 삶을 떠올리는데, 사관학교 4학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동기들과 롤링페이퍼를 적었는데 나에 대한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내 스스로는 배려심도 있고, 어느 정도 주변을 이해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대체적으로 ‘똥고집이다’ 등 고집이 세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주변에서 느끼는 ‘나’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나를 돌아보노라니 사람들이 바라봤던 ‘나’가 맞았다. 독야청청 선비 스타일의 아버지 밑에서 장남으로 자라며 쌓아온 유교적인 관념, 관습의 틀. 원리 원칙적이며, 남한테 해를 끼치면 안 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고집하는 융통성 없는 모습. 고등학교 때부터는 집을 떠나 자취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 만들어온 삶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잘나서 있는 줄 알았다. 부모, 형제에 대한 고마움도, 선후배, 동료에 대한 고마움도 몰랐다. 뭐가 그렇게 옳고 바른지, 오직 나의 마음세계 속에서, 나만이 옳다고 똥고집을 부리며 살아온 삶이었다.

너무나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계속 내가 쌓아온 마음의 세계를 버려나갔다. 그렇게 버려나가는 순간, 다 버렸구나 느끼는 순간, ‘내 마음속 모든 것은 내가 만든 허상이었구나, 이 우주가 나였구나’라는 마음의 깨침이 들렸다. 그리고 그렇게 하늘을 날고 싶었던 마음도, 나도 모르는 본성에 대한 갈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본성을 알고 난 뒤에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내 삶의 방향과 목표가 확실해졌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나를 닦아서 남은 마음을 다 버리고, 인간마음이 아닌 우주마음, 내 본성의 마음이 되어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니 여러 가지 걱정이나 불안함, 스트레스도 참 작아 보였고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외모도 많이 달라졌다. 한번은 운전면허증을 2종에서 1종으로 개종하러 간 적이 있었다. 운전면허증은 사관학교 때 찍었던 사진인데, 접수하는 분이 사진을 비교하더니, 본인이 아니라고 해 난감했던 적이 있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친구들이 깍두기라고 할 정도로, 굳은 얼굴에 찢어진 눈, 인상이 날카롭고 불만 가득한 모습이었다. 인상 좀 펴고 다녀라 할 정도로. 그런데 마음을 버리는 과정에서 얼굴이 바뀐 것이다. 특히 눈빛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인상이 많이 온화해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 후 바쁜 조종사 생활 중에도, 수련은 빼놓지 않고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비행을 할 때였다. 비행기 좌석 위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고개만 들면 밤하늘의 별을 다 볼 수가 있다. 예전에는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느새 비행기도 없고, 나도 없고, 그 하늘만 있구나, 그 하늘이 나구나, 하면서 편안하게 하늘과 하나가 되는 나를 느꼈다. 수련을 통해 의식이 넓어지면 세상이 내가 되고 하나가 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항공기와 하나가 되어서 조정하는 것을 ‘기인동체’라 하는데, 그것을 넘어 그 허공의 하늘과 하나가 되어 비행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었다.

전투기 조종사에게 중요한 건 순간순간 변화하는 공중 상황에서의 정확한 상황 판단 능력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 지상에서 땅을 밟고 살도록 창조된 인간이기에 공중에서는, 간단한 덧셈 뺄셈도 어려울 정도로 지각 능력이 떨어진다. 거기에 위기 상황이 닥치면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이 표출이 되기 때문에 조종사들에게 마음수련은 꼭 필요하다.

마음수련을 하면 무의식의 마음까지 버려서, 항상 하늘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기에 어떤 상황에 처해지든 마음의 동요가 없다. 나 역시 공중에서의 상황 판단 능력이나 여유를 갖는 것이 마음수련을 하면서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것은 뭔가를 더 얻겠다는 더하기의 노력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쌓아둔 마음을 버리게 하는 마음수련만의 빼기 방법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었다.

때문에 매일 저녁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수련원에 간다. 예전하고 똑같은 일상을 보내지만, 그 주체가 달라졌다. 이제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살아가던 그 녀석은 없어지고, 평온하고 자유로운 진짜 내가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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